뜨거운 더위를 피해, 복잡하고 답답한 일상을 벗어나 ‘떠나는’ 여름이 찾아왔다.
불과 십여 년 전만 해도 온 가족이 함께 휴가를 가는 것이 당연지사. 하지만 복잡다단한 사회 변화 속에서 이젠 휴가도 각양각색의 모습을 보인다. 다양한 형태의 휴가. 그리스도인들에게 더욱 의미있는 시간이라면 금상첨화 아닐까. 자녀와 함께 떠나는 가족, 혼자만의 시간을 목말라하는 직장인, 집에서 휴가를 보내기로 마음먹은 이들까지,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휴가법을 제안해본다.
■ 직장인을 위한 힐링 휴가
여름을 맞아 많은 이들이 휴가를 기다리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간절하게 기다리는 이는 아마도 직장인이 아닐까. 늘 감내해야 하는 많은 업무와 사내 인간관계 등으로 생긴 심리적 압박은 단순한 육신의 휴식만으로는 회복되지 않는다. 이번 휴가 기간에는 몸의 충전도 좋지만, 정신과 영을 ‘힐링’하는 시간을 보내보면 어떨까.
수원 화성행궁에서 ‘수원의 인사동’이라고도 불리는 공방거리를 지나 향교를 향해 걷다보면 여러 카페를 만날 수 있다. 이 중에는 저렴한 가격에 심리상담을 받을 수 있고, 재능기부로 나눔을 실천할 수도 있는 카페가 있다. 이삭심리상담카페(수원시 팔달구 향교로 146)다.
카페에 들어서자 커피 원두 향기가 은은히 퍼진다. 화분의 식물들에 도는 푸른빛이 안정감을 준다. 커피를 주문하기 위해 메뉴판을 바라보자 ‘세트 메뉴’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음식과 음료를 함께 주는 여느 카페의 세트 메뉴와는 다르다. 이곳의 세트 메뉴는 배 보다는 마음을 채우는 음식을 제공한다. 바로 심리상담이다.
한 일간지가 지난 6월 취업포털 ‘인크루트’에 의뢰해 직장인 78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직장인 5명 중 4명이 ‘회사 안에서는 기댈 데가 없고 외롭다고 느낀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하루 중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직장이 우울증의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직장인들의 이런 무거운 어깨를 풀어주는 것이 상담이다. 이곳 카페에서는 커피 한 잔과 함께 심리검사를 실시하고, 전문상담가의 분석을 들을 수 있다. 검사를 원치 않는 이들은 생활 속 고민을 터놓는 상담도 할 수 있다.
이삭심리상담카페 대표봉사자 이기상(요셉)씨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잘 몰라 상처받은 마음을 회복하는 데 힘들어 한다”면서 “심리상담은 자신의 장점을 바르게 알고 자기 안에 있는 힘을 찾아 심리적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설명했다.
커피 한 잔과 함께 심리검사 후 상담을 진행했다. 상담사와의 대화 속에서 평소에 생각하지 못했던 내 모습을 발견했다. 특히 대인관계에서 겪는 상처를 회복하는 데 약하다는 결과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대인관계에서 겪는 스트레스는 직장인이 피할 수 없는 상처다. 이미 많은 조사에서 직장인 우울증의 주요 원인이 ‘과도한 업무’보다도 ‘직장 상사’, ‘원만하지 않은 인간관계’ 등 대인관계에서 겪는 어려움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이 대인관계로 받은 상처를 회복하는 데 내리는 처방은 봉사활동이다. 봉사를 통해 자신의 시간·재물·재능을 나누고 그 안에서 사람을 만나는 행위가 나 자신의 치유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곳 카페는 시간·재물·재능을 나누는 장이기도 하다. 카페에서 커피를 만드는 이도, 상담을 하는 전문상담사도 모두 봉사자다. 상담의 경우 전문자격이 필요하지만, 카페에서 커피를 만드는 봉사는 누구든지 할 수 있다. 카페에서는 봉사를 원하는 이를 위해 커피 제조법을 익히는 소정의 교육도 진행하고 있다. 카페에서 커피와 심리검사를 제공하며 얻은 수익금은 모두 사회복지기금으로 전달된다.
매주 정기적으로 카페에서 봉사하는 권나희(율리아나)씨는 “직장에서 얻은 스트레스가 가득 찬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봉사를 시작했다”면서 “봉사를 통해 다양한 분들과 만나고 이야기하면서 정신적으로 힐링되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삭심리상담카페 방문자(왼쪽)가 이기상 대표봉사자로부터 심리상담을 받고 있다.
이삭심리상담카페 정문 안내판.
이삭심리상담카페에서 봉사자가 커피를 내리고 있다.
이곳에서는 저렴한 비용으로 커피와 심리검사 및 상담을 동시에 제공한다.
카페 봉사뿐 아니라 나에게 맞는 다른 봉사를 찾는 데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카페 한 편에 자리한 ‘수원교구 자원봉사네트워크센터’는 봉사를 원하는 이와 봉사를 필요로 하는 곳을 연계해 준다. 자신이 원하는 봉사분야와 재능, 봉사하고 싶은 시간 등을 등록하거나, 봉사할 수 있는 곳을 찾을 수 있다.
