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 본당의 역사를 따라] 성남대리구 구산본당
김성우 성인 전교로 신앙 싹튼 곳… 도시개발로 철거 위기 겪어
신자들 공동경작으로 쌀 수확하고
직접 자갈 채취 등으로 완공한 성전
원형 보전 위해 성전 통째 옮길 예정
1958년 완공된 현재의 구산성당.
성남대리구 구산본당(주임 김봉기 신부)은 김성우(안토니오) 성인의 묘와 그 신앙을 오늘날까지 지키고 현양해온 신앙공동체다.
동산의 모양이 마치 거북이 등 같이 생겼다고 해서 구산(龜山)이라 불리던 이 지역은 김성우 성인이 태어나고 자란 마을이었다.
성품이 온화하고 정직해 사람들의 존경을 받던 성인이 입교 후 친척들과 이웃들을 입교시키면서 구산에 신앙이 뿌리내렸다. 지금까지 내려오는 많은 교우촌들이 박해를 피해 신자들이 모여 형성된 마을이었다면, 구산은 성인의 전교로 교우촌으로 변한 곳이었다.
구산성당 이전 터에 세워진 김성우 성인 동상.
하지만 김성우 성인과 그 형제들의 순교로 구산 마을은 풍비박산이 났다. 사람들은 ‘천주’라는 말을 입에 담는 것조차 기피했다. 이렇게 흩어진 신자들을 모아 믿음의 불길을 다시 일으킨 것은 김성우 성인의 아들 김성희 회장이었다.
그는 아버지의 공소회장직을 이어받아 신자들을 은밀히 모아 전교했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에 걸쳐 혹독한 박해가 일어나 많은 이들이 순교했지만, 그때마다 구산마을은 교우촌을 재건해나갔다.
교우촌은 1880년대에 공소로 설립됐지만, 1891년 중림동약현본당의 공소가 되면서 정기적으로 성사가 집전되고 신자수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공소 설립 당시 10여 명에 불과했던 신자는 1922년 공소가 명동본당 관할로 이관될 때는 103명으로 늘어났다.
현재 본당의 성전이 지어진 것은 1958년의 일이다. 논을 빌려 공동경작을 통해 쌀 100가마니를 수확해 자금을 모았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한강변에서 자갈을 채취해왔고, 경당 건축을 위한 온갖 잡일을 신자들이 도맡아 했다.
마침내 119㎡ 규모의 경당이 완성됐다. 신자들의 손으로 직접 지은 성전은 아름답기로도 유명해 18차례에 걸쳐 영화·드라마 등의 촬영지가 되기도 했다.
2013년 본당 설립 34주년 감사미사 모습.
오랜 시간 신앙공동체를 이어온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된 것은 1979년 6월 30일이었다. 설립된 본당은 본당공동체를 견고히 하는 한편 구산성지 조성에도 앞장섰다.
대대로 김성우 성인을 비롯한 순교자들의 묘역을 지켜오던 본당은 본당 설립 이전부터 1927년 성인의 유해를 서울로 천묘하고, 1949년에는 구산지역에 성인의 순교기념비를 건립했다. 또 신자들이 자신의 농토를 떼어 봉헌해 지금의 구산성지 터를 마련했다. 본당 설립 후에는 성지에 분묘와 제대를 조성하고 ‘그리스도인의 도움이신 성모마리아’ 상을 세웠다. 1984년에는 「성 김성우 안토니오와 구산의 순교자들」이라는 자료집을 발간하기도 했다.
김성우 성인의 묘와 신앙을 지켜오던 본당은 하남시 미사강변도시 개발에 따라 선조부터 내려온 성당과 성지 터를 잃을 위기에 처했지만, 필사의 노력 끝에 성지를 보존, 성당은 300m 가량 이전할 수 있도록 협의했다. 현재 1958년에 지은 성전을 보존하기 위해 본당은 성전을 통째로 들어 이전하고자 준비하고 있다. 본당의 신축공사의 2배에 달하는 막대한 비용이 발생하지만, 본당의 역사와 신앙선조의 유산을 지키기 위한 노력인 만큼 포기할 수 없었다. 현재 본당은 구산성당을 보존하는 데 동참을 원하는 이들의 후원을 모집하고 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