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 년 전 가을, 대전에서 가족 모임을 마치고 가족과 친지들이 두 대의 차에 나누어 타고 서울로 향했습니다. “형님! 차도 막히고 하니 다음 휴게소에서 잠깐 쉬었다 가시죠”라고 전화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쉬긴 뭘 쉬어요. 빨리 가서 자는 게 훨씬 낫죠”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형님의 조급증이 또 발동한 것입니다.
저는 할 수 없이 졸음을 억지로 참아가며 꾸역꾸역 운전을 했습니다. 호법 IC를 지나자, 정체는 더욱 극심해졌고 차는 가다 서다를 반복했습니다. 그렇게 서행을 하면서 곤지암을 막 지났을 무렵, 앞서 가던 형님이 차를 세우고 급하게 내리더니 앞차로 가서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깜빡 졸다가 서있는 앞차를 추돌한 것입니다. 서행 중이었지만 앞차의 후미 범퍼가 깨졌습니다. ‘빨리 가서 편안히 자겠다’는 고집불통 성격 때문에 발생한 사고였습니다. 결국 집에 빨리 도착하기는커녕 오히려 사고처리로 더 늦어진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습니다.
요즘 고속도로를 다니다 보면 “제발 쉬었다 가세요!”라는 현수막이 중간 중간에 걸려 있습니다. 그 현수막을 볼 때마다 그때의 일이 떠올라 빙그레 웃습니다. 얼마 전에도 대형버스 운전기사가 앞서 가던 차들을 들이받아 많은 사상자를 내는 참사가 있었습니다. 그 사고의 원인 또한 졸음운전이었습니다.
이렇듯 운전할 때 사고 예방을 위해 중간에 휴식이 필요하듯이, 우리의 인생살이에서도 일과 휴식의 조화는 필수적입니다. 그래서 각국의 대통령이나 세계적인 기업의 CEO들도 바쁘지만 반드시 휴가를 떠납니다. 휴가를 통해서 육체적ㆍ정신적 재충전은 물론 중요한 국가전략이나 사업계획 등을 구상합니다.
세계적인 휴식분야의 전문가인 메튜 애들런드는 ‘휴식’에서 “얼마나 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쉬는가가 중요하다”라면서 적극적인 휴식을 강조했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적극적인 휴식에는 정신적 휴식, 사회적 휴식, 영적 휴식, 육체적 휴식이 있다고 역설했습니다.
물론 휴식을 위해 사람들로 붐비는 유명 해수욕장이나, 시원한 계곡이 있는 산으로 가는 육체적ㆍ사회적 휴식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 같은 신앙인들은 일반인과 다른 영적인 휴식을 가져보는 것도 또 다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적인 휴식의 대표적인 방법으로는 피정과 기도를 들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한 번쯤 번잡한 일상을 떠나 조용한 피정의 집이나 성지에서 자신만의 영적인 휴식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그곳에 머물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 하느님의 자녀로 사는 것인가’에 대해서 깊이 성찰해 본다면 그 어떤 휴식보다도 보람 있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도 종종 혼자 산에 올라 기도를 하시며 영적인 휴식을 취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영적인 휴식은 세상살이에 물든 흐트러진 마음을 정화하고 정신적으로 안정감을 회복하는 것은 물론, 하느님과의 만남을 통해 내적인 영성을 재충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이연세(요셉) 대령/육군 항공작전사령부 안전관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