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해송 동화 책표지. 「토끼와 원숭이」(배경)와 「떡배 단배」 「모래알 고금」 「앙그리께」.
마해송의 동화는 작품 창작 당시의 시대상과 작가의 사상을 세심하게 고려하면서 해석되어야 한다. 그는 시대 현실에 면밀하게 조응하며 동화를 창작했기 때문이다.
아동문학연구자인 이재철은 그를 “시대와 같이 살면서 시대와 같이 호흡한 작가이며, 시대에 아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대에 저항하고 자기 변모의 가능성을 위해 끊임없이 꿈틀거린 작가”로 평가한다.
그 대표작이 의인동화인 「토끼와 원숭이」다. 이 작품은 우화(알레고리)의 형식으로 일제 식민시기, 해방 후 미국과 소련의 쟁탈전 등의 현대사를 담고 있다. 1931년 「어린이」에 첫 회만 발표되고 1933년 다시 연재가 시작됐지만 총독부의 검열로 원고가 삭제됐다. 1946~1947년 자유신문에 연재되고 책으로 출간되기까지 15년 이상이 걸린 이 작품은 그간의 정치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큰 개울 동쪽에는 원숭이 나라가 있었고 개울 서쪽에는 토끼 나라가 있었는데 서로 모르고 지냈다. 원숭이는 영악하고 싸움 싸우기를 좋아하고, 토끼는 노래하고 춤추며 즐겁게 살기를 좋아하였다.”
「토끼와 원숭이」의 첫머리다. 원숭이는 일본을, 토끼는 우리나라를 지칭한다. 원숭이들은 토끼 나라를 침략하고, 자신들처럼 ‘세상에서 제일가는 짐승’을 만들어주겠다면서 토끼들의 두 귀를 자른다. 원숭이가 남쪽에 있는 뚱쇠 나라까지 공격하자 뚱쇠들은 북쪽의 센이리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원숭이를 물리친 뚱쇠와 센이리는 자기들끼리 다시 전쟁에 붙는다. 일제 치하의 민족 현실과 해방 후 제국주의 질서를 알레고리로 명쾌하게 나타낸 것이다.
1948~1949년 자유신문에 연재된 중편 동화 「떡배 단배」도 비슷한 이야기다. 조용했던 섬마을에 어느 날 갑자기 배 한 척이 들어온다. 떡을 주는 떡배와 단 것을 주는 단배는 섬사람들의 입맛을 길들여 놓고, 섬에서 나는 귀중한 전복과 맞바꾸는 부당 거래를 한다. 또 떡배와 단배가 전쟁을 하는 와중에 섬사람들까지 두 무리로 나뉘어 전쟁을 치르기까지 한다. 이 동화 역시 강대국의 침탈과 전쟁을 우화의 기법으로 그리고 있다.
마해송은 이렇듯 동시대 현실과 역사를 의인동화나 우화의 형식으로 풍자했다. 우화는 어린이 독자들에게 현실을 알리는 데 적절한 수단이었다. 또 패권적인 세계 질서, 부패한 정권, 부조리한 사회 현실을 비판하려는 의도에도 적합했다.
1950년대 중반 이후 마해송의 동화에는 가톨릭 신앙의 영향이 선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한다. 1966년 유고작에 이르기까지 이후 십여 년간 그의 후기작을 아우르는 가장 큰 특징이자 변화이다.
