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교우촌 출신 신부님과 한국 역사를 연구하시는 교수님들 모시고 지방의 어느 교우촌 답사를 간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일정을 마친 후 서울로 돌아오기 전에, 모시옷 전시관에 들러 휴식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때 어느 교수님께서 그 신부님과 나에게 ‘모시 옷’ 한 벌을 선물해주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자, 그 신부님께서는 손사래를 치며 말씀하셨다.
“교수님, 마음만 감사하게 잘 받을게요. 사실 모시옷에 대해서는 제가 이곳 출신이라 잘 아는데, 관리가 어려워요. 무덥고 습한 우리나라의 여름 날씨에 모시옷이 좋기는 해요. 옷감이 몸에 달라붙지 않고, 가실가실한 촉감이 생각만 해도 시원한 느낌을 주거든요. 하지만 모시옷은 세탁기에 돌려도 안 되고, 손빨래를 해야 하는데 막 비벼도 안 돼요.”
그 신부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모시옷’ 선물을 포기해야겠다는 결심이 들었습니다. 그 신부님은 웃으며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모시옷에 있는 때를 뺄 때에도 예전에는 양잿물을 약하게 탄 미지근한 물에 담가 찌든 때를 뺐는데, 지금은 양잿물 구하기가 어려우니 아주 약한 중성세제를 잘 써야 해요. 그리고 모시 옷 관리의 절정은 모시 옷감이 입는 사람의 몸과 살갗에 감기지 않도록 찹쌀 풀을 매기는 것입니다. 이건 정말 기술이죠, 기술. 그리고 풀을 잘 먹인 다음 말릴 때도 반드시 응달에서 말려야 합니다.”
“아이쿠, 모시옷은 보기에 멋진 옷이지만, 섬세하고 정성스럽게 잘 다루어야 하네요. 저는 평생 모시 옷 한번 입기 글렀네요.”
나의 말에 그 신부님은 용기를 주시려는 듯 말씀하셨습니다.
“아뇨, 그렇지 않아요. 모시옷을 관리할 때 시간적인 여유를 좀 갖고, 묵상하는 마음으로 관리하면 좋아요. 저도 가끔 모시옷을 입는데, 이 옷을 관리할 때 마다 제 자신의 내면을 묵상하며 입곤 해요. 그리고 때로는 주어진 현재의 내 삶 안에서 신분에 맞는 옷을 잘 입고 사는 것도 영적으로 성장하는 방법이지요. 우리는 평소 나름대로 상황에 맞게 옷을 입잖아요. 그런 것처럼 우리 각자 마음의 옷을 잘 입고 있는지를 성찰해보는 것은 좋잖아요. 예를 들어 대충대충 옷을 입듯 대충대충 살고 있지는 않는지, 옷을 꽉 끼게 입고 다니듯이 언제나 삶을 빽빽하게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지, 아니면 편안하고 여유 있게 옷을 입는 것처럼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 넉넉한 삶을 살고 있는지가 중요하잖아요. 예모 바르게 자연스럽게 옷을 입으면 모두에게 자연스럽게 잘 어울리잖아요.”
나는 그날, 그 신부님의 말씀을 마음 속 깊이 새겨보았습니다.
‘나는 지금 내 신분에 맞는 마음의 옷을 제대로 입고 있는지….’
평생 옷을 입으며 살듯이, 또한 평생 마음의 옷을 예모를 갖춰 자연스럽게 잘 입고 살아야겠습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