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크라쿠프 청년대회’에 참가한 200만 넘는 젊은이들은 성사와 교리교육, 다채로운 문화행사들을 통해 신앙 안에서 일치하는 시간을 보냈다. 사진은 폴란드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대표적 성지인 체스트호바 야스나고라 성지에 운집한 젊은 순례자들의 모습. 2016 크라쿠프 세계청년대회 준비위 제공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 187개국에서 모인 청년 그리스도인들은 교구대회를 마치고 7월 26~31일 본대회에 참가했다. 크라쿠프와 인근 지역은 젊음의 열기와 신앙의 열정으로 가득했고, 거리를 메운 젊은이들은 밝은 미소와 정겨운 악수, 포옹으로 우정을 나눴다. 청년대회의 열기를 모았다.
■ 유스 페스티벌, 젊음의 축제
콘서트, 춤 공연, 퍼포먼스, 운동경기, 영화제, 국제회의와 교회일치모임 등 총 250여 개의 다양한 문화 행사들이 청년대회를 문화 축제로 꾸몄다. 한국에서는 생활성가 밴드인 ‘이사야 53’과 ‘정은혜 무용단’이 크라쿠프 중심인 시장광장 일대에 마련된 대형 무대에서 거의 매일 공연을 펼쳤다.
프랑스의 유명한 음악가인 그레고리 터핀은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재능을 선물해주셨고 우리는 그것을 청년대회에 참석한 모든 젊은이들과 함께 나눴다”면서 “우리는 예술가가 아니라 순례자”라고 말했다.
■ 중국교회도 300명 규모 참가
중국에서도 300명 규모의 참가단이 교구대회와 본대회에 모두 참여했다. 한 40대의 중국 신부는 20명 정도의 참가단을 이끌고 바르샤바-프라가 교구에서 교구대회에 참석한 뒤 곧바로 크라쿠프에 와서 본대회에 합류했다. 그는 다소 수줍은 표정으로 참가단을 소개하면서 “여러 나라의 청년들을 만날 기회는 처음”이라며 “모든 청년들이 반갑고 친절하게 인사를 하고 손을 잡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 자비의 성당 찾는 청년들
이번 세계청년대회 준비위원회는 참가자들에게 대회 기간 중 하루는 ‘자비의 순례’를 하도록 권고했다. 이에 따라 수많은 참가자들이 크라쿠프 성 요한 바오로 2세 성당에서 트램을 타고 약 30분 정도 걸리는 외곽 지역에 위치한 자비의 성당(the Divine Mercy Shrine)으로 순례를 나섰다. 순례는 ‘자비로우신 예수’와 ‘자비의 성녀’ 파우스티나 성화가 걸린 성당에서 기도를 바치는 여정으로 진행됐다. 자비의 성당 내에 있는 작은 경당에는 파우스티나 성녀의 무덤이 자리한다.
■ 눈빛과 손바닥에서 시작된 소통
청년들의 특징 중 하나가 거침없는 자기 표현이다. 특히 목소리가 크고 춤과 노래를 좋아하는 라틴 문화 국가의 참가자들은 언제 어디서나 구호와 노래를 목청껏 외쳤다. 심지어는 열을 지어 지나가면서 다른 나라 청년들과 시도때도 없이 ‘하이파이브’를 하고 얼싸안았다. 자기 표현에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아시아 국가 청년들 역시 하루 이틀이 지난 뒤에는 오히려 앞장서서 ‘하이파이브’.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손바닥을 마주치다 보면 손이 벌개질 정도이지만, 청년들의 소통은 눈빛과 붉게 달아오른 손바닥에서 시작됐다.
■ 파란색 티셔츠의 천사들
큰 덩치에 고색창연한 건물들은 얼핏 보기에는 비슷비슷해 보인다. 처음 크라쿠프를 찾은 순례자들은 자칫하면 길을 잃기 십상. 하지만 골목과 거리마다 청년대회 로고가 새겨진 파란색 티셔츠를 입고 서 있는 봉사자들을 찾으면, 길 안내부터 행사장 구조와 자신이 자리잡아야 하는 구역까지 친절한 안내를 받을 수 있었다. 총 2만여 명의 봉사자들은 사전 교육을 받아 순례자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꿰뚫고 있었다.
■ 거리, 넘치는 청년들과 깃발들
크라쿠프 거리 곳곳은 엄청난 수의 청년들로 넘쳐나 걷기가 힘들 정도였다. 그들과 함께 각국 깃발도 동시에 온 거리를 장식했다. 대목을 맞아 깃발을 팔던 상인들은 청년들의 유쾌하고 친절한 인사와 악수에 감동해 나중에는 무료로 각국 국기를 나눠주기도.
