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환 신부의 인물과 영성이야기] (31) 길버트 키스 체스터튼 (2)
친구 오코너 신부에게서 탐정 브라운 신부 영감 받아
소설 주인공, 실제 사제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특징은 정반대
주인공의 뛰어남 감추기 위해
수수하고 조금은 바보처럼 그려
길버트 키스 체스터튼의 소설 「브라운 신부」를 원작으로 한 영국 BBC one의 드라마 ‘파더 브라운’.
■ 오코너 신부와의 우정
체스터튼이 추리소설을 쓰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단순히 독자와의 지적 게임을 즐기는 탐정물이나 범죄 자체를 흥미의 소재로 삼는 범죄소설을 의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그의 다음과 같은 언급에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지적인 탐정 소설의 진정한 목적은 독자들과의 머리싸움이 아니라, 독자들에게 영감을 주고 깨달음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다만 깨달음을 주는 방식에 있어서, 연속되는 일련의 진리들이 독자들에게 놀라움으로 다가오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품위 있는 추리소설들은 참된 신비주의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참된 신비주의는 단지 신비화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조명하고 밝히는 것이 목적이니까.”(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 1920.8.28.)
그가 원하는 이상적 추리소설을 위한 주인공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 사람은 체스터튼의 절친한 벗이었던 존 오코너 신부였습니다. 체스터튼이 아직 가톨릭으로 개종하지 않고 있던 시기인 1903년 오코너 신부가 독자로서 체스터튼에게 보낸 편지가 두 사람이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 체스터튼은 오코너 신부가 봉직하고 있는 요크셔의 케슬리 대학에서 강의할 기회가 있었고 두 사람은 실제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만남은 곧 우정으로 발전하였고, 두 사람의 우정은 생애를 통하여 지속됩니다. 오코너 신부는 깊고 진지한 성찰력과 날카로운 지성과 함께 해맑은 성정, 순수한 신앙심을 지닌 사람이었는데, 이러한 오코너 신부의 정신적·영성적 자질이 체스터튼에게 ‘외적 단순함과 내적 섬세함’이 완벽하게 공존하는 브라운 신부의 인격을 구현하는데 중요한 영감이 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오코너 신부는 유머와 역설, 위트, 그리고 자신과 다른 부류의 사람들과의 사귐과 만남에서도 거리낌 없는 쾌활함과 친화력을 지니고 있었는데, 이런 성품 역시 브라운 신부의 행동과 태도에 어느 정도 녹아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성격은 체스터튼도 많이 공유하는 점이어서 두 사람이 가까운 친구가 된 이유를 짐작하게 합니다.
■ 브라운 신부의 탄생
체스터튼이 이 실제 가톨릭 사제인 친구의 인격과 지성, 성품으로부터 브라운 신부라는 잊혀지지 않을 문학적 인물을 창조하게 한 주된 영감을 받았지만, 오코너 신부가 일반적 의미에서의 브라운 신부 ‘모델’이 된 것이라고 하기는 어렵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오코너 신부와 브라운 신부는 많은 차이를 지니고 있었는데 이는 체스터튼이 의도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브라운 신부를 구상하면서 체스터튼은 브라운 신부가 주목을 끌지 않을 만큼 평범한 인물이고 능히 과소평가를 받을 만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반면에 오코너 신부는 사람의 눈길을 즉시 끌만한 사람이었죠. 체스터튼은 자서전에서 작가의 권리는 영감을 준 실제 인물을 마음껏 변형시킬 수 있는 것이라 밝히면서 그가 어떤 방식으로 오코너 신부로부터 브라운 신부라는 독자적인 문학적 인물을 그려낼 수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브라운 신부’라는 캐릭터의 핵심은 ‘특징 없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의 뛰어난 지성과 재능이 쉽게 다른 사람의 눈에 띄어서는 안 된다’라는 원칙이 출발점이 된다는 것이지요. 이로써 브라운 신부의 수수하고 조금은 바보 같아 보이는 외모는 그가 이내 펼쳐 보일 예측할 수 없는 긴장과 지성과 확실한 대조를 이루게 되는 것이지요. 브라운 신부가 ‘초라하고 볼품없는 옷차림에다, 둥근 얼굴은 무표정하며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도 노련하지 못하고 서툰 인물’이라는 것은 이 이야기들에서 매우 중요한 점이었지요. 그런데 실제 오코너 신부의 모습은 이와는 정반대였다 합니다. 그는 ‘초라하지 않고 깔끔한 편’이었으며, ‘서툴지 않고 매우 섬세하고 재치가 있는’ 사람이었고, ‘잘 웃으면서 남을 잘 웃기기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체스터튼은 자신의 특유의 유머감각으로 다음과 같이 덧붙입니다. “게다가 오코너 신부는 ‘섬세하고 재치 있는 아일랜드인’이었으나 브라운 신부는 영국 동부에 있는 이스트 앵글리아 출신의 ‘서퍽 촌뜨기’였다.”
한편, 체스터튼은 오코너 신부가 브라운 신부의 탄생에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을 밝히는 유명한 일화 하나를 전하고 있습니다. 체스터튼은 매우 다양한 분야에 관한 글을 잡지나 신문에 쓰곤 했는데, 한번은 오코너 신부와 대화하면서 자신이 사회의 범죄와 타락한 풍속들에 대한 글을 구상하고 있다고 하면서, 범죄와 관련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들은 오코너 신부는 체스터튼에게 그가 오해하고 있거나 잘 모르는 일들이 많다고 지적하면서 그가 아는 여러 무시무시한 범죄와 도시의 숨겨진 어두운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관해서 알려주었습니다. 체스터튼은 매우 깊은 인상을 받았는데, 바로 조용하고 명쾌하며 밝은 성정을 가지고 있으며, 독신서약을 지키며 절제된 삶을 살아가는 한 성직자가 언론인이자 작가인 자신보다도 인간의 죄의 세계에 대해서 훨씬 더 잘 알고 있다는게 조금은 충격적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또 하나 재미있는 일은, 얘기를 마치고 함께 돌아가는 길에, 그들이 두 명의 케임브리지 대학 학부생을 만났을 때 일어났습니다. 그중 한 사람이 오코너 신부의 교양있고 학식 높은 대화에는 감탄하면서도, 수도원에서 지내는 사람이 실재 세상에 대해서 얼마나 알겠느냐고 말한 것이지요. 오코너 신부가 세상의 ‘악’에 대해 얼마나 깊은 현실적 지식과 통찰을 지녔고 투쟁해 왔는지를 방금 들었던 체스터튼에게 이 학부생의 말은 더 없는 아이러니였고, 이 두 명의 케임브리지 대학생들은 신부에 비하면 악과 어둠에 대해 유모차에 누워 있는 갓난아기 수준 정도밖에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지요. 그 순간 체스터튼에게는 이렇게 우습고도 비극적인 아이러니를 작품에 담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합니다. 이것이 사실상 브라운 신부가 탄생한 순간이었던 것이지요.
최대환 신부 (의정부교구 정발산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