카페에 봉사자로 참여하고 있는 최병조 신부(수원교구 사회복음화국장)는 “자원 봉사를 하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말에 공감하고 있다”면서 “예수님도 우리를 위해 ‘자원봉사’ 하신 것을 생각하면서 예수님을 본받는 우리 모두가 시간·재물·재능을 나누면서 기쁨을 얻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집에서 편안히 ‘참여형 기부’
사랑 담아 한 땀 한 땀… 쉬면서 자비 실천
너도나도 산으로 바다로 휴가 떠날 계획을 세우고 있지만, 휴가계획이 없는 이들도 많다. 통계청이 15~60세 남녀를 대상으로 한 조사(2014)에 따르면 국민 3명 중 1명은 ‘여름휴가를 가지 않는다’고 응답하기도 했다.
먼 곳으로 떠나지 않더라도 누구나 집에서 충분히 휴가를 보낼 수 있다. 하지만 집에서 휴가를 보내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텔레비전 앞에서 의미 없이 시간을 흘려보내기 십상이다. ‘자비의 희년’을 보내고 있는 이 때, 집에서 쉬면서 하느님 자비도 실천하는 여름휴가를 선택하면 어떨까.
집안에서 편안히, 게다가 남녀노소 누구든 할 수 있는 손쉬운 ‘참여형 기부 프로젝트’에 눈길을 돌려보자. 참여형 기부는 단순히 금전적 기부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기 등의 손품을 팔아 이웃들 특히 어린 아이들을 도울 수 있는 캠페인성 프로젝트다.
(사)홀트아동복지회 ‘디어패밀리박스’는 입양될 아기 혹은 미혼모 가정 아이들에게 ‘애착인형’을 만들어주는 참여형 캠페인이다. ‘애착인형’은 아이가 위탁 가정 혹은 시설에서 새로운 가정으로 갈 때 잘 적응하기 위해 갖고 있었던 것 중 익숙하고 친근하게 느낄 수 있는 물건이 필요하다는 것에 착안해 시작됐다. 동참하기 위해선 우선 인터넷을 통해 참가 신청을 하면 된다. 신청 후 3일 정도면 인형 도안과 바느질에 필요한 키트, 나눔카드, 나눔증서가 집으로 배송된다.
손바느질을 부담스러워할 필요는 없다. 처음 해보는 이들도 쉽게 따라할 수 있도록 상세한 설명을 담은 안내서가 동봉돼 있다. 누구든 2~3시간 정도면 완성할 수 있다.
‘디어패밀리박스’ 수익금은 위탁가정 아이들의 식비, 분유비, 기저귀, 의류에 지원되거나 미혼모 가정의 양육 기금으로 쓰인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품다’ 캠페인 참여자가 아기를 위한 딸랑이 인형을 만들고 있다.
홀트아동복지회 ‘디어패밀리박스’ 캠페인을 통해 제작된 애착인형과 참여자가 쓴 편지.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홈페이지를 통해서는 ‘품다’ 캠페인에 참여할 수 있다. 재단에서 정기후원 또는 일시후원을 하면 속싸개, 턱받이, 딸랑이인형, 꼭지모자 중 하나가 담긴 베이비키트가 무작위로 배송된다. 아기 턱받이 정도는 서툰 바느질 솜씨로도 쉽게 만들 수 있다. 바늘 잡는 것조차 서툰 남성들도 2시간에서 넉넉잡아 3시간이면 충분히 완성시킬 수 있을 정도다. 함께 동봉된 나눔 증서를 기념으로 갖고, 나눔 카드를 써서 보내면 마음이 더욱 뿌듯해진다. 완성된 제품은 택배서비스를 이용해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 보내면 된다. 본인이 갖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할 수도 있다.
‘품다’는 ‘무연고의 아동을 세상이 품어준다’는 의미의 캠페인이다. 개개인이 만들어 보내준 베이비키트는 아동복지시설에 제공된다. 후원금은 주로 무연고 아동들의 치료비와 시설 입소 아동들의 생계비로 지원된다. 낙후된 아동 양육 시설 개보수와 환경 개선을 위해서도 사용된다. 또 18세 이후 시설에서 나가는 아이들의 자립 지원 등에 쓰인다.
바느질을 한다고 해서 ‘여자들만의 휴가가 아닌가’라는 생각은 떨쳐버려도 좋을 듯하다.
홀트아동복지회 관계자에 따르면 “참여형 기부에는 중고등학교 학생들과 특히 아버지 층의 참여가 많다”고 밝혔다. 또 두 종류의 기부 모두 “봉사활동으로 인정돼 개인뿐만 아니라 단체가 참여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남녀노소 누구나 바느질을 통해 잠시 혼잡한 일상에서 떠나, 타인과 나의 마음을 위로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소외된 이웃들, 특히 아기들이 하느님 사랑을 듬뿍 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보내는 여름 휴가의 마지막은 묵주기도로 마무리해도 좋겠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누리는 또 다른 ‘쉼’이다.
