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예수님 오셨어!”
나를 본 아이가 골목으로 들어가면서 소리를 쳤다. 아마도 신부님이 가정방문을 오니 아이에게 길에서 기다리다가 알려달라고 어머니가 시켰나보다. 그런데 그 아이는 신부가 아니라 예수님이 오신다고 엄마에게 알리는 것이었다. 그 소리도 어찌나 밝고 큰지, 우리 모두 박장대소를 했다. 아이는 사제를 그리스도의 대리자가 아니라 예수님 그분으로 느끼나 보다. 이런 맑은 영혼의 상태를 계속 그대로 유지하면 좋을 터인데.
본당에 부임을 한 첫 해에는 가정방문을 하지 않는다. 특히 아파트 지역은 그 집이 그 집 같고, 아직 신자들도 잘 모르기에 더 그렇다. 물론 집을 가 보면 사람을 더 빨리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1년 후에 판공 때가 되면 어떻게 가정을 방문할지 고민한다.
가정을 방문하고 나면 형제님들이 좋아한다. 집 안이 완전히 바뀌었다며. 퇴근하고 정리가 싹 되어 있는 집에 들어가면 기분이 좋겠지. 물론 평소에도 살림 잘 하고, 손님이 온다면 더 깨끗하게 준비하겠지만, 본당 신부가 가정을 방문한다니 우리 착한 신자들이 평소보다 몇 배로 신경을 써서 맞이한다. 어떤 구역장은 도배를 새로 해 완전히 새집을 만들었다. 물론 도배를 할 때가 되었는데 마침 그때 내가 방문을 한 것이지만, 그래도 그 마음에서 정성이 깊이 느껴졌다.
한동안은 방문을 하면 심술궂게 냉장고부터 들여다보았다. 처음에는 무심코 그랬는데, 그게 소문이 났고, 또 예쁘게 정리해놓았는데 안 보아주면 서운해 할 것 같아서 만류하는 것을 살짝 뿌리치고 냉장고를 수색했다. 실례인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본당 신부가 계속 그러니 그냥 재미있게 보아주었다. 신학생 때에 신부님들이 생활 검열을 하면 지저분한 것들은 어느 구석에 잘 숨겨 두었던 추억을 떠올리기도 했다. 하루에 여러 가정을 다니다보면 가는 집마다 뭔가를 내어준다. 처음에는 가는 집마다 다 먹을 것을 주어서 배가 불러 저녁을 먹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래서 다음에는 한 집 건너 하나씩만 해달라고 부탁했다. 어느 날은 24집을 돌았는데 12집에서 간단한 음료나 음식을 준비했다. 그런데 모두 다른 종류로 같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나한테는 서로 상의하지 않았다고는 하던데 정말 신기했다. 그래도 종류가 다 다르기에 먹을 수 있었다. 나한테는 아니라고 해도 혹시 구역장이 지정해준 것은 아니었을까? 어쨌든 그 정성이 고마웠다. 가족사진이 걸려 있는 집에서는 가족을 알 수 있었다. 때로는 두 사람을 따로따로 알고 있었는데 사진을 보고 부부라는 것을 알게 되거나, 학생이 그 집 아들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는 경우들도 많았다. 각자 다른 시간의 미사를 나오니, 가족의 구성원을 아는 것이 어려울 때도 많다. 하지만, 이런 기회에 가족을 한꺼번에 알게 되어 사목에 도움이 되었다. 가정 방문을 할 때 때로는 교적을 꺼내들고 가정 상황을 파악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냉담하던 신자의 집에서 성사를 주거나 적어도 다시 성당으로 돌아올 수 있는 디딤돌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경제력도 나아지고, 시대가 변하면서 가정 방문을 거부하는 집들이 많아진다. 자기만의 공간에 다른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거부하는 사회의 모습이 신자들에게도 영향을 끼치고 있고, 또 가정마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신자들을 더 잘 알려고 하고, 양 냄새가 나는 목자가 되고자 하는 우리 사제들에게도 가정방문은 매우 힘든 일이다. 그래도 다시 한 번 신자들이 마음과 문을 열기를 기도하면서 가정과 구역 방문 계획을 세워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