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톨릭 문화의 거장들] 성음악가 이문근 신부 (중)
성음악 ‘보편화’… 우리 실정 맞는 성가집 편찬
그레고리오 성가 한글 표기
역사와 장르 넘나들며 세계 교회음악 풍성히 소개
2. 「정선 가톨릭 성가집」(1957)
1956년 3월 20일부터 23일까지 서울에서 열린 전국 주교회의 결의에 따라 ‘전국 통일 가톨릭 성가집’ 출판이 확정됐다. 이에 1956년 7월 19일 서울 성신대학에서 ‘통일 가톨릭 성가집 발간 위원회’의 합의에 따라 「정선 가톨릭 성가집」이 출판됐다. 이는 그동안 교구 혹은 지역을 중심으로 출판되던 성가집이 비로소 한국 천주교회를 대표하고 전 교구를 포용하는 ‘통일 성가집’으로 성장하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아래는 개창 혹은 혼성합창을 위해 오르간 반주가 동반된 이 성가집 머리말의 일부다.
“이 성가집은 대부분이 예전부터 우리 가톨릭 교회 내에 사용되던 시와 노래를 수집하여 거기서 우리 땅에 가장 적합하고 우리 교우들의 “피”가 될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것을 가리어 만든 것이다…. 이 성가집에는 대체로 1948년에 서울서 출판되었던 「가톨릭 성가집」에 실려 있는 것을 원칙적으로 그대로 옮겨놓고 좀 부족한 것을 고치고 혹은 새로 편곡하고 그 외에 많은 새 노래를 더 넣었다. 이것으로 교우들의 여러 가지 요구에 다 응할 수는 없겠지만 책의 부피도 생각지 않을 수 없어 이쯤으로 여러분 앞에 내놓기로 하였다. 여러 성가대에 감히 부탁하고자 하는 것은 먼저 노래를 열심으로 배워 음악적으로 훌륭한 단체가 되어 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성가대의 목적의 십분의 일도 성취하지 못하는 것이니 노래로 자기와 교우들이 예술의 삼매경이 아니라 기구의 신비경으로 끌려들어 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 성가집에는 전체적으로 182번까지의 성가와 더불어 부록으로 이문근 신부 작곡의 혼배미사(국어), 그리고 그레고리오 성가 3작품 즉 혼배미사(라틴어)와 연미사 그리고 사도예절이 첨가됐다. 그런데 판을 거듭하면서 번호가 매겨져 있지 않은 상태로 이문근 신부 작곡의 ‘병인순교복자 노래’와 미사곡 3곡이 첨가됐다.
마지막으로 이문근 신부 작곡의 성가들(124번 ‘성녀 소화 데레사’, 127번 ‘복자 찬가’, 128번 ‘복자 안드레아 김신부 노래’, ‘병인순교복자노래’, 140번 ‘삐에 뻴리까네’, 혼배미사, 3개의 창미사)과 35곡의 편곡 그리고 7곡의 그레고리오 성가 반주가 실렸다.
3. 「주요첨례 그레고리오 성가, 오선보」(1961)
「가톨릭 성가집」(1948)과 「정선 가톨릭 성가집」(1957년)에 실린 그레고리오 성가는 성수예절과 성체강복을 위한 곡들이었다. 이문근 신부는 미사 전례에 필요한 그레고리오 성가를 선별해 1961년에 「주요첨례 그레고리오 성가」를 편찬한다.
이 성가집은 표기법과 구성에 있어 여러 가지 특징을 갖는다. 먼저 그레고리오 성가를 오선지에 8분음표와 4분음표로써 멜로디만 표기했다. 또한 라틴어를 국어발음으로 기입하되 한 음절 안에 발음되는 두 발음을 글자의 크기로 구별했다(예. 끄리스테). 미사전례를 구성하고 있는 통상부분(Ordinarium), 고유부분(Proprium) 그리고 낭송 부분을 ‘주요첨례’(첨례-‘축일’의 옛말)에 맞추어 전례력에 따라 다양하게 포함하고 있다.
4. ‘교회음악’(「가톨릭 청년」(1948년 4월~1958년 4월)
「가톨릭 청년」에 연재한 25회 분량의 글을 통해 이문근 신부는 그리스도교 초대 교회음악부터 20세기 그레고리오 성가의 복원까지 폭넓고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1954년 4월호에서 이문근 신부는 ‘교회음악’ 연재에 대한 의미와 범위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이 페이지를 통하여 독자에게 말씀드리는 것은 시간적으로나 지리적으로 어떤 국한된 범위를 잡아 깊이 연구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일반 교회음악에 관한 사정을 역사를 밟아가면서 소개하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교회음악이란 말은 비단 가톨릭 교회음악뿐 아니라 소위 프로테스탄트의 음악도 포함될 수 있는 것이다. 왜 그런고 하니 루터 이전엔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구별이 없었던 것과 같이 음악에 있어서도 그런 차별이 없었기 때문이고, 루터 이후에 있어서도 진정한 예술은 하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진정한 예술은 본질적으로 가톨릭성(공통 혹은 보편성)을 띠우는 것이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여기서 가톨릭 교회음악이니 프로테스탄트 음악이니 하는 구별을 일부러 하지 않는 바이다. 그리고 다른 종교에도 음악이 없는 바 아니나 범위가 너무 넓어져서 정리에 곤란할 뿐 아니라 내 자신 그런 음악에 대해서는 무식하다는 것을 이 자리에서 고백하고 다만 그리스챤 음악에 국한하기로 하였다. 더구나 그리스도교 이전의 헤브레아 음악에 있어서는 근래 음악학자들이 큰 흥미를 가지고 연구하고 있으나 아직도 거기에 대한 체계적인 논설을 할 수 없으며, 소위 서양 음악의 시초요 기준이 된다고 하는 희랍 음악에 관해서는 다른 기회로 밀고자 한다.”
이문근 신부는 초대 교회음악부터 그레고리오 성가, 다성음악, 아르스 노바, 15~16세기 르네상스 다성음악 그리고 바로크의 오라토리오와 칸타타, 나아가 바흐와 헨델에 이르기까지 비교할 수 없는 섬세하고 풍부한 내용으로 그리스도교 음악을 조명했으며, 바흐 이후의 교회음악, 19세기에 성녀 체칠리아 협회를 통한 부흥, 그리고 그레고리오 성가의 복원 과정과 그 이후를 폭넓게 다루고 있다. 특히 1950년대의 당시 한국 상황에서 이러한 내용을 다뤘다는 것은 교회음악에 대한 세계적인 지평을 전제하지 않고는 가능하지 않으리라 확신한다.
최호영 신부(가톨릭대 음악과 교수)
독일 레겐스부르크 국립음대를 거쳐 뮌헨 국립음대에서 오르간 디플롬과 그레고리오 성가 교수 자격을 취득
했다. 현재 가톨릭대 음악과 교수, 서울대교구 성음악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