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환 신부의 인물과 영성이야기] (33) 길버트 키스 체스터튼 (4)
‘신앙과 이성’을 통한 진리 추구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 영향 받아
“신앙과 경건의 이름으로
이성의 빛 거부하는 것은
진리 왜곡… 오류에 빠지게 해”
■ 신앙과 이성의 두 날개 : 브라운 신부와 성 토마스 아퀴나스
「푸른 십자가」에서 브라운 신부는 하느님이 만드신 세계의 신비와 아름다움에 경탄하고 창조주께 찬미를 올리는 것이 이성을 통한 진리의 추구와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앙과 경건의 이름으로 이성의 빛을 거부하는 태도는 진리를 왜곡하고 오류에 빠지게 하기에, 결코 ‘좋은 신학’일 수 없음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브라운 신부의 주장을 들으며 떠오르는 신학자이자 철학자는 두말할 나위 없이 성 토마스 아퀴나스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체스터튼은 이 ‘천상적 박사’에 대한 통찰력 있는 책을 썼고, 이는 지금도 수없이 많은 성 토마스 아퀴나스에 대한 책들 가운데서도 여전히 사랑받는 매우 독특한 매력을 지닌 저서로 남아 있습니다(G.K.체스터튼, 「성 토마스 아퀴나스」, 박갑성 옮김, 홍성사, 1984).
13세기 서양 중세 그리스도교 정신사의 정점을 이룬 「신학대전」으로 대표되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과 철학은 사실 근대 이후 많은 오해를 받기도 했습니다. 과도한 ‘스콜라주의’라 할 수 있는 지나치게 형식적이고 사변적이며 폐쇄적인 경향으로 치달은 신학 경향과 부당하게 동일시되었고, 그의 정신적 유산이 지닌 풍성함과 창조성, 개방성은 잊혀져 갔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상황에서 성인의 신학과 철학은 전 교회의 진리추구의 가장 중요한 동력으로 자리 잡게 하였고 일반 철학계에도 ‘토미즘’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어넣은 사람이 「노동헌장」으로 유명한 근대 후기의 위대한 교황 레오 13세였습니다. 레오 13세가 1879년에 내놓은 회칙 「영원하신 아버지」는 사람들에게 토마스 아퀴나스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고 보다 깊이 있는 탐구를 추구하게 하여, 각 대학에서 토마스 아퀴나스에 대한 연구를 부흥하게 하였고 이른바 ‘신 토마스 주의’라는 현대 철학 안에서도 굳건한 자리를 차지하는 철학의 흐름도 낳게 했습니다. 레오 13세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과 인격에 대해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들(고대의 철학자들과 신학자들)의 마치 흩어진 지체들을 한 몸으로 모으듯 수집해서 놀랄 만한 방식으로 배열했고 또 상당히 많은 부분을 보충 완성시켰습니다. 그러기에 가톨릭 교회의 영광이며 비상한 보루라고 평가받는 데 조금도 손색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는 성품이 유순하고 통찰력이 날카로우며 무엇이든 쉽게 틀림없이 기억했으며, 더할 나위 없이 순결한 일생을 살았고 오직 진리만을 사랑하여, 신적 학문과 인간의 학문을 두루 관통하여 통달하고 있었으며, 마치 태양처럼 자신의 높은 성덕으로 세상을 뜨겁게 하고 자기 학문의 광채로 세상을 두루 비추었습니다. 그가 날카로운 통찰력을 가지고 철저하게 다루지 않은 철학의 분야란 하나도 없습니다(레오 13세, 「영원하신 아버지」, 22항).”
체스터튼이 자신의 바로 앞세대 인물이라 할 레오 13세 교황의 탁월한 식견과 용기에 깊이 감명받고 동감했으리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는데요, 아닌게 아니라 브라운 신부에서는 자신의 모범으로 레오 13세 교황을 존경 어린 어조로 언급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합니다.
신앙과 이성의 조화를 통해 진리를 추구하고, 올바르게 신비를 향하는 것이 신학과 영성에서 중요하다는 것을 브라운 신부에게서 배우고, 또한 브라운 신부에게서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귀한 가르침의 반향을 듣게 될 때, 관심을 가질 만한 교회문헌이 성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98년에 발표한 회칙 「신앙과 이성」입니다. 한때 폴란드 루블린 대학의 철학 교수이기도 했던 요한 바오로 2세의 ‘신앙과 이성의 관계’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자, 현대 교회학문의 의미 있는 지침 역할을 한다고 할 이 회칙은 레오 13세의 「영원하신 아버지」가 담고 있는 정신을 보다 더 복잡하고 다양화된 학문적 풍토 안에서 새롭게 되살린 문헌이라 하겠습니다. 회칙 「신앙과 이성」은 다음과 같은, 이제는 너무나 유명해진 구절로 시작합니다.
“신앙과 이성은 인간 정신이 진리를 바라보려고 날아오르는 두 날개와 같습니다.” 이 회칙은 ‘신앙과 이성’에 대한 교회의 일관된 입장을 현대인에게 다시금 환기시켜 주는데요, 그것은 신앙의 내용인 ‘계시’는 결국 믿음을 필요로 ‘신비를 간직한 채로’ 남아있지만, 이성은 그러한 계시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는 것입니다.
“인간 이성이 신비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도와주고 있다는 표지들을 계시 자체가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표지들은 진리 탐구를 새로운 깊이로 안내하고, 마음이 그 자발적인 탐구에서 이성 자신의 방법을 열정적으로 사용하여 신비 속으로 파고들 수 있게 만들어 줍니다. 그러나 이 표지들은 또한 이성이 그것들의 표지로서의 지위를 뛰어넘어 그것들이 담지하고 있는 더 깊은 의미를 포착할 수 있도록 자극하기도 합니다. 그것들은 감추어진 진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신앙에 고유한 지식은 신비를 파괴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다만 그것이 사람들의 삶에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를 보여 줌으로써 신비를 더욱 드러내 줄 뿐입니다. (13항)”
그러기에 신앙은 이성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오히려 이성을 추구하고 그것에 신뢰를 둘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러한 신앙과 이성의 조화를 밝혀준 공로를 성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돌리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사상가들이 고대 철학,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보화들을 재발견하고 있던 시대에, 성 토마스는 신앙과 이성 사이의 조화에 영예로운 자리를 배정한 위대한 공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성의 빛과 신앙의 빛은 둘 다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고, 따라서 양자 사이에는 어떠한 모순도 있을 수 없다고 논증하고 있습니다.(43항)”
최대환 신부 (의정부교구 정발산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