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덕혜옹주’에 나오는 한택수!
그가 일제 관료인 한창수이건, 영화 속 가상의 인물이건 그게 무슨 상관이랴! 역사 왜곡에 대한 이야기로 시끄럽던 이 영화에서 한택수는 매국노 이완용의 오른팔로서 사사건건 덕혜옹주를 괴롭히고, 일본의 편에 서서 조선을 팔아먹는 행위를 한다. 전쟁이 끝나자 옹주는 귀국을 거부당하지만, 자신이 왜인이 아니고 조선인이던 것을 그렇게 원통해하던 한택수는 자신을 완전히 새롭게 포장하고 자신이 그토록 경멸하며 괴롭혔던 이 땅에 당당히 대우를 받으며 들어온다. 그 이후 지금 이 시간까지도 우리 사회를 점령하고 있는 수많은 한택수와 그들의 영향.
서울에 ‘Plaza Hotel’이 있다. 이를 우리는 ‘프라자 호텔’이라고 읽는다. 맞는 것일까? 요즘 젊은 사람들은 ‘플라자 호텔’로 말한다. 어느 것이 맞을까? 세탁소 간판은 Dry cleanning이라고 쓰여있다. 그리고는 드라이 크리닝이라고 읽는다. 크린토피아(Cleantopia)라는 체인점이 여러 곳에 눈에 뜨인다. 드라이클리닝이나 클린토피아로 읽는 것이 맞지 않을까?
이탈리아 페루지아로 유학을 가서 이탈리아어를 공부할 때 옆 자리에 미모의 외국 아가씨가 앉아있었다. Kim Kilmin(김길민)이라고 말하면서 내 소개를 하자, ‘아! 킴 킬 미!’라고 말하며 웃었다. 나는 김길민인데 그 친구는 킴킬민으로 알아듣고 그렇게 우스개소리를 한 것이다. 나는 킴씨가 아니라 김씨인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일본어는 잘 모르지만, 내가 만나본 일본 사람들은 영어의 엘(L) 발음을 잘 하지 못했다. 엘에는 ‘ㄹ’을 앞글자의 마지막에 한 번하고 두 번째 글자의 처음에 더해서 두 번을 발음해야 하는데 그들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언어 구조와 구강 구조가 그렇게 되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은 엘을 완벽하게 발음할 수 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못하는 것처럼 되었을까? 한국의 주류 사회에 퍼져있는 한택수가 우리를 그렇게 만든 것은 아닐까? 자신들이 그렇게 알고 있으니 우리에게도 꼭 그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쳐서 우리마저 잘 못하도록 만든 것은 아닐까? ‘킴킬미’가 아니라 ‘김길민’으로 알아듣도록 할 수 있는데 무조건 김은 ‘Kim’으로만 써야한다고 정해서, 할 수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성을 제대로 알지 못하도록 막는 것은 아닐까?
우리 사회에는 어쩌면 자기 자신이 한택수인지조차 모르고 자신만을 위하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만 급급한 사람들이 있다. 자신이 잘못 알고 있었다면, 바로 인정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용기가 필요하다.
일본의 잔재이기 때문에 고쳐야 하는 부분도 있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옳지 않기 때문에, 아니 지금의 시대와는 맞지 않기 때문에 고쳐야 할 부분이 아직 우리 사회에 많이 남아있다. 이 부분에서 기성 세대와 새로운 세대의 소통과 슬기로운 협력이 필요해 보인다.
참, 희한하게도 중국 사람들은 일본인들과는 반대로 영어의 R발음을 거의 L자로 발음하는 것을 많이 들었다. 이탈리아어로 고맙습니다를 뜻하는 ‘Grazie’는 ‘그라씨에’ 혹은 ‘그라찌에’로 발음하는데 중국 식당에서 ‘글라찌에’라 하기에 처음에는 유리(글래스)로 오해했었다. 우리 위대한 한국인은 L이건 R이건 다 구분해서 발음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