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7일, 이슬람 무장조직 IS에 의해 살해된 프랑스 자크 아멜 신부 추모미사 후 신자들이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의 씨를 뿌리자”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CNS 자료사진】
세계가 둘로 나눠져 다투던 냉전시대가 지난 후, 세계는 오히려 더 잦은 분쟁 속에 놓여 있다. 세계는 ‘전쟁 중’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금 인류가 ‘전쟁 중’임을 솔직하게 고백하라고 촉구한다. 나아가 그 전쟁의 본질은 종교가 아니라, 이기심과 탐욕이라고 질타했다. 종종 ‘종교전쟁’으로 치부되는 테러와 분쟁들, 사실은 탐욕스런 이권 다툼이 그 본 모습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지적대로 모든 종교는 평화를 원하고 평화를 위해 노력한다. 참된 종교인에게는 증오의 악순환을 끊을 평화의 기도와 평화를 위한 대화가 필요하다.
지난 7월 26일,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의 한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노사제가 미사를 집전하고 있었다. 갑자기 들이닥친 괴한들은 86세 고령인 자크 아멜 신부의 무릎을 꺾고, 아랍어로 설교를 하기 시작했다. 다음 순간, 노사제는 영문도 모른 채 참혹하게 살해됐다. 세계청년대회 참석을 위해 폴란드로 향하기 직전 이 소식을 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은 큰 충격에 빠졌다. 그리고 기내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침통한 어조로 기자들에게 말했다.
“오늘날 전 세계는 뿔뿔이 나눠져 전쟁 중이다.(1, 2차 세계대전처럼) ‘조직적’이지는 않지만, ‘조직화’ 돼 있고, 분명히 이것들은 전쟁이다. 주저하지 말고 진실을 직시하자. 분명히 세계는 ‘전쟁 중’이다.”
교황은 노사제는 희생자 중 한 명일 뿐이라고 말하고,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 얼마나 많은 무죄한 이들, 또 얼마나 많은 어린이들”이 희생되고 있는지 상기시켰다. 교황은 특히 어떤 이들은 이 전쟁들을 ‘종교전쟁’으로 부르길 원하지만, 사실은 “이권, 돈, 천연 자원, 그리고 다른 민족의 지배”를 위한 탐욕이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모든 종교는 평화를 원할 뿐”이라고 강조했다.
■ 종교분쟁은 신념 때문에 생긴다?
1990년대 냉전시대가 끝난 지 이미 20년이 훌쩍 넘었다. 하지만 세계는 더 극심한 분쟁 양상을 보인다. 소말리아, 나이지리아, 앙골라, 콩고 등의 아프리카 지역 내전들, 이란과 이라크, 이스라엘 등을 중심으로 이어지는 중동 분쟁, 중남미 지역 마약과의 전쟁 등 지구촌은 온통 분쟁들로 휩싸여 있다. 한국국방연구원에 의하면 2012년 기준 현재 진행 중인 세계 분쟁은 112개이고,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전 세계 분쟁의 절반 이상이 집중돼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 가운데 이른바 ‘종교분쟁’은 얼마나 될까?
역사적으로 볼 때, 명백한 종교전쟁은 유일하게 십자군 전쟁이다. 이후 종교개혁 후 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신, 구교도의 분쟁, 현대에는 아랍권 국가들과 이스라엘의 중동 전쟁, 이란과 이라크 전쟁, 보스니아 분쟁 등을 그 범주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이 분쟁들이 단순히 종교적 신념의 차이로 발생한 것일까? 종교적 차이를 명분으로 하지만 사실은 정치와 경제적인 이권 다툼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 이면에는 정치·경제적 이권 싸움
2001년 9·11 테러에 이어 2003년 미국은 이라크의 대량 살상 무기를 제거해 자국민 보호와 세계평화에 이바지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다. 불과 26일 만에 끝난 이라크 전쟁을 분석하는 시각은 복잡하다.
당시엔 이를 이슬람 원리주의와 미국 정부의 그리스도교 근본주의 간의 대결로 보는 입장이 대중적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전쟁을 시작한 미국의 불순한 의도에 대한 비판적 분석이 쏟아졌다. 미국이 전쟁의 명분으로 내세운 ‘이라크의 자유’보다는 원유 확보, 중동 지역의 친미세력 구축, 경기 회복을 위한 돌파구 마련, 중동 지역 정치구도 재편 등이 이라크 전쟁의 주된 목적이었다는 분석이다.