■ ‘교황의 창문’(papal window)
전통적으로 교황이 폴란드를 방문하면 하루에 한 번씩 주교관 창문으로 모습을 나타내고 연설을 한다. 교황청에서 진행하는 삼종기도(angelus)와 같은 형식.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도착일인 7월 27일부터 사흘 동안 크라쿠프대교구 주교관 창문을 통해 젊은 순례자들을 만났다. 수많은 청년들은 두 시간 전부터 창문 밑에서 기다리다 교황이 모습을 드러내면 큰 소리로 환호하고 교황의 건강을 기원했다.
■ 한국인 봉사자 8명 참여, SNS 운영 봉사자 2명 눈에 띄어
이번 청년대회에는 한국인 자원봉사자 8명이 참가했다. 전체 봉사자는 총 2만 명 규모. 5000여 명이 국제 봉사자, 나머지는 크라쿠프와 폴란드 현지 봉사자다.
한국에서 신청해서 자원봉사팀에 합류한 인원은 모두 5명, 나머지 3명은 미국과 스위스에서 유학 중인 학생들이다. 브라질 리우 청년대회 때에도 자원봉사자가 2명 있었지만 모두 유학생들이었다.
특히 처음으로 소셜미디어를 통해 한국어로 대회 소식을 전한 이주현(그레고리오·의정부교구 백석본당), 서한나(요안나·의정부교구 정발산본당)씨의 활동이 눈에 띄었다. 2016 크라쿠프 세계청년대회 공식 소셜미디어는 페이스북과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이 있고, 지금까지는 폴란드어와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등을 비롯해 중국어와 일본어 등의 서비스만 있었다. 봉사자들의 주요 활동은 대회 일정과 주요 소식 및 관련 자료들을 한국어로 옮겨 페이스북에 올리는 것이었다. 한국어 공식 페이스북을 연 첫날, 다른 언어권을 포함한 총 ‘좋아요’ 수는 7000회, 그 중에서 1000회가 한국어 계정에서 쏟아져 봉사자 모임에서 박수까지 받았다. 다른 봉사자들 역시 행사 운영, 박물관 안내, 등록, 교리교육 등 대회의 원활한 운영을 도왔다.
이주현씨는 “참가단과 마찬가지로 자원봉사자도 교구나 한국교회 전체 차원에서 모집하는 것도 필요하다”면서 “단순 참가도 좋지만 봉사자로서 참가하는 것은 더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 청년대회 공식 협력 단체 ACN
이번 청년대회의 공식 협력 단체인 ‘교황청 국제 가톨릭 사목 원조기구’(ACN, Aid to the Church in Need)는 대회 기간 중인 7월 26일부터 31일까지 “Let’s Be One”(하나가 되자) 캠페인을 진행했다. “Let’s Be One”은 고통받는 교회, 그리고 여러 가지 이유로 크라쿠프에 오지 못하는 전 세계 청년들과의 연대 운동이다. ACN은 전 세계에서 40여 개 그룹의 청년들이 크라쿠프에 올 수 있도록 지원했다.
ACN 국제 사업지원팀장 레기나 린치씨는 “세계청년대회가 열릴 때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이 소수 종교로 있는 나라 혹은 박해받는 나라의 청년들의 참가를 돕고 있다”고 말했다.
ACN 한국지부에서는 2명의 직원을 파견해 각국 청년들에게 ACN의 활동을 알리고 참여를 호소했다. ACN은 크라쿠프에서는 성소박람회장 부스 설치와 홍보 활동, 선교지역 신자들의 증언, 오라토리오 연주, 관련 영상 상영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세계청년대회장에 파견된 ACN 한국지부 직원 이재원씨는 “청년대회에 오고 싶지만 못 오는 가난한 나라 교회들을 도와줌으로써 신앙 안에서 우리 모두가 하나임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ACN은 전 세계 곳곳에서 어려움을 겪는 가톨릭 교회를 지원하는 교황청 직속 재단으로, 한국에도 ‘고통받는 교회 돕기’(ACN 한국지부)라는 명칭으로 2014년에 진출했다.
■ ‘십자가의 길’ 대신 ‘자비의 길’
하루종일 거리를 휩쓸고 다니면서 노래와 춤으로 축제를 벌이던 청년들. 7월 29일 금요일 5시45분 브로니아 공원에서 거행된 ‘십자가의 길’에서 그들은 거룩하고 엄숙한 순례자들이었다.
