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 본당의 역사를 따라] 성남대리구 도척본당
지역 특성 사목에 반영… 결혼 이주민 늘자 한글학교도
도시 본당과 농산물 직거래 통한 나눔
독거 노인 위한 ‘작은 안나의 집’ 운영
주일학교에서 도척본당 어린이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다. 가톨릭신문 자료 사진
성남대리구 도척본당(주임 조남구 신부)은 성 김대건 신부의 전교로 피어난 신앙의 뿌리를 탄탄히 지키며 지역에서 복음화를 실천해 온 본당이다.
도척면은 예로부터 교통의 요지였다. 인근 지역을 잇는 지름길이 거미줄처럼 이어져 있어 도보로 여행하던 시대에는 이천과 광주, 용인과 양평을 지나는 이들이 반드시 거치는 지역이었다. 도척면에 복음이 전해진 것도 바로 이런 지역적 특색 덕분이다.
본당 관할 안 공소 중에는 박해시대에 험준한 대화산 기슭에 숨어 옹기를 구워 팔던 교우촌들이 많았다. 또 은이공소에 머물면서 인근 공소를 사목하던 성 김대건 신부는 공소와 교우촌을 다니던 중 도척 지역에서도 전교활동을 펼쳤다.
성인이 뿌린 복음의 씨앗은 박해를 이겨내고 많은 공소공동체를 탄생시켰다. 1920년대 초반 기록에 따르면 본당 관할 지역에서는 소틔·진말·가래실·노루목·바위성골·텃골·사기소·시어골 공소가 신앙을 이어 가고 있었다. 공소의 대부분이 신앙 활동과 전교에 활발히 나서, 신자 수 70명이 넘는 공소가 6곳이 넘었다. 특히 사기소공소는 179명의 신자들이 함께하는 큰 규모의 공소였다.
공소 중에는 1930년대에 이미 한·양식 절충 공소강당이나 4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소강당을 세우기도 했다. 도척면의 공소들은 이후 인근 지역에 본당들이 설립됨에 따라 압고지본당, 양지본당, 이천본당, 광주본당 등의 관할 아래 신앙생활을 이어 나갔다.
도척본당이 설립된 것은 1977년 12월 16일 노루목이라고도 불리던 노곡리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되면서다. 본당은 도척면 지역의 13개 공소를 관할했으며, 1500여 명의 신자들이 공소공동체를 이뤘다. 본당은 설립 이듬해인 1978년 공소회장들이 마련한 성당 부지에 새 성당을 짓기 시작했다.
새 성당은 도척 지역 복음화의 근간이 된 김대건 신부의 삶을 기리면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전교 기념성당’이라는 이름으로 건축됐다. 본당은 1988년 성당 외벽에 자연석 쌓기 공사로 성당 외벽 누수를 막고 아름다운 성당으로 단장했다. 이 성당은 교구 도보성지순례길인 ‘디딤길’의 순례지로도 등록돼 있다.
본당은 변화하는 사회상에 발맞춰 다양한 사목활동을 펼쳐왔다. 사회적으로 젊은 세대가 도시로 나가는 경향이 두드러지자, 본당은 지역의 노인문제 해결을 위해서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돌봐줄 이 없이 외롭고 가난한 노인들을 위한 보금자리 ‘작은 안나의 집’을 설립했다. 본당 사제관을 내어 시작한 ‘작은 안나의 집’은 바위성골공소에 부지를 매입해 시설을 신축하고, 현재 오로지종합복지원 산하 기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또 본당은 농촌지역의 특성을 살려 성남대리구 단대동본당과 자매결연을 맺고 농산물 직거래 등을 통한 도농간의 나눔의 장을 열기도 한다. 최근에는 결혼 이주민이 증가함에 따라 이주민들을 위한 한글학교를 열고 있다.
도척성당.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