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쉼터] 생명농업으로 창조질서 보전하는 전북 진안군 ‘만나생태마을’
땀 흘려 지키는 생태환경 “하느님 창조하신 그대로”
유기농법 통한 생명농산물 생산
노동과 나눔으로 하느님 사랑 실천
봄·가을 ‘참살이 영성피정’도 마련
만나생태마을 블루베리밭에서 신자들과 함께 수확의 기쁨을 누리는 최종수 신부(가운데). 그에게 블루베리는 정성과 기도로 가꾸는 하느님의 선물이다. 창조하신 하느님 뜻 그대로, 자연은 정직하게 땀 흘리는 사람에게 열매를 준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그대로 열매 한 알 한 알이 영글어가는 모습. 무척이나 아름답고 쉬워 보이지만 환경과 생태를 지키는 일은 힘들고 어렵다. ‘화학비료’라는 쉬운 길이 있는데도 땀 흘려가며 ‘생명농업’을 실천하기란 보통의 노력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한 신부가 8년간에 걸친 노력으로 일궈낸 마을이 있다. 전라북도 산 좋고 물 맑은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만나생태마을’. 하느님이 내려주신 음식인 ‘만나’의 의미처럼 하느님이 주신 복음과 소명을 몸소 실천하는 곳이다. 더 이상 수확물에 욕심내지 않는 ‘자급자족’이 원칙이다. 생태지킴이 역할을 하는 이곳을 찾는 신자들은 피정을 통해 직접 생명농업을 체험하며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사명감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기록적인 폭염이 계속되는 이 여름에도 ‘만나생태마을’은 영혼이 시원해지고 맑아지는 기쁨과 은총으로 넘치고 있었다.
만나생태마을 간판. 하느님이 내려주신 음식 ‘만나’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 하느님의 뜻대로 환경과 생태를 지키겠다는 최종수 신부의 각오가 고스란히 담겼다.
전라북도 진안군 ‘금계곡마을’. 마을 이정표를 따라 500m 정도 올라가다 보니 예쁘장한 펜션처럼 생긴 건물 3채가 눈에 들어온다. 그 앞으로는 비닐하우스가 있고 옆쪽에 난 개울에서는 요즘 같은 폭염과 가뭄 속에서도 맑은 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뒤편으로는 야산이 자리하고 있어 마치 한 폭의 풍경화 같다.
“더운데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네, 아침 식사부터 하세요.” 8년째 이곳 ‘만나생태마을’(전북 진안군 부귀면 거석리 323)을 운영하고 있는 최종수 신부(전주교구)가 취재진을 반갑게 맞았다. 간단한 식사를 마친 뒤 최 신부는 고추밭을 먼저 손질해야 한다며 주섬주섬 장비를 챙기기 시작했다. 둥근 모자를 쓰고 작업복을 입고 나선 그는 영락없는 시골 농부의 모습이다.
최종수 신부는 8년째 만나생태마을을 이끌고 있다. 뜨거운 여름, 땀 흘리며 가꾼 고추들은 생태마을 식구들의 밥상에 그대로 오른다. 화학비료 없이도 고추들은 싱그럽게 영글어간다.
고추밭 뒤편에는 토종 고추들이 심겨 있다. 길게 쭉 뻗어 있기는 하지만 개성이 없는 다른 고추들과 달리 가지각색의 모양이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본 모습은 바로 이런 거죠.” 흐르는 땀을 연신 닦아내며 최 신부가 말을 이어갔다.
“GMO(유전자 조작 농산물) 피해가 심각합니다. 수입곡물이나 가공식품 대부분이 GMO죠. 광우병에 걸린 소를 많이 먹으면 광우병에 걸리는 것처럼 GMO를 많이 먹으면 사람 유전자도 조작되는 거예요.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최 신부는 ‘우리 농산물과 가공식품’에는 GMO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식구들의 건강을 챙기고 싶다면 꼭 ‘우리 농산물’을 찾아달라고 당부한 그는 쉴 사이도 없이 블루베리밭 쪽으로 바쁜 걸음을 옮겼다.
양지바른 야산에 마련된 블루베리밭에서는 연간 1t 정도의 블루베리가 생산된다. 농약이나 제초제 등 화학제품은 절대 쓰지 않는다. 동물 똥과 오줌으로 거름을 손수 만들고 목초액, 생선발효액 등을 이용해 농사를 짓는다. 물론 화학제품을 쓰는 것보다 열매도 작고 수확물도 많지 않다. 그래도 만나생태마을은 하느님이 주신 그대로의 농법을 고집한다.