80만 명에 달하는 젊은이들은 48만㎡ 규모의 넓은 벌판에서 각 처마다 무릎을 꿇고 예수님의 수난이 지금도 고통받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 계속되고 있음을 성찰했다. ‘십자가의 길’을 넘어서, 자신들이 가야 할 ‘자비의 길’을 제안하는 시간이었다.
중앙 제대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자리를 잡았다. 이어 청년대회 십자가가 각 처에 도달하면 참가자들은 음악과 무용, 심지어 암벽타기까지 흥미로운 퍼포먼스를 펼쳤다. 특히 이 퍼포먼스들은 청년들 스스로 고민하고 구성해 의미를 더했다.
‘십자가의 길’ 대신 제안한 ‘자비의 길’은 굶주린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는 일부터, 무지한 이들을 가르쳐주고 고통받는 이들을 위로하는 일까지 육체적, 영성적인 14가지의 자비 실천의 길을 포함했다.
1처에서는 시리아 난민 2명이 함께 십자가를 짊어졌다. 이어 기도문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예루살렘에서 나그네라고 배척받은 것처럼, “람페두사섬의 해안에서, 북적이는 난민 캠프에서 그들은 환대가 아닌 죽음을 만났고, 우리들은 죽음의 위험에 직면한 나그네들을 거부했다”고 성찰했다.
교황은 이에 관해 “고통받는 세상 속에서 하느님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지?”라고 반문하면서, “하느님께서 그들 안에 함께 계시고, 예수님께서 그들 안에 계신다”고 응답했다. 교황은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환대는 그리스도인의 표지”라고 덧붙였다.
7월 29일 거행된 ‘십자가의 길’ 행사. 시리아 난민 2명을 포함한 젊은이들이 십자가를 지고 제1처로 향하고 있다.
파우스티나 성녀가 수도생활을 한 수도원과 함께 있는 ‘자비의 성당’을 찾은 젊은이들의 행렬이 길게 늘어서 있다.
크라쿠프의 중심가인 시장광장에서 수도자와 젊은이들이 함께 춤과 노래를 즐기고 있다.
■ 주교회의 청소년사목위원회 위원장 정순택 주교
“오직 신앙으로 하나된 청년들 보며 벅찬 감동”
“청년들이 세계청년대회를 통해서 평화와 관용을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평화를 향한 염원은 이미 그들의 가슴 속에 새겨져 있습니다. 힘없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사랑과 연대의 정신, 가슴 깊이 새겨져 있는 그것들을 드러내는 자리가 바로 청년대회입니다.”
주교회의 청소년사목위원회 위원장 정순택 주교는 오히려 세계가, 어른들이, 청년들에게서 평화와 신앙 안에서의 일치를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나라와 문화, 언어가 다른 청년들이 오직 신앙 하나로 하나가 된 모습을 보는 것은 정말 가슴 벅찬 일입니다.”
어른들은 젊은이들에게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 정 주교는 청년대회에 참가하면서 두 가지 지향의 기도를 한다고 밝혔다.
한 가지는 먼저, 우리 모두가 전쟁으로 얼룩진 세상을 치유할 가치에 눈뜰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정 주교는 “과거에는 서로 소통하지 못해서 싸우는 경우가 많았지만 평화로운 소통과 대화가 얼마든지 가능한 오늘날, 전쟁이란 야만과 미개함을 드러낼 뿐”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정 주교는 “인류가 새로운 차원의 가치, 참다운 평화와 공존의 가치에 눈떠야 할 때”이고 “우리는 그것을 청년들에게서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또 한 가지 지향은 평화로운 남북통일이다. 정 주교는 “수십 년 동안의 기도가 공산권의 붕괴와 구소련의 회개를 가져왔다”면서 “요란하지 않지만 꾸준하고 열심한 기도 운동을 통해, 마치 오메가 포인트처럼 모든 기도의 힘이 모아져 마침내 평화 통일이 이뤄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 주교는 아울러 이번 대회에 관해 “역대 어느 대회보다도 잘 준비됐다”고 말했다. 다만 “정치적, 경제적 힘이 강하고 많은 인원이 참가한 나라들에 비해, 소수 인원이 참가한 가난한 나라 청년들이 자신들의 존재와 희망을 마음껏 분출하지 못하는 것은 좀 아쉬웠다”고 전했다.
세계청년대회 개최국으로서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정 주교는 “언젠가는 한국교회가 세계청년대회를 유치할 것”이라면서 “그리스도교 국가가 아니라는 점에서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다종교 다문화의 특성을 살린, 한국적 형식의 새로운 방법론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폴란드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