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톨릭문화의 거장들] 성음악가 이문근 신부 (상)
한국교회 첫 4부 합창용 「가톨릭 성가집」 엮어
명동성당 반주자로 적극 활동
음악대학 출강하며 후학 양성
잡지 기고문엔 ‘재즈’ 관심 보여
「한국천주교회사」(유홍렬 지음)는 이문근 신부의 12대 조부 이수광이 자신의 저서 「지봉유설」(芝峯類說)에 기술한 내용을 이렇게 전한다.
“마두(마테오 릿치)라는 사람이 있어 … 그가 지은 책인 「천주실의」(두 권)에는 첫머리에 천주께서 처음으로 천지(天地)를 만들어 안양(安養)의 도(道)를 주재하심을 이야기하고, 다음으로 사람의 혼(魂)은 없어지지 아니하므로 짐승과는 크게 다르다 함을 이야기하고, 그 다음에는 윤회육도(輪廻六道=불교)의 그릇됨과, 그리고 천당과 지옥 및 착한 일과 악한 일에는 갚음[報應]이 있음을 밝혔다….”
「한국천주교회사」는 이렇게 마무리한다
“이리하여 이수광이 뿌린 씨는 좋은 열매를 맺게 되어, 1백 80여년 후에 나온 그의 8대 손자되는 이윤하(가롤로)에 이르러서는 마침내 천주교를 믿고 이를 위하여 피를 흘리게 되었다.”
1919년 충북 단양, 천주교 집안에서 순교자의 후손으로 태어난 이문근 신부는 인천 박문학교를 졸업한 후, 사제가 되기 위해 1933년 4월 동성상업 을조에 입학한다. 동성상업(현 동성 중고등학교)은 일반 학생을 위한 갑조와 성소자를 위한 을조(성 니콜라오 신학교)로 구분됐다.
1938년 용산 성심 대신학교(현 성심여고 자리)에 입학해 1년간의 보수과와 2년간의 철학과를 마치고, 1941년 4년간의 신학과에 입학했다. 제2차 세계대전과 일본의 식민지 지배 속에서 성심 대신학교는 1942년 2월에 폐쇄돼 독일의 성 베네딕토 신부들이 운영하던 덕원 신학교에서 학업을 계속했다.
이문근 신부는 1944년 10월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노기남 주교로부터 신품성사를 받은 후, 명동본당 보좌신부로서 사목활동을 했다. 또 명동본당 혼성합창단(현 가톨릭 합창단의 전신으로, 1939년 남성3부 합창단으로 시작)의 반주자로 활동했을 뿐 아니라, 혜화동 대신학교 신학생들의 음악교육에 힘썼으며, 무엇보다 최초의 4부 합창 성가집인 「가톨릭 성가집」을 1948년에 편찬했다.
1949년부터 1955년까지는 이탈리아 로마 교황청 음대에서 교회음악을 수학했다. 당시 교황청 성가대 악장이었던 페로시(Lorenzo Perosi)와 그의 후임자 바르톨루치(Domenico Bartolucci)의 제자로서, 1952년에 그레고리오 성가 석사학위를, 1955년에는 작곡과 디플롬을 획득했다. 동시에 오르간을 부전공으로 수학했다.
귀국 후엔 가톨릭 신학대학 교수(1955~1964)와 학장(1964~1967)을 지냈는데, 이 시기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한양대학교 음악대학, 경희대학교 음악대학에도 출강했다. 특히 1957년엔 ‘전국 통일 가톨릭 성가집’인 「정선 가톨릭 성가집」을 출판했다.
또한 1956년 4월부터 1958년 4월까지 월간 「가톨릭 청년」에 25회에 걸쳐 ‘교회음악’을 주제로 글을 연재했다. 이어 1961년 「주요첨례 그레고리안 성가, 오선보」를 출판했고, 한국 「가톨릭 청년」 1967년 6월호에 “과연 쟈스(재즈) 음악이 교회음악에 들어올 것인가?”, 그리고 8월호에 “내가 걷고 있는 韓國 聖音樂의 길”을 게재하기도 했다. 1977년에는 회갑기념 「이문근 신부 작곡집」이 한강성당에서 발행됐다.
1. 「가톨릭 성가집」(1948)
한국 가톨릭 성가집의 역사를 보면, 「신학교 성가」(용산 1911,1912,1920, 4선보에 4각 네우마), 「사리원 성가집」(1921년 분실), 「朝鮮語 聖歌」(덕원 1923 분실)를 거쳐, 현존하는 첫 성가집인 「죠선어성가」(서울 1924) 이후 서울, 덕원, 대구, 회령 그리고 연길을 중심으로 약 12권의 성가집이 더 출판됐다. 「대구교구 성가집」(1938)과 「가톨릭 성가」(덕원 1938년)가 마지막 두 권이다. 이 성가집들은 나름대로 다양한 특징들을 가지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성가의 멜로디만 싣고 있다.
이문근 신부가 1948년 발행한 「가톨릭 성가집」은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4부 성가집으로서, 한국 교회음악과 성가집의 역사에서 커다란 전환점이 됐다.
「가톨릭 성가집」의 엮은이로서 이문근 신부가 남긴 ‘머리말’(당시 표기대로)로써 이 성가집의 성격과 의미를 알아들을 수 있다.
“이 성가집은 그 이름이 말하는 바와 같이 대부분이 예전부터 우리 가톨릭 교회 내에 성가로 사용되든 시와 노래를 수집하여 거기서 우리 땅에 제일 적합하고 제일 아름다운 것을 가리여 이루어진 책이다.
여기에 모은 성가는 예전적 창미사가 아닌 미사와 성체 강복 때에 불러야 할 것이다.
미사는 제대우에 신부가 참례하는 “교우들과 더브러” 천주께 드리는 제일 거룩한 제사이다. 그러므로 신부가 거룩한 히생을 성부께 드리는 동안 모든 교우들의 기도도 노래와 함께 “유황 연기같이” 천국을 향하여 올러가야 할 것이다….
곡은 될 수 있으면 모여있는 모든 교우들이 다 함께 부르기에 용이하고 가톨릭적 감촉이 특히 풍부한 것을 고르고저 하였다. 그러므로 이 성가집은 교우들의 개창을 희망하는 것이다. 또 많은 지방에서 큰 축일에 성가를 합창하여 더욱 그날을 성대하게하고 아직 이렇지 못한 지방에서도 그런 뜻과 그런 계획은 있는 모양으로 이런 성가대를 위하여 혹 유조할까하여 그레고리안 성가 외에는 전부 혼성 합창곡으로 편곡되었다. 많이 이용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그리고 아직 적당한 반주책이 없는 지방에서는 이 편곡을 그대로 반주로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 변변치 못하나마 여러 지방 성가대에 일조라도 될 수 있다면 이상없는 영광으로 알겠다.”
외국 성가책과 한국에서 출판된 성가책들을 참고해 전체 117곡으로 엮은 「가톨릭 성가집」은 머리말에서 밝힌 바와 같이 “미사와 성체강복”을 위한 성가들로 구성됐다. 이 성가집에서 이문근 신부는 3곡의 자작곡(83번 福者讚歌, 93번 삐에 뻴리까네, 112번 라우다떼) 외에도, 40곡을 편곡했고, 7곡의 그레고리오 성가에 반주를 붙였다.
최호영 신부(가톨릭대 음악과 교수)
독일 레겐스부르크 국립음대를 거쳐 뮌헨 국립음대에서 오르간 디플롬과 그레고리오 성가 교수 자격을 취득했다. 현재 가톨릭대 음악과 교수, 서울대교구 성음악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