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서울대교구 직장사목부를 담당하고 서울 태릉선수촌 성 세바스티아노성당 사목을 맡게 되면서 처음 국가대표 선수들을 만났던 날을 기억해 봅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선수들, 그 중에는 이름만 대면 어린이들도 알 만한 스포츠 스타도 있었습니다. 전 날부터 얼마나 떨렸는지, 마치 좋아하는 연예인을 만나는 느낌이었을까요? ‘내가 사진 같이 찍어 달라고 하면 싫어하려나, 사인을 받아도 되려나?’ 그렇게 만난 선수들과 조금씩 가까워지고, 매주 수요일 미사 전후에 이야기를 나누고 고해성사를 드리고 면담을 하면서 조금씩 대표 선수들의 삶에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2014년 러시아 소치에서 있었던 동계 올림픽에 대표 선수들과 함께 가게 됐습니다. 공항에 배웅 나온 사람들에게 ‘가서 금메달 많이 딸 수 있도록 기도 많이 해주고 올게요’라는 말을 주고받았습니다.
올림픽 현지에서 마주친 선수들은 선수촌에서 만난 선수들과 다름없는 그 선수들이었습니다. 다른 점이라면, 태릉선수촌에서 훈련할 때보다 조금 더 많이 떨고 조금 더 걱정하고 조금 더 외로워 보였습니다. 그 와중에 저는 선수들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고 미사를 드렸습니다.
‘주님, 이들에게 좋은 결과를 보여주세요. 자신들이 믿는 하느님이 자기들을 내버려두지 않고 함께해서 그들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게 해주는 믿음직한 분이라는 걸 체험하게 해주세요.’ 물론, 금메달을 딴 선수도 있고 금메달은 아니더라도 기대만큼 혹은 기대 이상으로 훌륭하게 경기를 마친 선수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불의의 부상 같은 악재가 생겨 경기에 뛰어보지 못한 선수도 있고 결승선을 눈앞에 두고 경쟁 선수에 역전을 당하면서 메달을 놓친 선수도 있었습니다.
저의 기도는 이뤄진 것일까요?
금메달을 따면, 그리고 레이스에서 이기면 기도가 이뤄진 것일까요? 저는 이러한 질문을 갖고 귀국길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선수들을 마주 대할 때마다, 저의 그 기도가 과연 누구를 위한 기도였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습니다. 선수를 위한 기도는 사실, 선수를 통해서 혹은 조금 더 솔직히 말하자면, 신자인 선수의 성공을 통해서 신앙을 전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요? 그 날부터 저는 기도를 조금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선수들이 당신이 함께 계시다는 것을 느끼게 도와주세요. 그리고 우리 선수들이 다치지 않게, 자기가 좋아하는 이 운동을 하고 싶은 만큼 기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어느 누구도 자신의 삶을 한 개의 숫자로 평가 받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엄마는 너를 15점만큼 사랑해.’ ‘너는 내게 3등 정도 돼. 그만큼 소중한 거지.’ 누군가를 사랑할 때, 누군가를 응원할 때 그 사람이 보여줄 결과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이 보여줄 결과를 응원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사람’을 응원하고 있다는 것,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사람을 향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물론 지구촌 전체가 브라질 리우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눈과 귀가 쏠려 있습니다. 이번 리우 올림픽을 앞두고도 태릉선수촌에 있는 선수들은 훈련을 열심히 했습니다. 열심히라는 말로는 표현이 안 될 정도로 인간의 한계를 넘나드는 훈련을 마친 뒤 고단한 몸을 이끌고 성 세바스티아노성당을 찾아 미사를 봉헌하는 선수들을 보면 저의 기도는 더욱 간절해졌습니다. 메달을 따게 해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자신이 노력한 대로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하게 해달라는 기도였습니다. 그리고 우리 대표 선수들의 경기를 보는 국민들도 메달 색깔이나 경기 결과에만 집착하지 말고 혼신의 힘을 다하는 선수 모두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주기를 소망했습니다.
이제 리우 올림픽도 중반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한국 선수들은 세계 각국의 내로라하는 선수들과 당당히 겨뤄 많은 메달을 땄습니다. 특히 금메달을 딸 때마다 모든 언론들은 앞다퉈 흥분과 감격이 섞인 기사를 내보내고 있기도 합니다. 반대로 기대했던 메달을 따지 못하거나 저조한 성적을 낸 선수들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썰물처럼 사라져 갑니다.
‘우생순’ 신화 재창조를 다짐했던 한국 여자 핸드볼 팀도 이번 리우 올림픽 조별 예선리그에서 탈락하면서 쓸쓸히 퇴장했습니다. 1984년 LA올림픽 이래 8회 연속 올림픽 4강 안에 들었고 그 중 금메달 2회, 은메달 3회, 동메달 1회라는 놀라운 성적을 냈던 팀이어서 리우 올림픽 예선리그 탈락은 실망감이 큰 것 같습니다. 하지만 리우 올림픽 한국 대표팀 중 최고령인 여자 핸드볼 골키퍼 오영란(44) 선수는 현역 은퇴 후 아이들을 키우는 평범한 주부로 살다가 국가의 부름을 받고 고심 끝에 올림픽에 출전했습니다. ‘태극마크를 단 자랑스런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였다고 합니다. 8월 11일 네덜란드와의 경기에서 오영란 선수가 온 몸으로 ‘7미터 던지기’를 막아내며 팀을 패배에서 구하는 순간은 최종 순위와 상관없이 이번 올림픽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힐 만합니다.
금메달만을, 더 좋은 성적만을 바라지 않았으면 합니다. 비록 예전만 못한 성적을 거뒀지만 오영란 선수의 말처럼 국가를 대표한다는 자부심으로 자랑스럽게 최선을 다한 선수들에게 힘찬 박수를 보냈으면 합니다. 이것이 하느님 보시기에도 좋은 우리의 자세와 기도임에 틀림없습니다.
임의준 신부 (서울 태릉선수촌 사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