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함께 모여 영화를 본 적이 있나요?” 부모는 부모대로, 자녀는 자녀대로 “바쁘다”는 말이 당연시될 만큼 분주하다. 가족들이 얼굴 보며 한 끼 밥을 먹기도 어려운 세태다. 그만큼 대화도 쉽지 않다.
올해는 추석 명절이 주말과 이어지면서 모처럼 긴 호흡으로 연휴를 보낼 수 있게 됐다. 가족들이 함께 좋은 영화를 보며 공통의 추억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가톨릭영화인협회(회장 이춘재, 담당 조용준 신부) 추천으로 연휴 기간 동안 가족들이 영화관이나 집에서 함께 볼 만한 영화들을 소개한다.
신앙을 나눈다
■ 벤허(Ben-Hur·2016)
1959년 작 ‘벤허’를 21세기 영화 기술과 관점으로 리메이크했다. 2016년판 벤허는 전작과 비교할 때 내용 면에서 ‘용서와 화해’에 대한 신앙적 요소가 좀 더 부각됐다. 눈에 띄는 점은 예수 그리스도의 등장이다. 1959년 작에서는 은유적으로 묘사될 뿐 예수가 전면에 드러나지 않았으나, 이번에는 보다 많은 장면을 예수에 할애했다.
1880년 루 윌리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로마 제국시대 예루살렘 귀족이었지만 친구의 배신으로 노예로 전락한 벤허가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목격하고 용서와 화해의 삶을 살게 되는 이야기를 담았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되새길 수 있다. 12세 이상 관람가, 123분.
올해 새롭게 리메이크된 영화 ‘벤허’.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신과 인간(Des Hommes Et Des Dieux)
1996년 알제리 작은 시골 마을 트라피스트 수도원에서 벌어진 수도자 납치 살해 사건을 바탕으로 했다. 정치적 사건에 의해 생과 사의 갈림길에 직면한 수도자들이 신앙적 소명과 인간적 갈등 사이에서 겪는 고민을 밀도 있게 그려냈다.
종교를 뛰어넘어 지역민들과 평화롭게 지내던 프랑스 수도자들은 이슬람 무장단체와 정부의 갈등 속에서 당장 귀국할 것을 통보받는다.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 수도자로서의 신념과 인간이기에 느끼게 되는 어쩔 수 없는 죽음에 대한 공포. 하지만 그들은 결국 양들을 떠날 수 없는 수도자의 입장을 택한다.
영화는 여전히 종교로 인한 테러와 분쟁이 계속되고 있는 시점에서 인간 본연의 삶의 자세와 신념, 현대에서 일어나고 있는 순교의 문제를 생각해 보게 한다. 2010년 칸느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다. 15세 이상 관람가, 122분.
가족을 이야기한다
■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아빠의 사업실패, 그로 인한 가족해체와 가난의 문제가 아이의 눈으로 비춰진다. 현실 문제를 다루면서도 가족, 인생, 사랑의 진정한 의미가 유쾌하게 그려진 영화다.
어느 순간 아빠와 함께 집이 사라졌다. 그래서 지소는 동생 지석이랑 엄마와 함께 미니 봉고차에서 지낸다. 지소의 소원은 그림같이 예쁜 집에 친구를 초대해 생일파티를 여는 것이다. 방법을 직접 찾아 나선 지소는 부동산소개소에서 ‘평당’ 500만 원의 전셋집을 보게 된다. 집값 마련에 골몰하다가 개를 찾으면 사례금 500만 원을 준다는 전단지를 발견하고 친구 채랑, 동생과 개를 훔쳐 전세금을 마련하는 깜찍한 계획을 세운다. 자신의 개를 훔친 아이의 실수(잘못)를 받아들이고 선의와 용서로 어른다운 해결을 하는 개 주인의 태도는 영화를 더욱 따뜻하게 만든다. 전체 관람가, 109분.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리틀빅픽쳐스 제공
■ 계춘할망
제주도의 아름다운 자연을 바탕으로 한 영화는 웃음과 따뜻한 감동이 있는 가족 드라마다. 12년 전 시장에서 잃어버렸던 손녀가 눈앞에 나타났다. 그런데 착했던 손녀는 예전의 모습과 달리 불량소녀로 변해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무조건적인 사랑을 보여주는 손녀 바보 할머니 ‘계춘’과 할머니의 끝없는 애정을 부담스러워하는 손녀 ‘혜지’는 우리가 가족 안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설정이다. 가장 소중한 존재임에도 무심히 넘겨버리는 가족에 대한 시선이 담겨 있다. 자신의 진짜 손녀가 아닌 것을 알게 됐음에도 끝까지 마음으로 품는 할머니의 모습은 ‘자비’의 측면과도 많이 닮아있다. ‘언제나 나를 응원해 주는’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주는 영화다. 15세 관람가, 116분.
■ 에시오 트롯 : 거북아 거북아(Esio Trot)
로알드 달의 아동문학 「아북거, 아북거」를 원작으로 한다. 70대 어르신들의 만남을 밝고 정감있고 아름답게 다룬 동화 같은 영화다. 인생의 황혼기를 맞고 있는 시니어들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지만 모든 연령층이 공감할 수 있는 소재다.
사교적이지도 적극적이지도 못하지만, 이웃들을 배려하며 살아가는 호피는 아래층에 이사 온 실버 부인에게 첫눈에 반한다. 호감을 고백하고 싶지만 기회가 올 때마다 말문이 막히거나 옆집 남자에게 뺏기고 만다. 실버 부인과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던 중, 부인이 거북이 문제로 속상해 하는 모습을 본다. 호피는 불현듯 그 고민을 해결해 줄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누구에게나 닥치는 노년의 삶도 생각해 볼 수 있는 드라마다.
전체 관람가, 90분.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