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7~29일 서울 돈암동본당 중고등부 여름 캠프에 참여한 학생들이 하트 모양을 만들며 수영장에 뛰어들고 있다. 사진 최유주 수습기자
서울대교구 돈암동본당(주임 이충희 신부) 중고등부 주일학교가 지난해부터 프로그램 없는 ‘무(無)프로그램’ 캠프를 진행하고 있어 화제다. 학생들을 일률적인 프로그램에 의무적으로 참여시키는 대신 이들이 스스로 캠프를 즐기고 쉴 수 있도록 색다른 캠프를 마련한 것.
우선 돈암동본당의 여름캠프에는 정해진 기상시간과 취침시간이 없다. 원하는 대로 늦잠을 잘 수도 있고, 밤새워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놀 수도 있다. 실컷 자고 일어나면 교사들이 준비한 다양한 포스트 중 원하는 곳에 참여해 즐기면 된다. 교사들은 캠프 전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해 이들이 쉬며 즐길 수 있는 물놀이, 보드게임, 콘솔게임, 축구, 농구, 족구 등 다양한 포스트를 마련했다. 그나마도 싫으면 쾌적한 수면실에서 실컷 더 잘 수도 있다.
돈암동본당 보좌 이현수 신부는 “학업과 이성문제, 장래 문제 등으로 항상 고민하며 스트레스에 지쳐 있는 아이들이 캠프 동안만이라도 좀 쉴 수 있도록 할 수 없을까 고민하다 프로그램 없는 캠프를 마련하게 됐다”고 말했다.
7월 27~29일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스카이밸리 리조트에서 열린 올해 캠프의 주제도 ‘한적한 곳으로 가서 함께 좀 쉬자’ (마르 6,31)로 정했다. 이 신부는 “학생들이 편하게 지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에 중점을 뒀다”고 강조했다.
학생들은 프로그램 시간에 쫓기지 않다보니 서로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시간이 많아졌다. 고등학교 1학년인 조영익(마태오·16)군은 “예전 캠프는 빡빡한 프로그램 때문에 우리들끼리 놀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면서 “자유로운 환경에서 친구들과 속 깊은 이야기도 하고 고민을 나누다보니 서로 우정도 돈독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조 군은 이어 “원하는 포스트를 스스로 찾아가 자유롭게 즐기다보니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다”면서 “내년에도 또 이런 캠프를 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학생들에게 많은 자유시간을 주다보니 학생들의 안전과 관리를 위한 교사들의 협조는 필수적이다. 참가 학생 67명을 동반하기 위해 13명의 교사가 캠프에 참여했다. 4명의 본당 신학생도 손을 보탰다. 교사들과 신학생들은 긴장을 늦추지 않고 거의 하루 24시간 학생들과 함께 했다.
교무 전은솔(클라라·24) 교사는 “‘아이들을 원하는 대로 풀어주면 문제가 생기기 않을까?’하는 고민도 했었다”면서도 “다행히도 학생들 나름대로 질서를 갖고 생활하려는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이어 “최소한의 프로그램으로 아이들이 쉴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했고, 프로그램이 아닌 자연 속에서 아이들과 직접 만나고 대화하면서 서로 간의 신뢰도 높아지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현수 신부는 “교사들이 학생들의 친구가 되어주고, 학생들이 서로 어울리며 편하게 놀 수 있는 오작교 역할을 해주고 있다”면서 “고민도 들어주고 인생 선배로서 또 신앙인으로서 자신의 경험을 제시해 학생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게끔 돕고 있다”고 덧붙였다.
돈암동본당 중고등부의 이러한 파격적인 여름 캠프는 중고등부 미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해 캠프 전 40여 명에 불과하던 미사참례 인원수가 캠프 후에는 60명 후반에서 70명 초반으로 늘었다. 캠프 참여 학생 수도 지난해 50여 명에서 올해는 67명으로 늘었다.
이 신부는 “아이들이 자유롭게 만나 대화를 하면서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하느님에 대한 이야기나 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면서 “이 캠프가 신앙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최용택 기자 johncho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