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쉼터] 전라남도 해남 ‘땅끝마을’ 공소를 가다
“길은 끝나지만 하느님 사랑은 끝이 없습니다”
태풍에 무너졌던 공소 새로 지으며
신자들 마음 모아 새 희망 쌓아올려
땅끝마을 ‘땅끝전망대’로 올라가는 모노레일에서 바라본 땅끝선착장 모습. 이곳에서 노화도, 보길도 쪽으로 여객선이 운항된다.
전라남도 해남군 ‘땅끝마을’은 한반도(육지) 최남단이다. 오지였던 이 마을은 방송 전파를 타면서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러볼 만한 관광지’이자 ‘통일전망대까지 도보순례를 시작하는’ 희망의 땅으로 변모했다. 10여 년 전 인기 관광지로 자리매김했던 당시보다 시들해지기는 했지만 땅끝마을은 여전히 한반도 최남단 ‘랜드마크’다.
땅끝마을 인근에 신자들이 가까이 찾아볼 수 있는 공소들이 있다. 태풍으로 황폐화됐다가 신자들의 피눈물 나는 노력으로 새 성전을 마련한 공소도 있어 감동을 더한다. 휴가철을 맞아 이들 공소를 둘러본다면 땅끝마을의 진정한 의미는 ‘세상의 끝’이 아니라 ‘사랑과 희망의 시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느님의 사랑은 끝이 없으시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출발해 고속도로를 타고 약 400여㎞를 달려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일대에 도착했다. 국도변으로 ‘희망의 시작–땅끝마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땅끝, 더 이상 육지를 통해 내려갈 수 없는 곳. 그런데도 ‘희망의 시작’이라고 적어둔 것이다. 지역민들의 자부심이 느껴진다.
땅끝마을에 닿은 첫인상은 여느 시골 마을과 다르지 않았다. 도로변에는 지역 특산물인 ‘무화과’ 판매를 위해 농민들이 간판을 내걸고 장사하고 있었고, 논과 밭에 농기구들이 즐비했다. 송호해수욕장과 땅끝전망대 등 근처에 가야 이곳이 인기 있는 관광지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을 뿐이다.
기자가 먼저 찾을 곳은 땅끝공소(전남 해남군 송지면 산정4길 29, 061-532-9050). ‘땅끝공소’라고 스마트폰 내비게이션 앱으로 검색해보니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주소를 정확하게 적어 넣으니 비로소 위치가 검색된다. 첨단 기기로도 찾아오기 힘든 곳, 과연 땅 끝에 있는 마을을 찾아왔다는 느낌이 든다.
땅끝공소는 땅끝마을 관광지에서 8㎞ 정도(자동차로 약 10분) 떨어진 곳에 있다. 송지면사무소와 송지초등학교를 지나 외길로 100여m를 들어가면 ‘땅끝성당’이라는 표지판이 외부인을 반긴다. 공소라는 표현 대신 ‘성당’이라고 해 놓은 것은 이곳이 동떨어진 곳이 아니라 본당과 마찬가지로 미사를 봉헌하고 하느님을 모시는 교회 공동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공소 규모는 상상 이상이었다. 100여 명이 미사를 봉헌할 수 있는 성전은 깔끔하게 관리돼 있었고 바로 옆 교육관 건물도 쾌적한 환경이다. 수십여 대 자동차를 주차할 수 있는 넓은 공간도 마련돼 땅끝마을을 찾는 신자들이 편리하게 이용 가능하다.
공소 앞 성모상과 성전을 둘러보던 기자를 땅끝공소 이성은(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선교사가 반겼다. 이 선교사는 “이 곳은 새 희망, 새 소망이 자리잡고 있는 곳이지요”라고 운을 뗐다. 그는 절박한 아픔을 딛고 다시 일어선 땅끝공소의 역사와 함께 해 왔다.
