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의 산티아고’ 중 한 장면. 인기 코미디언 하페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깨달음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담았다. 영화사 진진 제공
“그럼 나 이제 떠날 거야.”
시쳇말로 ‘잘나가는’ 인기 절정의 코미디언 하페(데이비드 스트리에브 분)는 스탠딩 토크쇼를 하던 중 쓰러진다. 응급실에 실려가 담낭 제거 수술을 받은 그는 의사로부터 “무조건 석달동안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처방을 받는다. “스트레스로 죽을 수도 있다”는 경고와 함께.
꼼짝없이 평소 그가 사랑하는 빨간 소파에 파묻혀 시간을 보내던 하페는 어느 날 비몽사몽간에 신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그리고 ‘야고보의 길 순례’를 결정한다.
독일 코미디언 하페 케르켈링의 에세이 「그 길에서 나를 만나다 - 나의 야고보 길 여행」을 원작으로 한 영화 ‘나의 산티아고’는 스페인의 카미노 데 산티아고(성 야고보 순례길)를 걸으며 마주하는 나의 이야기, 하느님의 이야기다.
프랑스 남부 국경 마을 생장피데포르(Saint-Jean-Pied-de-Port)에서 피레네 산맥을 넘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까지 이어지는 800㎞의 순례 대장정에 오른 하페는 첫날부터 폭우와 마주친다. 허름하고 붐비는 숙소에 발바닥의 물집까지, 환경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순례길은 열악하기만 하다. 홀로 걷는 고독함도 힘든 요소다.
가끔은 차도 얻어타고, 버스를 이용하는 잔꾀를 부리며 얼렁뚱당 순례를 이어가기도 하지만 매일 20~30㎞의 길을 걸어간다. 그 42일간의 여정은 어린 시절 지녔던 하느님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자신에게부터 질문을 던지는, 하나하나 깨달음을 찾아나가는 과정이다.
매일 하루 일과를 기록하면서 하페는 삶과 신앙에 대한 상념을 채워간다. 내면에서 ‘치유의 순례’가 일어나고 있음을 알아차리게 되고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하느님을 체험한다. 스텔라(마르티나 게덱 분)와 레나(카롤리네 슈허 분) 등 동반자들과의 만남 속에서 ‘함께 걷는다는 것’의 의미 역시 새롭게 받아들인다.
“할머니는 늘 말씀하셨다. 묻지 말고 하느님께 의지해라. 어떻게든 그분이 낫게 해주실 거다. 그분만의 방식으로.” “신을 만나려면 먼저 영접한다고 말해야 한다. 기도하지 않는 자에게 하느님은 올 수 없으니까.” 여행길 내내 화면에 흐르는 하페의 내레이션은 솔직하고 편안하다. 함께 순례를 하며 두런두런 나누는 신앙 체험 같다. 그래서 잔잔하게 보는 이들의 마음에 젖어든다.
영화에서 하페가 걷는 길은 카미노 데 산티아고 중 가장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카미노 데 프란세스’(프랑스 사람들의 길)다.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거친 흙 길, 황무지의 고된 코스에서부터 고즈넉한 숲길, 병풍처럼 둘러진 암벽의 황홀한 절경, 지평선 위로 펼쳐진 밀밭까지 순례길의 자연을 스크린으로 감상할 수 있는 것은 영화의 덤이다.
클로즈업으로 담은 순례길 상징 노란 화살표와 조가비 문양들도 아기자기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보타푸메이로(Botafumeiro)라는 대향로를 긴 밧줄로 당기며 연기가 피어오르게 하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의 순례자 미사 장면도 신앙인들에게는 놓칠 수 없는 부분이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야고보의 무덤이 발견된 곳이다. 10~15세기 엄청난 순례자들의 발길을 모았고 이로써 전 유럽을 가로질러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순례길이 생겨났다. 캔터베리에서 로마까지의 ‘프란치제나 길’, 예루살렘으로 가는 행로와 더불어 가톨릭 3대 순례길에 속한다.
(12세 이상 가, 상영시간 92분.)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