단편 「천사가 지켜준 아이」는 유괴되어 토굴에 갇힌 옥이가 기도의 힘으로 탈출하게 되는 이야기다. 토굴에 갇힌 옥이는 평소 습관대로 “임하소서, 성신이여! 하늘로서 네 빛을 쏘사 내 마음에 충만케 하소서”라고 저녁기도를 한다. 또 무서운 생각이 들자 “천주님, 이 집에 복을 내려주세요. 열두 종도(사도-필자 주)는 앞문 뒷문을 지켜 주시고, 천사를 아가를 지켜 주시고…”라고 되뇌인다. 며칠 후 근처를 지나던 경찰이 토굴에서 새어 나오는 눈부신 빛을 발견한다. 다가가보니 키 큰 장수들이 금빛 창과 은빛 도끼를 들고 토굴을 지키고 있었고 토굴 안에는 옥이가 천사의 날개에 감싸여 잠들어 있었다. 옥이의 기도대로 이루어진 장면은 마치 가톨릭교회에서 오랜 전통으로 이어지는 기적 이야기 한 편을 보는 듯하다.
마해송의 후기작에서 선하고 순응적인 작중 인물들은 모두 가톨릭 신자로 그려진다. 「모래알고금」의 임영수, 「토끼와 돼지」의 식모 아주머니, 「앙그리께」의 마산 할머니와 뒷집 할머니, 「비둘기가 돌아오면」의 수남이의 주인집 할머니 등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힘들 것 같은 착한 인물들은 모두 가톨릭 신자로 설정된다. 임영수는 가난한 이를 도우며, 식모 아주머니 역시 불쌍한 을성이를 아껴주며 늘 ‘하느님 사랑’을 역설한다. 마 산 할머니는 작품 초반에는 식모 영애에게 퉁명스럽게 대하지만 뒷집 할머니의 인도로 신앙을 갖게 되면서 영애를 마음 깊이 아낀다. 작중 인물의 성격이 변화될 정도로 가톨릭 신자인 인물들은 모두 이웃에 대한 사랑과 덕행을 실천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이들 인물들을 통해 당시 가톨릭 신자들에게서 두드러졌을 신앙과 삶의 자세를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모든 일이 “천주님 뜻”이기에 현재 주어진 삶에 전적으로 순응하고 감사하는 태도다.
단편 「꿈은 가슴마다」에서 피난길에 자식들을 여의고, 창수라는 아이를 우연히 기르게 된 아버지는 신앙으로 창수를 받아들인다.
“‘집을 떠나지 말고 그대로 견디었다면 할머니도 돌아가시지 않고 명순이도 잃지 않고 동수도 물론 잃어버리지 않았을 것을!’ 그런 생각이 불쑥 떠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곧 마음을 돌렸다. ‘아냐! 모두 천주님이 하시는 일이니까…’ 그렇게 생각이 들 때면 창수에게 자연히 눈길이 가는 것이었다. ‘창수를 맡아 기르라고?’ 창수를 맡아 기르라고 천주님이 주신 것같이 생각되고 할머니까지도 창수를 맡아 기르라고 잔뜩 움켜잡고 계셨던 것같이 생각되어서 창수를 아끼고 사랑하기를 극진히 했다. 그것이 벌써 6년 전의 일이다. 그러니 아버지 어머니가, “우리 창수는 천주님이 주신 애야!” 입버릇처럼 말하는 것도 까닭 없는 일은 아니었다.”
신앙 고백을 담은 수필집 「아름다운 새벽」에서 입교 전 마해송은 가톨릭 신앙에 대해 이성적으로 끊임없이 질문하고 회의한다. 깊이와 통찰을 가지고 의문하는 가운데 성서와 교회 전통을 꾸준히 체화해 나가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대다수 작품에서는 그러한 깊이와 통찰이 온전히 드러나 보이지 않는다. 가톨릭교회의 신앙관과 인간관이 지극히 호교적이고 순응적으로 표방되어 있다. 어린이를 마냥 천사처럼 여기는 ‘동심천사주의’의 영향인 듯 가톨릭 신앙인도 천사처럼 그려진다. 가톨릭 신앙이 마해송의 작품에 미친 보다 의미 깊은 영향은 장편소설 「앙그리께」, 「모래알고금」 연작을 통해 확인된다.
김유진(아동문학평론가)
아동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대학에서 글쓰기와 토론을 강의한다. 동시집 「뽀뽀의 힘」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