지난 2012년 8월 전남 지역을 휩쓸고 지나간 태풍 ‘볼라벤’. 우리나라를 강타한 역대 태풍 중 그 위력이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대단했다. 일반 주택 지붕이 날아갈 정도였으니, 조립식 패널로 지어진 땅끝공소는 그야말로 폐허가 됐다. 예수성심상은 땅에 떨어져 다 부서졌고 공소 지붕은 날아가 흔적조차 없었다. 의자 몇 개만 건질 정도였다. 당시 평균 연령 70대인 할아버지 할머니 신자 50여 명의 마음도 무너져 내렸다.
이 선교사는 그때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주변에서 ‘하느님을 모시는 곳인데 태풍에 날아가다니 어찌된 일이냐’며 비아냥거리는 말도 들었죠.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하지만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지요.”
비닐하우스로 임시로 지은 공소를 바라보던 신자들은 “다시 힘을 내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자들은 공소 텃밭에서 손수 키운 오이와 지역 특산물인 ‘곱창 돌김’을 팔았다. 공소를 신축할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소식을 들은 각지에서 성금도 답지했다. 당시 해남본당 김양회 주임신부는 공소 신축기금에 보태기 위해 사제 생활비를 모두 내놨다.
기도와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지난해 6월 드디어 철근 콘크리트로 단단하게 지은 새 공소 축복식이 광주대교구장 김희중 대주교 주례로 열렸다. 신자들은 감격해 눈물을 흘렸다.
이 선교사는 “하느님께서 주신 태풍이라는 시련은 결국 새 성전 마련을 위해 신자들이 서로 합심하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땅끝은 ‘끝’이 아니었다. 하느님의 사랑을 재확인하고 새로운 희망을 상징하는 말이 된 것이다.
현재 땅끝공소 신자는 90여 명으로 늘어났다. 귀농귀촌 열풍으로 비교적 젊은 신자들이 유입된 까닭이다. 땅끝마을을 찾아오는 외지 신자들 몇몇도 주일 미사를 위해 공소를 찾곤 한다. 아쉬운 점은 많다. 땅끝마을을 관광 또는 피정 목적으로 찾는 외지 신자들을 위해 숙소를 마련하고 싶지만 시골 공소 입장에서 기초예산과 유지비를 대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 선교사는 “예전에는 도로 곳곳에 ‘미사 먼저’라는 벽보를 붙이고 공소로 찾아와 달라고 홍보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도시에서 온 신자들이 공소에 들러 공소 신자들과 함께 소통하고 하느님을 모시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소망에서다. 교회 공동체를 향한 열정에는 본당이나 공소가 따로 없기 때문이다.
땅끝공소를 나서 영전공소(전남 해남군 북평면 땅끝해안로 3233, 061-534-9726)로 향했다. 2차선 국도변에 있는 영전공소는 신자가 거의 없어 주일미사는 남창공소(전남 해남군 북평면 달량진길 25, 061-534-5244)에서 봉헌한다. 하지만 조용히 혼자서 기도하는 시간을 보내고 싶은 신자라면 영전공소가 적합할 것이다. 땅끝마을 관광지와 10여㎞ 떨어져 자동차를 이용하거나, 땅끝선착장에서 버스를 타고 영전리 정류장에 내리면 약 40분 정도 소요된다.
소개한 공소 3곳은 광주대교구 해남본당 관할로, 땅끝마을 관광지에서 출발해 손쉽게 방문할 수 있다. 이번 여름 휴가 기간 땅끝마을을 찾을 예정인, 혹은 이미 방문해 미사를 드리거나 기도할 곳을 찾는 신자들이라면 이 공소들을 꼭 한 번 들러보기를 권한다. 하느님의 사랑이 시작되는 곳, 이곳은 땅끝마을이다.
남창공소(전남 해남군 북평면). 인근 영전공소 신자들이 이곳에서 주일미사를 함께 봉헌한다.
땅끝공소(전남 해남군 송지면). 지난 2012년 태풍으로 폐허가 된 뒤 신자들의 노력으로 지난해 새로 지어 축복식을 가졌다.
영전공소(전남 해남군 북평면). 땅끝해안로 도로변에 위치한 영전공소는 신자가 거의 없어 혼자 조용히 기도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땅끝공소 주일미사. 1·2·5주는 오전 10시30분, 3·4주는 오전 8시20분 봉헌된다. 땅끝공소 제공
방준식 기자 bj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