※참여형 기부 프로젝트
홀트아동복지회 ‘디어패밀리박스’ 02-331-7142~5 www.holt.or.kr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품다’ 02-775-9122 campaign.childfund.or.kr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 ‘희망T캠페인’ 1544-9595 hopet.relief.or.kr
한코리아 ‘세상을 바꾸는 착한 장난감 캠페인’ 02-811-0999 www.hankorea.or.kr
■ 온가족이 함께하는 생태체험
자연의 소중함 일깨우고 가족간 추억도 쌓고
“이제 허브를 화분에 옮겨 심고 삽으로 흙을 정성스럽게 떠서 덮어주세요.”
선생님의 강의에 따라 아버지가 모종을 화분으로 옮겨 심는다. 어린 아들은 자기 손보다 훨씬 큰 삽으로 흙을 붓고 화분 다지기를 한다. 함께 심은 식물을 보면서 아버지와 아들은 환한 미소를 짓는다. 곳곳에서 생태체험관광 프로그램에 참가한 신자 가족들이 강의를 들은 뒤 정답게 실습하는 풍경을 쉽게 볼 수 있다.
강원도 양양 ‘오색허브농원’에서는 20년째 생태체험 관광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생태체험 관광은 가족휴가를 그리스도인으로서 의미 있게 보내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큰 인기다.
생태체험 관광은 시골 지역에서 각종 체험프로그램과 숙박을 함께 제공하는 관광코스로, 자연에 관해 배우고 직접 체험하는데 안성맞춤인 프로그램이다. 일반인들이 운영하는 상품에서부터 지역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상품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생태체험 관광은 주로 그 지역 특산물 등을 직접 재배하는 방법을 배우고 실습한 뒤, 주변 관광지를 관람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대부분의 생태체험 관광 프로그램 중에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참가자들이 함께 토론하는 시간이 마련되는 것도 특징이다. 덕분에 전국 각 본당 신자들이 단체로 신청하는 경우가 많다.
생태체험 관광이 각광받는 또 다른 이유는 자녀들의 여름방학 과제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자율학기제를 활용해 개별수업을 다니는 중학생들과 초등학교 교과 과정을 연계한 프로그램 등을 체계적으로 제공하는 곳이 늘고 있다. 덕분에 생태체험은 휴식과 자녀 방학숙제 해결, 생태적 삶의 실천 등 일석삼조 효과를 누리는 기회로 관심을 모은다.
강원도 양양 오색허브농원을 방문한 가족들이 허브를 화분에 옮겨 심고 있다. 오색허브농원 제공
오색허브농원 생태체험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실습에 참가하고 있다. 오색허브농원 제공
오색허브농원 대표 이봉옥(효주아녜스·55·양양본당)씨는 “신자 가족들이 프로그램을 체험하면서 자연의 중요성을 깨닫고 서로 친밀감이 강화되는 것을 볼 때, 같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보람을 느낀다”고 전했다. 특히 “방문객들이 휴가를 마치고 돌아갈 때면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서로 교감하며 추억을 쌓을 수 있었다고 만족해한다”고 말했다.
생태체험 관광에 대한 정보는 각 지역 관광청 홈페이지나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아볼 수 있다. 먼저 체험한 방문객들의 블로그 후기를 참조하는 것도 좋다. 농촌진흥청의 경우, 생태체험 관광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시골 농원들을 별도의 사이트를 통해 자세히 소개한다. 홈페이지에서 ‘지역정보’ - ‘농촌체험’으로 들어가면, 각 농원들이 운영하는 생태체험프로그램과 숙박시설 정보 등을 자세히 볼 수 있다. 농원들이 각각 운영하는 홈페이지를 통해 각종 프로그램들을 자세히 숙지하고 가면 생태체험 관광을 더 실감나게 즐길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해 6월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발표한 이래 생태 영성은 그리스도인들의 중요한 화두가 됐다. 교황은 회칙을 통해 인간 생태와 사회 문제를 가톨릭 신앙의 관점에서 성찰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다양한 차원의 대화와 생태 교육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생태체험 휴가를 떠날 계획이 있는 그리스도인들이라면 프란치스코 교황의 「찬미받으소서」를 한 번쯤 읽은 후 체험지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올 여름, 자연을 배우고 즐기는 동시에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족휴가를 보다 뜻 깊게 보낼 수 있는 지침서가 될 듯하다.
“신앙인으로서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모든 존재하는 것들과 맺어주시는 유대를 생각하며 세상을 밖이 아니라 안에서 관찰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개별적으로 주신 능력을 발전시킴으로써 생태적 회개는 우리가 더 큰 창의력과 열정을 발휘하도록 해줍니다.”(「찬미 받으소서」 220항).
※문의 농촌진흥청 1544-8572 www.nongsaro.go.kr / 오색허브농원 033-672-0462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
최유주·이윤아 수습기자 bright_ju@catimes
정윤선 수습기자 goodsun@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