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세계청년대회 폐막] 교황의 침묵, 그리고 메시지
교황 “잔혹함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세상 치유할 용기를 가지세요”
젊은이들을 발치에 앉힌 채 7월 30일 전야제를 주관하는 교황. 흐뭇한 표정으로 젊은이들을 바라보는 교황은 세상의 희망을 그들에게서 발견하고 있는 듯하다. 【CNS】
세계청년대회 참석차 폴란드를 방문한 교황을 촬영한 사진기자들은 교황의 표정이 두 가지로 눈에 띄게 나눠짐을 보다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청년들을 만나는 교황은 천진한 미소를 띠지만, 인류의 야만성을 경험한 폴란드를 만난 교황은 고뇌와 번뇌로 가득한 침묵의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표정의 변화는 곧 교황의 고뇌와, 그 고뇌에도 불구하고 젊은이들을 보고 만나면서 품게 되는 희망을 그대로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는 십여 차례에 걸친 강론과 연설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 일그러진 세상, 세계는 전쟁 중
교황은 폴란드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오늘의 세계 상황에 대한 우려를 ‘세계는 지금 전쟁 중’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교황은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세계는 전쟁 중이라고 말했다.
40명의 유다교 지도자들과의 만남(2014년 9월), 민중운동세계대회(the World Meeting of Popular Movements, 2014년 10월 28일), 바티칸 주재 외교단에 보낸 메시지(2015년 1월 12일), 이탈리아 튀린의 젊은이들과의 만남(2015년 6월 22일) 등에서도 교황은 오늘날의 세계가 제2차 세계대전에 버금가는 참혹한 전쟁의 상황에 처해 있다고 지적했다.
7월 29일 아우슈비츠를 방문한 교황은 2시간 동안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소리 없는 웅변이었다. 인류의 야만성에 대한 영혼 깊은 곳으로부터의 참회와 통회였다. 어떤 말로도 할 수 없는 용서의 청원이었다.
교황은 침묵을 공감과 회개, 용서의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여기는 듯하다. 지난 2014년 한국 방문 당시에도 교황은 난민의 처지에 있는 한 소녀의 울먹이는 하소연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다만 껴안고 눈시울을 적셨다.
■ 교황의 침묵
이번 청년대회에서 교황은 침묵 속의 기도를 젊은이들에게 청했다. 아우슈비츠에서 2시간 동안 침묵의 용서를 청했고, 전야제에서는 세상의 전쟁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해달라고 함께 기도하자며 1~2분 동안 침묵을 지켰다.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지금 세계의 처지는 침묵으로써 회개하고 참회하며 평화를 기원해야 하는, 깊은 슬픔과 고통의 상황인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자비의 희년’은 그 간절한 고뇌가 담긴 염원이었다.
현대사의 온갖 야만성과 비참함을 역사 안에 품고 있는 폴란드 방문을 앞두고 교황은 또 하나의 충격적인 테러 소식을 들어야 했다. 프랑스 니스 참사에 이어, 미사 집전 중인 85세의 노사제가 살해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세상은 ‘전쟁 중’이라는 것이 다시 한 번 확인됐다.
29일 금요일 ‘십자가의 길’ 행사에서 젊은이들은, 전통적인 ‘십자가의 길’ 대신 14가지 ‘자비의 길’을 또래들과 교황 그리고 세상에 제안했다. 이 제안을 듣고 교황은 우선 “무죄한 사람들이 폭력, 테러와 전쟁으로 인해 희생될 때, 과연 하느님은 어디에 계셨을까요?”라고 반문했다.
■ 예수님의 침묵
교황은 이어 “하느님께서, 예수님께서 그들 안에, 그들과 함께 있었다”면서 “주님께서는 침묵하시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 안에서 눈물을 흘리고, 그들과 함께 고통을 당하고 계셨다”고 말했다. 또 주님께서는 “여러분들이 고통받는 이들에게 구체적으로 응답하기를 원하신다”고 권고했다. 그러고 나서 교황은 십자가를 함께 지고 온 2명의 시리아 난민 젊은이들을 꽉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아우슈비츠에서의 고통스런 침묵, 어린이병원의 가엾은 아이들, 그리고 십자가의 길에서 주님의 고통을 묵상한 뒤 교황은 크라쿠프대교구 주교관 ‘교황의 창문’(Papal Window)에서 순례자들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도 교황은 젊은 순례자들에게 아우슈비츠에서의 고통과 비참, 야만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여전히 세상에는 잔혹함이 남아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고문이 자행되고, 죄수들이 짐승처럼 좁은 곳에 갇혀 있습니다.”
교황은 “얼마나 많은 고통과 잔혹함, 어떻게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우리가 그런 일을 할 수 있습니까”라면서 “이런 일들이 지금도 있다”고 토로했다.
“여러분을 슬프게 하고 싶지는 않지만 저는 진실을 말해야 합니다. 아우슈비츠와 비르케나우의 잔혹함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늘, 오늘, 오늘도….”
7월 29일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찾은 교황은 2시간 동안 단 한 마디도 하지 않는 침묵으로, 가장 참혹하게 드러난 인류의 야만성에 대해 깊은 통회와 용서의 청원을 표시했다. 2016 크라쿠프 세계청년대회 준비위 제공
■ 새로운 인류 문명을
이제 교황은 청년대회에 참석한 젊은이들에게 자신의 기대와 희망을 밝힌다. 28일 청년대회 참가자들과의 첫 번째 모임인 환영식이 브로니아 공원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서 교황은 “자비로운 마음은 난민과 이주민들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서 “그들이 우리에게 위협이 될지 모른다고 해도, 다른 문화의 사람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귀 기울이자”고 말했다. 교황은 이어 “하느님께 사람들 사이에 다리를 건설하고 벽을 무너뜨리기 위한 노력을 시작하도록 도와달라고 청하자”고 권고했다.
30일, 폐막미사를 앞두고 열린 전야제에서 교황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안에 폐쇄적으로 갇혀 있는 것이 해를 입지 않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믿게 하려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 어른들은 여러분 젊은이들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다문화가, 다양성과 대화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위협이 아니고 기회가 될 것인지를 말입니다.”
그래서 교황은 젊은이들이 편안함과 안락함을 행복으로 착각하지 말고 신발을 꽉 매어 신고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해’ 나서라고 촉구했다. 특히 청년대회의 마지막 날인 31일 폐막미사에서는 젊은이들이 세상에 새로운 삶의 방식을 보여줄 것을 권고했다. 또한 “하느님께서는 무너지고 고통받는 일그러진 세상을 치유할 자비와 용서의 힘을 발휘할 ‘참된 용기’를 바로 여러분 젊은이들에게 요구하신다”고 강조했다.
폴란드에서 교황은 지금 인류가 얼마나 야만적인 전쟁의 소용돌이에 싸여 있는지 경각심을 일깨우는 동시에, 그 절박한 현실 인식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망이 있음을 선포했다. 그리고 그 희망의 선봉에는 청년대회에 참석한 젊은이들이 대표하는, 전 세계 젊은이들이 나서야 한다고 호소했다.
폴란드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