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버트 키스 체스터튼이 창조한 추리소설 속 탐정역 캐릭터 파더 브라운. 국내에도 일찌감치 작품이 소개됐으며, 북하우스에서 브라운 신부 전집(총 5권)을 출간했다. 출처 나무위키
■ 브라운 신부의 신학 : 이성, 신앙, 신비
우리는 브라운 신부 이야기들을 읽으며, 추리소설로서의 반전과 촌철살인 같은 심리 파악, 심층적인 논리, 좋은 취향의 유머와 풍자를 즐길 수 있을뿐더러 브라운 신부를 통해 전해지는 영성적 지혜들에 감탄하며 배우게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영성과 삶의 지혜는 우연한 것이 아니라 깊은 신학적인 뿌리에 확고하게 뿌리내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체스터튼은 난해하고 사변적인 표현과 방식을 피하면서도 어떻게 신학의 핵심적인 요소들이 한 인물의 생각과 판단과 감정을 올바로 이끄는 역할을 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브라운 신부는 그런 의미에서 ‘이야기 신학’의 한 탁월한 예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브라운 신부의 신학을 이야기할 때, 핵심적인 개념 세 가지로 ‘이성’ ‘신앙’ ‘신비’를 들고 싶습니다. 이성과 신앙이 조화를 이루고 신비에 대한 건강한 경외심을 갖는 것이 브라운 신부가 언뜻 보기에 복잡해 보이는 사태의 핵심을 관찰하고 직관할 수 있는 비밀이며, 화려한 언변과 지위, 명성을 지닌 사람들의 왜곡되고 병든 심리와 위선을 꿰뚫어 보고 연민과 용서와 인정이 필요한 이들에게 적절하게 용기와 위로가 되는 말을 발견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브라운 신부의 신학을 생각해보면, 체스터튼이 훗날 가톨릭 교회의 품에 안기게 된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게 되기도 하지요. 브라운 신부의 신학을 알기 위한 가장 좋은 예는 브라운 신부가 나오는 첫 번째 에피소드이자 가장 유명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푸른 십자가」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 작품은 종교철학이나 기초신학 강의나 저서에서 즐겨 언급될 정도로 재미있으면서도 신학적으로 의미 있는 작품입니다.
이 에피소드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브라운 신부의 외모와 첫인상에 대한 묘사를 보게 되는데, 흥미 있는 것은 그 관찰자가 프랑스의 유명한 경찰 발렝탱 탐정입니다. 이 발렝탱 탐정은 반 종교적인 계몽주의와 이성만능주의를 상징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다른 에피소드에서 발렝탱 탐정과 브라운 신부는 치열한 대결을 하게 되는데요, 「푸른 십자가」에서는 아직 그런 파국은 보이지 않고 우호적인 관계가 시작되는 것으로 설정돼 있습니다. 발렝탱 탐정은 이야기의 끝에서 브라운 신부가 딱하고 우둔해 보이는 외양과는 달리 뛰어난 지성과 통찰력, 기지를 고루 갖춘 탁월한 인물임을 뒤늦게 알고 브라운 신부에게 경의를 표하고 있는데, 그를 통해 독자는 브라운 신부가 어떤 사람인지를 잘 알게 됩니다. 이 이야기에는 브라운 신부 이야기에서 꽤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 플랑보가 등장합니다. 플랑보는 프랑스의 전설적인 도적이었는데, ‘범죄가 창조적인 예술가라면, 탐정은 비평가에 지나지 않다’는 도전적인 말과 함께 브라운 신부와 대결을 하지만, 번번이 덜미를 잡힙니다. 브라운 신부는 그의 내면의 선성을 직감적으로 알기에 그를 범죄의 유혹에서 나오게 하려고 그에게 훈계와 경고도 하고 설득도 합니다. ‘날아다니는 별들’이라는 작품에 나오는 조언이 아주 인상적인데요, 이것은 플랑보에게 하는 연민의 말이기도 하지만, 또한 브라운 신부가 얼마나 사람의 심성을 잘 통찰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길버트 키스 체스터튼.
“자네가 그 다이아몬드들을 되돌려주기를 바라네, 플랑보. 그리고 이런 생활을 그만뒀으면 하네. 자네에게는 아직 젊음과 명예와 재치가 있지 않나. 그것들을 이런 일에 소진할 생각일랑은 말게. 인간은 선한 일에 있어서는 일정 수준을 유지할 수 있네만, 나쁜 일에는 그 수준을 유지할 수가 없다네. 점점 더 내리막길을 향해 내달릴 뿐이지. 친절한 사람도 술을 마시면 잔인해지고, 솔직한 사람도 살인을 하면 그 때문에 거짓말을 하게 된다네. 내가 알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자네처럼 의리 있는 무법자가 되고 부자들만을 터는 유쾌한 도적이 되겠다고 이런 일을 시작했다가 결국에는 진흙탕 속에서 뒹구는 신세가 되었네.”
다행히 플랑보는 훗날 개과천선하여 범죄자 대신에 탐정이 되고 브라운 신부의 가까운 친구이자 충실한 협조자로 함께합니다. 루팡이 왓슨이 된 셈이지요.
「푸른 십자가」에서는 물론 플랑보는 범죄자로서 브라운 신부에게 접근합니다.
이야기는 프랑스에서 열린 세계성체대회에 브라운 신부가 교구의 보물 중의 보물인 ‘푸른 십자가’를 가지고 참석했다가 무사히 가져오는 임무를 맡은 데서 시작됩니다. 플랑보는 아주 근사하게 수도자로 변장하여 브라운 신부에게 접근, 두 사람은 동행이 되어 길을 갑니다. 발렝탱 경감은 플랑보가 푸른 십자가를 노린다는 정보를 듣고 브라운 신부를 몰래 관찰하는데, 브라운 신부 옆의 수도사다운 품위를 갖춘 사람이 플랑보라는 것을 서서히 감지하게 됩니다. 다만, 이 두 명의 인물이 지나간 자취마다 희한한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수수께끼였지요. 그것은 사실 브라운 신부의 일종의 신호라는 것이 나중에 드러납니다.(그 내용은 직접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브라운 신부의 신학을 논하는 흥미로운 언급들은 브라운 신부가 이 수도사로 분장한 플랑보와 나누는 대화에 나옵니다. 브라운 신부와 대화를 나누면서 플랑보는 이렇게 말합니다. “네, 맞습니다. 하느님을 섬기지 않는 요즘 사람들은 이성을 따른다고 말을 하니까요. 하지만 이 수많은 세상의 모습을 보는 사람들이라면 이성이 전혀 이성적이지 않은, 아름다운 천상의 세계가 존재하리라 생각하지 않을 이가 누가 있겠습니까?” 그러자 브라운 신부는 반박합니다. “아닐세, 이성은 심지어 최후의 지옥의 변방에서나, 만물의 소실점에서도 항상 ‘이성적’이라네. 사람들은 교회가 이성을 타락시킨다고 하지만, 실은 반대야. 세상에서 진정으로 최고의 이성을 이루어내는 곳은 교회뿐이고, 하느님께서 이성에 의해 구속되심을 인정하는 곳도 교회뿐이라네.” 그리고 마침내 플랑보의 정체를 밝혀낸 후에, 자신의 정체를 어떻게 알게 되었냐는 물음에 이렇게 대답합니다. “자네, 이성을 공격하지 않나. 신학을 하는 사람에게 그리 좋은 태도가 아니지.”
최대환 신부 (의정부교구 정발산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