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딸 흉 한번 볼까요. 우리 가족의 주일미사 참례는 대부분 조금 늦습니다. 성당에 도착하면 통상 입당송을 하거나 신부님께서 시작기도를 할 때가 많습니다. 바로 새내기 대학생 딸 때문이죠. 우리 부부만 가자니 딸이 성당에 안 다닐 것 같고 재촉한다고 빨리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아내는 현관문을 잡고 저는 엘리베이터의 열림 버튼을 누르고 딸을 기다립니다.
이런 딸을 보면서 몇 년 전 읽었던 이수광의 「조선이 버린 사람들」이라는 책을 떠올리게 됩니다. 조선시대인 1866년 병인년에 천주교 신자들에게 가해진 참혹한 박해를 그린 내용입니다. 이때 파리외방전교회 신부님과 수많은 조선의 백성들이 천주교를 믿는다는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 이슬처럼 사라졌습니다.
배교를 강권하기 위한 가혹한 고문은 기본이었고 배교를 하지 않은 신자들은 사형을 당했습니다. 이러한 혹독한 박해에도 조선시대 선조 신앙인들은 자신의 신념을 꺾지 않았습니다.
언제 오실지 모르는 신부님을 하염없이 기다렸으며, 목숨을 걸고 미사에 참례하고 성체를 모시기 위해 100리 길을 달려왔습니다.
특히 농부인 손자선 토마스는 “나는 만 번 죽어도 배교할 수 없다”면서 흔쾌히 교수형을 받았습니다. 이순이 루갈다는 결혼을 했지만 끝까지 동정을 지켰으며 결국에는 부부가 순교의 길을 택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때론 눈물을 훔쳤고 경외심마저 들었습니다.
조선시대 선조들에 비하면 요즘의 신앙생활은 너무나 편리합니다. 종교의 자유가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어느 곳에서든 미사를 봉헌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언제든 신부님을 만날 수 있고 미사에만 참석하면 성체를 영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신앙생활이 편리하고 쉽기 때문에 오히려 신앙생활의 소중함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닌가 합니다. 미사보다는 개인적인 일이 우선이고 모임이나 운동 등을 먼저 계획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저의 신앙생활도 이와 다를 바 없습니다. 가장 기본인 미사 시간조차 지키지 못하니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와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마르코 8,34~3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이야 종교 박해도 없습니다. 따라서 선조들처럼 실제 죽음으로 신앙을 지키는 적색 순교(피를 흘리며 죽는 순교)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피 흘림 없이 하느님 사랑을 위해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는 ‘백색 순교’는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실한 신앙심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 바로 백색 순교가 될 것입니다.
이번 주일부터 딸은 주일미사 참례를 토요일 저녁 주일미사로 바꿨습니다. 딸은 미사시간에 늦지 않았고, 우리 부부는 마음 편하게 주일 교중미사에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이연세(요셉) 대령/육군 항공작전사령부 안전관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