“한번 맛보세요. 자연 그대로의 맛입니다.” 최 신부가 건넨 블루베리를 먹어보니 과연 그 맛이 상쾌하다. “블루베리 1㎏을 따려면 2000번 이상 손이 가죠. 잘 익은 것만 따야하기 때문에 열매 따기가 쉽지 않아요. 정성과 기도로 수확하는 사랑의 열매죠.”
블루베리는 예로부터 ‘신이 내린 과일’로 불렸다. 아메리칸 인디언들은 약으로 쓰기도 했다. 그래서 절제하고 인내하며 키운 블루베리는 더욱 그 의미를 더한다. “천국도 지구 생태계 보전 없이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갈수록 심해지는 지구온난화를 보세요. 천국에 갈 인간이 지구에 살지 않게 될지도 모르잖아요.” 최 신부의 말이 가슴을 파고든다.
만나생태마을에서 직접 가꿔 판매하는 농산물은 블루베리, 된장·간장·쌈장, 오디, 산야초 효소 등이다. 모두 유기농법을 사용했다. 만나생태마을이 시작된 때부터 고집해온 일이다. 하느님 보시기에 부끄럽지 않은 농산물을 가꾸고, 농민의 마음으로 소박하게 생태적으로 살고 싶다는 마음에서였다.
가난한 농부의 삶, 그 속에서 은총을 체험한다. 영혼은 더욱 맑아지고 기쁨은 몇 배로 커진다. 천국에 다다르는 길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주교구 팔복본당 주임신부로 사목하던 최 신부는 8년 전 이곳 산골짜기로 들어왔다. 그는 그의 사제서품 모토인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루카 4,18)를 실천하기로 했다. 하느님께서 주신 복음, 소명대로 가난한 농민과 함께하는 삶을 살기로 한 것이다.
쉽지는 않았다. 농사에 자꾸 실패해 어려움을 겪을 때는 최 신부조차 ‘도망가고 싶었다’고 말할 정도로 힘들었다. 그런데 쌀이 떨어질 만하면 생각지도 않았던 곳에서 쌀이 들어왔다. 전주교구 선후배 신부들과 신자들은 물론 타 종단 성직자들까지 후원하고 봉사해줬다. “하느님 사랑 덕분에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그는 웃어 보였다.
만나생태마을에는 현재 부귀공소 사목을 돕고 있는 최 신부, 수녀 1명, 이들과 함께 마을을 꾸려가는 신자들이 고정적으로 생활하고 있다. 오전 6시 아침기도 등을 바치고 미사를 드린 뒤 생태마을 고유의 ‘참살이 큰절기도’와 호흡묵상(명상)을 한다. 아침식사를 한 뒤 오전에 일을 하고 점심을 먹고는 또 오후 노동을 한다. 저녁 식사 후 개인적인 시간을 갖는 것이 하루 일과 전부다. 식사 시간에는 생태마을에서 직접 키운 고추와 고추장, 된장, 장아찌, 효소 등으로 만든 소박한 음식을 먹는다.
봄과 가을이면 2박3일 또는 3박4일 일정의 ‘참살이 영성피정’을 진행한다. 피정 핵심은 1단계에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2단계에서 자신이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다. 마지막인 3단계에 이르러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인도한다. 최 신부가 우리신학연구소, 전진상교육관, 한국파트너십연구소와 2년 가까이 연구한 결과물이다. 그는 “자연 속에서, 숲 속에서 흙을 만지고 수확하는 노동을 통해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라고 설명했다.
마을을 어떻게 더 꾸려가고 싶은지에 대한 물음에 최 신부는 생태마을 앞마당을 가리키고는 “여기에 반딧불이가 엄청 많아요”라며 웃어보였다. 자연 생태가 살아 숨 쉬는 이곳에서 토종 꽃과 토종 나무들로 어우러진 숲을 가꿔 ‘힐링 센터’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 그의 소박한 꿈이다. 귀농인들을 위해 유기농법을 소개하는 장소를 마련하는 것도 소망이다.
취재를 마치고 떠나려는데 최 신부가 “잠깐만 기다리라”며 바쁘게 무언가를 꺼내왔다. 생태마을 식구들과 함께 땀 흘려 가꾼 고추와 된장 등을 한가득 담아 기자들에게 전했다. 신성한 노동과 나눔으로 하느님 사랑을 실천하는 곳, 하느님이 내려주신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 만나생태마을은 그 존재만으로도 세상에 큰 울림을 전해주고 있었다.
※피정·농산물 구입 등 문의 063-432-6477 만나생태마을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금계곡마을’ 자락에 자리 잡은 만나생태마을. 이곳을 찾는 신자들은 피정과 노동을 통해 하느님을 더욱 가까이 만나는 시간을 갖는다. 최종수 신부의 꿈은 여기에 토종 꽃과 나무로 울창한 숲을 만드는 것이다.
방준식 기자 bjs@catimes.kr
사진 박원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