인도(힌두교)와 파키스탄(이슬람)의 분쟁 역시 종교적 대립만으로 설명되지 못한다. 힌두교와 이슬람이 종교분쟁은 단지 표면적인 것이며, 오히려 정치적 지역 패권주의와 국경 분쟁, 경제적 이권을 둘러싼 이해관계에서 오는 대립이 더 근본적인 문제다.
이슬람 시아파와 수니파의 종교적 분쟁 성격을 지닌 시리아 내전. 처음에는 민주화 운동으로 시작됐지만 시아파와 수니파 주변국들이 합세하면서 내전의 규모가 커지고 러시아와 중국, 미국까지 끼어들어 국제전의 양상을 띠게 됐다. 여기에 과격 이슬람 테러 단체인 알 카에다와 그 하부조직에서 비롯돼 최근 각종 참혹한 테러를 양산하고 있는 이슬람국가(IS)의 출현까지, 시리아는 오늘날 세계 테러와 분쟁의 핵심적인 나라가 되고 있다.
극단적인 이슬람 무장조직 IS는 지역은 물론 테러 대상 역시 무차별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프랑스 시골 마을의 노사제를 살해한 것 역시 종교인이나 종교시설에 대한 테러를 통해, 분쟁에 종교적인 성격을 덧씌우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실제로 IS가 성당을 공격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사건 직후 IS와 관련된 매체들은 “프랑스 성당에서 IS 전사 2명이 공격을 수행했다”고 말함으로써 배후가 자신들이라고 주장했다. 프랑스 마누엘 발스 총리가 이를 두고 “가톨릭 전체에 대한 공격”이라고 말한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IS의 의도에 맞는 일이기도 하다.
종교적으로 성스러운 장소에서 성직자를 참혹하게 살해한 것은 사태의 본질을 ‘종교전쟁’으로 몰아가려는 의도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 구도에서는 분쟁을 이슬람과 이슬람을 공격하는 반대 세력간의 싸움으로 몰아가고, 그 안에서 자신들은 성전(聖戰)을 수행하는 이슬람의 전사들로 자리매김하기 용이하기 때문이다.
■ 프랑스 성당 테러 후 평화 위해 노력
하지만 IS의 의도가 제대로 먹혀들 것 같지는 않다. 가톨릭과 이슬람 모두 전에 없이 적극적으로 평화를 위한 노력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참극의 현장인 프랑스 생테티엔 뒤 루브레 아우구스티노 무안다 보좌 신부는 7월 29일 본당 신자 20여 명과 함께 인근 이슬람 예야 모스크를 방문했다. 자크 아멜 신부가 살해된 지 나흘만이다. 모스크 입구에는 애도를 표시하는 문구가 걸려 있었다. 잠시 후 이번에는 지역 내 무슬림들이 성당을 찾아 아멜 신부를 애도했다. 모스크가 없던 시절 무슬림들은 기도를 하러 이 성당에 오곤 했다. 2000년에 예야 모스크를 세운 땅도 가톨릭교회에서 모스크를 지을 수 있도록 배려해 판매했던 땅이다.
참극이 벌어진 곳에서 8㎞ 가량 떨어진 프랑스 루앙 대성당에서 거행된 추모미사에는 가톨릭 신자 2000여 명 외에 무슬림 100여 명이 함께했다. 그들의 손에는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의 씨를 뿌리자”라는 플래카드가 들려 있었다. 바티칸 성모마리아 대성당에서는 7월 31일, 여러 명의 무슬림들이 전통 복장을 입고 미사에 참례했다.
프랑스와 로마뿐만 아니라 다른 유럽 각국에서도 추모미사를 거행하고, 무슬림 극단주의의 테러가 자칫 종교 간 분쟁으로 확대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프랑스 이슬람에서 시작됐다. 프랑스 무슬림협의회는 가톨릭에 연대와 연민을 보여주자는 취지 아래, 무슬림들이 가톨릭의 미사에 참례할 것을 요청했고, 유럽 전역에서 이에 호응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계청년대회 참석을 마치고 돌아오는 기내에서 가진 회견에서 “이슬람과 폭력을 동일시하는 것은 옳지 않다”면서 “모든 종교에는 항상 소수 근본주의자들이 존재하며 가톨릭 역시 그렇다”고 말했다. 생테티엔 뒤 루브레 본당 무안다 신부 또한 “우리가 본 것은 참된 이슬람이 아니다”라며 “가톨릭과 이슬람은 함께 슬픔을 나눈 형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