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톨릭문화의 거장들] 동화작가 마해송 (하)
“ 기도하면 사회 바르게 될까” 작품에 드러난 희망
「모래알고금」 연작에서 반공 지지하며 독재정권 비판
착한 신앙인 넘어 문학으로 행동
마해송이 입교 후 발표한 장편 「앙그리께」와 「모래알고금」에서는 작가의 사상이 가톨릭교회와 긴밀하게 관련되어 나타난다. 반공주의, 독재 정권 비판 등 작가가 작품에서 말하고자 한 바는 당시 가톨릭교회의 대사회적인 입장과 일치한다.
1955~1956년 연재 후 1959년 가톨릭출판사에서 단행본으로 발간된 「앙그리께」는 반공주의에 바탕해 6·25 전쟁 체험을 그린 작품이다. 당시 정치상황이나, 종군문인으로 활동하면서 전쟁의 참상을 직접 겪은 그의 이력에 비추어 생각할 때 반공주의는 어쩌면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이 동화에서 공산군은 인민재판으로 민간인을 죽이거나 각종 동원과 보급으로 민간인을 약탈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반공주의는 때로 가톨릭 신앙이나 가톨릭교회와 연관되어 표현된다. 작품에서 종종 공산군은 “마귀” 혹은 “악마”로 지칭된다. 신앙적인 차원에서 존재와 성격이 규정되고 단죄되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독실한 신자인 ‘뒷집 할머니’는 ‘마산 할머니’에게 자신의 기도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성당에서 종소리가 날 때마다 이 세상 어느 땅 어느 나라에서 살건 믿는 사람은 모두 한결같이 한마음으로 똑같은 축문을 올리는 거랍니다. 우리들, 이 한국 땅에서 공산 오랑캐에게 시달려서 갖은 고생을 겪고 있는 우리들을 위해서도 세계 각국 사람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똑같은 시간에 똑같이 머리 숙이고 똑같은 기도를 천주께 올리고 있답니다.”
가톨릭교회가 운영하던 경향신문에 1957~1961년 연재된 「모래알고금」 연작에는 이러한 반공주의가 교회의 입장에서 보다 명확하게 그려진다. 이 동화는 ‘고금’이란 이름의 모래알이 사람들의 옷자락에 이러저리 옮아 다니며 자기가 보고 들은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형식을 지닌다. 어느 날 ‘고금’은 주교의 수단 자락에 붙게 되어 주교의 유럽 교회 방문을 보고 전한다. 주교가 각국 교회를 방문하는 과정과 교황을 알현하는 모습을 소개한다.
이어 주교는 파티마를 찾는데, 여기서 작가는 여러 차례에 걸친 성모 발현 과정을 매우 상세히 묘사하며 성모의 메시지를 인용한다.
“사람들이 나의 원을 들어준다면 러시아는 회개하고 전 세계에 평화가 올 것이다. 그러나 만일 사람들이 나의 원을 듣지 않는다면 러시아는 그의 죄악을 전 세계에 퍼뜨리고 전쟁을 일으키고 착한 사람들을 많이 죽이고 많은 나라들이 망하고 세상은 암담할 것이다. 그러나 끝내는 나의 성심은 이기고야 말 것이다”
「앙그리께」의 반공주의는 「모래알고금」에서 파티마 성모의 메시지가 인용되면서 더욱 분명하고 적극적인 성격을 띤다.
한편 「모래알고금」 연작 3부에서는 독재 정권 비판이 작품 전면에 매우 강하게 표현되는데 이 또한 가톨릭과 관련되어서다. 구두닦이와 식모 일을 하는 어린 아이들은 스스로 생계를 책임지며 고달프게 살아야 하는 이유가 부정부패를 일삼는 대통령 때문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자신들을 지켜주는 하느님이 있기에 대통령의 그늘을 물리치고 자신만의 삶을 개척해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또한 소아마비를 앓는 태규의 엄마는 태규의 소아마비가 독재정권 아래 호의호식하는 태규 아버지 탓이라고 생각하며 속죄와 구원을 위해 가톨릭에 입교하기로 결심한다. 이 작품은 태규가 자기와 놀던 비둘기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시적이고 상징적인 진술로 마무리된다. 이때 비둘기는 정치적으로 평화의 상징인 동시에 신앙적으로 성령의 표징이다. 독재를 무너뜨리고 사회 정의를 회복되는 일을 가톨릭 신앙과 연결시키는 것이다.
“태규는 비둘기가 와야 병이 낫는다든지 병이 나아야 비둘기가 온다는 말인지 중얼거린 것입니다. 어머니는 비둘기가 와야만 병이 낫는다는 뜻으로 들었던 것입니다. ‘세(영세-필자 주)를 받아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죄를 씻고 세를 받아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어머니는 딴생각을 하며 태규의 말이 옳은 말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리고 태규 아버지가 벼슬자리를 그만두고 지은 죄를 씻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태규 아버지가 그 자리를 내놓을 것 같지는 않으니 차라리 늙고 병든 대통령이 거꾸러지면 이것도 저것도 모두 시원하게 풀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마해송 동화에 나타난 반공주의와 독재 정권 비판은 1950,60년대 한국 가톨릭교회의 입장과 일치한다. 노기남 대주교의 친미, 반공적인 입장은 잘 알려진 바 있다. 한편 이승만 정권과 잠시 우호 관계를 유지하던 가톨릭교회는 그 어떤 집단보다 강력하게 이승만 정권을 비판하기도 했다. 즉 마해송 동화에 나타난 도저한 독재 비판은 그의 전 생애와 작품 전반에 나타난 사회 비판 정신과 아울러 그가 한국 가톨릭교회의 입장을 평신도로서의 삶의 영역에서 수용하고 이에 따라 행동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작가 개인의 사상임과 동시에 가톨릭 신앙과의 관계를 도외시할 수 없는 것이다.
경향신문의 정간과 복간에 따라 작품이 변화한 양상은 신앙의 영향을 반증한다. 경향신문이 독재 정권 비판으로 1959년 4월 30일 정간된 뒤 1960년 4·19를 지나 4월 28일 복간되자마자 「모래알고금」의 연재도 재개된다. 연재가 재개되는 지점은 「모래알고금」 연작 2부의 중후반부인데 이 지점부터 독재 비판의 목소리가 선명해지고 작품의 주제와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연작 1부에서 신앙은 사회 정의와 관계없는 개인 차원의 선함으로 강조됐지만 연작 3부에서는 신앙이 사회 정의에 대한 희망이나 의지와 겹쳐 나타난다. 경향신문 정간과 4·19를 거치면서 마해송의 신앙이 당시 교회의 대사회적인 입장과 궤를 같이 하는 가운데 보다 사회적인 차원으로 확장됐음을 알 수 있다.
김유진(아동문학평론가)
아동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대학에서 글쓰기와 토론을 강의한다. 동시집 「뽀뽀의 힘」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