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셰익스피어가 가톨릭 신자였다는 확실한 근거를 찾을 수는 없지만 그의 작품 안에서 드러나는 가톨릭적 성향들에서 교회와 연관성을 제시하고 있다.
영국이 낳은 역사상 최고의 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speare, 1564~1616)의 서거 400주년을 맞아 셰익스피어의 작품이나 주변 정황에서 드러나는 가톨릭 신앙적 요소들이 교회 안에서 다시금 새로운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문헌적으로 셰익스피어가 가톨릭이라는 확실한 근거를 찾을 수는 없지만, 어머니 메리 아덴(Mary Arden)이 독실한 가톨릭 집안 출신이었던 점 과 그의 먼 친척이면서 시인이었던 영국 예수회 로버트 써틀(Robert Southwell, 1561~1595) 신부와의 인연, ‘리어왕’ 등 다수의 작품 안에서 드러나는 가톨릭적인 성향들에서 교회와의 연관성을 제시하고 있다.
알려진 것처럼 셰익스피어는 영국 엘리자베스 시대 극작가 중에서 가장 중심적인 존재였을 뿐만 아니라 세계 연극사 안에서도 필적 대상이 없을 만큼 특별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그의 작품은 10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돼 있고 전 세계 학생들 절반 이상이 배우고 있다. 그만큼 그의 작품은 오늘날의 언어, 문화, 사회, 교육에 지속적인 힘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 가톨릭적인 내용들을 연구하는 노력은 문화복음화 차원에서도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라는 견해다.
영국에서는 이미 1970년경부터 랭카스터 지역을 중심으로 한 ‘랭카스터 학파’에 의해 셰익스피어와 가톨리시즘과의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돼 오고 있다. 1990년경에는 관련 심포지엄이 열려 본격적인 조명이 이뤄진 바 있다. 일본 상지대학교 영문과 교수였던 영국 예수회 피터 밀워드(Peter Milward) 신부 역시 셰익스피어가 가톨릭 신자였다는 논지를 1970년대 이후 펴고 있다. 영국 학자 클래어 아스퀴(Clare Asquith)는 2005년 발표된 ‘그림자극: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숨은 신앙과 암호로 표현된 정치 사상’(Shadowplay: The Hidden Beliefs and Coded Politics of William Shakespeare)에서 셰익스피어 작품 안에 수많은 가톨릭적 요소들이 암호처럼 숨겨져 있다고 주장, 이러한 의견들에 힘을 실었다.
일례를 들자면 올해 홍보주일 담화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인용한 ‘베니스의 상인’에서는 하느님의 자비를 요청하고 있고, 작품 배경부터가 가톨릭적이라 할 수 있는 ‘리어왕’은 죄와 벌, 구원에 대한 교회의 시각을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학자들이 셰익스피어의 가톨릭 신앙 여부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셰익스피어가 활동했던 엘리자베스 1세 여왕과 제임스 1세 때의 시대적 배경 안에서 가톨릭 신앙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매우 첨예한 이슈였기 때문이다.
당시 가톨릭 신자들은 ‘규칙・권위에 반항하는 사람’이란 뜻의 ‘레쿠전트’(Recusant)로 불리며 2등 시민으로 살아야 했다. 대학 진학을 할 수 없었고 주요 관직이나 사회 내 높은 지위에 오르기도 쉽지 않았다. 가톨릭 신앙을 지킨다는 것은 순교에 가까운 일이었기에, 한편 그들이 지니는 신앙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한 것이기도 했다.
그러한 과정에서 집안에 가톨릭 사제를 두고 미사를 봉헌하다 처형당할 만큼 가톨릭 ‘골수’였던 외가의 신앙을 셰익스피어가 외면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또 “종교적 시를 쓰라”고 권유했던 로버트 써틀 신부와 정서적 공감대를 계속 유지했던 정황을 감안할 때 전문가들은 그가 가톨릭 신자였을 개연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교황청 기관지 ‘로세르 바토레 로마노’도 2011년 11월 18일자 보도에서 연극 ‘햄릿’의 연옥에 대한 부분이나 그 외 작품들 속의 가톨릭적인 요소들을 언급하며 셰익스피어의 가톨릭 신자 가능성에 관심을 내비쳤다. 영국 가톨릭신문도 지난 8월 7일자 ‘셰익스피어의 가톨릭 코드’(The Shakespeare (Catholic) Code) 기사에서 셰익스피어의 가톨릭 신앙을 다뤘다.
전문가들은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종교가 사회적 지위와 안위, 목숨까지 좌우하는 매우 민감한 요소로 자리 잡았던 여건 속에서 셰익스피어 작품 속에 녹아든 신앙적인 부분들은 그가 ‘신앙’과 ‘세속적 성공’ 사이에서 고민했던 흔적으로 볼 수 있으며, 그 자체가 하나의 문학 텍스트로 읽혀질 만큼 드라마틱하다고 밝힌다. 삶과 신앙의 괴리 사이에서 갈등하는 현대인들 모습이 오버랩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김치헌 신부(예수회·서강대 영문과 교수)는 “문화가 하나의 키워드로 자리 잡고 있고 다툼이 심각한 현대 사회 안에서 ‘베니스의 상인’ 내용처럼 가톨릭적인 영성을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문학이라는 언어를 통해 어떻게 전달하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연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면서 “셰익스피어의 세계성을 고려할 때 400주기를 계기로 한국교회 안에서도 그의 가톨리시즘을 재정립하고 작품 속 신앙적인 요소들을 학문적 교회적 차원으로 조명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의견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