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열린 본당의 날 가을체육대회 육상 종목에 참가한 신자들이 달리고 있다. 가톨릭신문 자료 사진
안양대리구 명학본당(주임 황재원 신부)은 최경환 성인의 전교로 모인 공동체를 이어 가면서 내적·외적 복음화를 위해 힘써 온 본당이다.
명학 지역의 옛 이름은 경기도 시흥군 소이면 주접리였다. 주접리에서는 박해를 피해 수리산에 정착한 최경환 성인의 전교로 신자들이 하나 둘 늘기 시작해 공소공동체가 형성됐다. 주접리공소는 1900년 하우현본당이 설립될 당시에는 본당 소속 공소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공소였다. 1954년 안양본당(현 중앙본당)이 설립되면서 공소는 ‘6동 공소’로 안양본당에 편입됐다. 비록 공소의 규모가 크기는 했지만, 소속 본당이었던 중앙본당과 2㎞도 채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있어 본당 설립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명학 지역에 본당 설립을 준비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다. 1971년 중앙본당은 안양도시계획 사업의 재원마련을 위해 공개 입찰된 체비지(替費地)를 확보했다. 중앙본당은 기존에 마련한 성당부지가 있었지만, 산 쪽으로 치우쳐 성당 터로 적당하지 않아 안양도시계획 제3지구 26획지 내의 체비지를 성당부지로 매입한 것이다.
명학성당.
1978년 7월부터는 성당건축에 들어갔다. 당시 안양 시내는 도시화에 따라 인구가 급증하고, 신자 수 역시 증가해 1개의 본당으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에 중앙본당은 안양 시내에 3개 본당을 신설하기로 목표를 잡고 대대적인 모금운동을 전개했다.
1978년 10월 4일, 안양 시내에 2개의 본당이 설립됐다. 명학본당과 비산동본당이다. 명학본당은 설립 당시 안양6동본당으로 명명됐으나 1980년 명학본당으로 개칭됐다.
본당은 다양한 활동을 통해 지역사회 이웃들과 함께했다. 특히 1981년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 행사, 1984년 한국교회 창설 200주년 기념대회를 계기로 사회적으로 교회의 인식이 좋아진 흐름을 타고 대사회적인 활동에 박차를 가했다.
본당은 문맹자들을 위한 한글공부 무료강좌를 개설하기도 하고, 1988년에는 독신 노인을 위한 봉사단체 ‘성 프란치스코 최경환회’를 창립해 운영하기도 했다. 성당 건축과 함께 본당 산하 성심유치원도 운영했으나 교세 증가에 따라 성당 공간이 협소해져 1987년 8회 졸업생을 끝으로 폐원했다. 또 장학회를 구성해 소년소녀가장들의 학비를 보조하기도 했다. 1995년에는 ‘사랑의 굶기 운동’을 펼쳐 기아 체험을 통해 모은 성금을 아프리카에 보내기도 했다.
내적인 신앙을 다지는 일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1985년에는 본당의 주보성인인 성 김대건 신부의 유해를 제대에 모시고 가정순회 기도회를 마련했다. 또 지속적으로 성경읽기 운동을 전개해 말씀을 익히고, 성음악에도 관심을 보여 1998년에는 새 미사곡 악보와 이를 담은 미사곡 테이프를 발간하기도 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