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성지 111곳 순례 나선 제2항공여단 안의헌 소령
“가족이 함께 성지 다니며 신앙 안에서 화목 이뤄요”
지난 10월부터 전국 40여 곳 순례
세월호 참사 때 신앙 다시 돌아봐
주일 훈련 있어도 미사 꼭 참례해
모처럼의 꿀맛 같은 휴가, 군복을 사복으로 갈아입은 날 전국의 천주교 성지를 찾아 나서는 군인이 있다. 충북 음성 육군 항공작전사령부 제2항공여단 금왕기지 헬기 제1중대장으로 근무하는 안의헌(요한 세례자·40·군종교구 비승본당) 소령은 지난해 10월 충북 괴산 영풍성지 순례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찾은 성지가 40군데가 넘는다. 평일에는 늘 잠이 부족할 정도로 바쁜 항공부대 중대 지휘관 임무를 수행하면서 불과 열 달 사이에 전국의 성지 40여 곳을 순례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성지순례에는 아내(마틸다·39), 큰아들(루치오·초5), 작은아들(베네딕토·초3)이 늘 함께해 가정 성화의 시간이 되고 있다. 친가와 처가 부모님들도 동행해 신앙 안에서 가족 간 화목을 다지고 모든 가족들이 꼭 성지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친다. 안 소령은 “주교회의에서 정한 전국 성지 111군데를 모두 순례한 신자들이 많은 것으로 알지만 현역 군인은 아직 한 명도 없는 것 같다”며 “현역 군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전국 성지를 모두 순례하고 싶다”고 말했다.
춘천교구 양양성당을 찾았을 때는 특별한 기억이 있다. 양양성당에서 사목하다 6·25전쟁 중 순교한 ‘하느님의 종’ 이광재 신부(1909~1950)에 관한 기록을 본 작은아들이 “아빠, 우리나라 천주교회 순교자가 옛날에만 있었던 게 아니네요. 이광재 신부님은 1950년에 돌아가셨다고 나와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안 소령은 어리다고만 생각했던 아들이 그동안 성지를 다니며 보았던 순교자들의 기록을 기억하고 근현대 순교자와 조선시대 순교자를 구분하는 모습에 내심 놀라워하면서도 뿌듯함을 느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자가 예쁘다고 손에 쥐어준 용돈을 스스로 성지 봉헌함에 넣는 아들에게 안 소령은 감동 받기도 했다.
안 소령 가족이 지난해 11월 12일 공주 황새바위성지 십자가동산에서 함께했다. 안의헌 소령 제공
안 소령(왼쪽에서 세 번째)이 2013년 3월 31일 군종교구 비승본당에 사목방문을 온 유수일 주교(오른쪽에서 두 번째)와 담소를 나누고 있다. 안의헌 소령 제공
안 소령(뒷 줄 왼쪽 첫 번째) 가족이 올해 5월 28일 군종교구 무극공소에서 부대 승무원들과 기념촬영하고 있다. 안의헌 소령 제공
전국 성지순례를 시작한 이후 미리 성지가 담고 있는 역사를 알아보고 순례 일정을 짰던 것도 두 아들이었다. 안 소령은 “군종교구 본당에서는 아무래도 교회사나 순교자들에 대해 공부할 기회를 갖기 어려운데 성지순례를 다니면서 아이들이 한국 가톨릭교회 역사를 자연스럽게 알아가고 스스로 초를 켜 기도하는 장면에서 주님께서 저희 아이들과 함께하고 계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밝혔다. 손자들과 성지순례에 동행하는 안 소령의 양가 부모님들도 기도하는 손자들을 기특해 하면서 다음 휴가를 손꼽아 기다리곤 한다.
근무시간에는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항공부대 지휘관인 안 소령이 천금 같은 휴가기간에 성지순례에 나서는 열심한 신자가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사실 2년여 전까지만 해도 그는 주일미사만 의무감으로 드렸다.
2014년 4월 발생한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안 소령은 새로운 신앙인이 됐다. 안 소령은 진도 공설운동장에 지상근무요원으로 파견돼 세월호에서 수습한 시신을 헬기를 이용해 안산으로 운구하는 과정에서 통제장교 역할을 맡았다. 자녀의 이름을 목놓아 부르거나 오열하는 등 슬픔에 빠져 어찌할 바 몰라하는 유가족들을 볼 때마다 가슴 아파했던 안 소령은 매일 미사를 드리는 사제와 수도자, 봉사자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도울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으려 노력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수녀가 헬기에 옮겨진 학생 시신을 애타게 찾고 있다는 것을 알고 급하게 그 수녀를 헬기로 안내해 마지막 인사와 기도를 할 수 있도록 도왔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너무나 적음에 안타까웠습니다.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와 통제부에 앉아 안타까운 마음을 다스리다가 아내가 파견 가면 꼭 읽어 보라던 「미사의 신비」라는 책을 꺼내 읽게 됐습니다. 이때 다시금 주님의 은총과 사랑을 느꼈고 그동안 저의 신앙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됐습니다.” 그때까지 의무감으로 나갔던 미사가 감사와 찬미가 넘치는 미사로 바뀌었다. 군복무를 하다 보면 주일에도 훈련이 있거나 갑작스런 상황이 생길 때도 있지만 주일미사만큼은 어떻게든 봉헌했다. 남편에게 「미사의 신비」를 선물한 아내는 수도성소를 준비하다 춘천 우두성당에서 안 소령을 만나 2003년 결혼했다.
안 소령이 근무하는 금왕기지에는 성당이나 공소가 없어 인근 부대 무극공소에서 주일 오전 9시에 금왕기지 승무원들과 미사를 봉헌한다. 신자 승무원들이 미사에 참례할 수 있는 여건과 교통편을 마련하고 크고 작은 성당 살림살이에서 궂은 일에 앞장서는 것도 안 소령의 몫이다. 그는 “저희 가족 말고는 미사에 꾸준히 나오는 금왕기지 승무원이 3명밖에 없지만 다들 신심이 큰 신자들이어서 그들의 신앙이 다른 신자들을 불러 모으게 될 날이 오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안 소령에게 신앙이란 무엇인지 물었다. “저에게 신앙은 하느님과의 대화입니다. 최근 성지순례를 통해 아내와 아이들, 양가 부모님들과 서로의 신앙에 대한 대화를 많이 하게 되면서 신앙은 하느님과의 대화라는 생각이 더욱 굳어졌습니다. 아이들에게도 신앙생활은 주님 안에서 끊임없이 사랑을 느끼고 찾아가는 것이라 가르치고 있습니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