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환 신부의 인물과 영성이야기] (36) 닥 함마슐트 (상)
영성 안에서 ‘책임과 소명’ 고민했던 유엔 사무총장
“구도는 결코 헛되지 않는다.
이로써 너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길을 찾으라, 너를 완성으로 이끌어줄.”
출처 www.voanews.com
■ 삶의 책임과 영성의 길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다양하게 영성의 길들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 길들을 보고 듣고 체험할 때마다 우리가 던지게 되는 질문은, 과연 그것이 올바른 길인가를 식별하게 하는 기준이 어디에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영성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를 현혹하거나 자기자신을 과시하고 꾸며대며 삶의 책임과 헌신을 회피하는 모습을 적잖이 보곤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다름 아니라 나 자신의 모습일 수도 있구요. 그래서 영성을 추구하는 길은 동시에 사람이 삶에 대해 마땅히 가져야 하는 책임감과 소명감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유엔 사무총장으로 꼽히며, 콩고 내전을 중재하려는 노력 중에 의문의 추락사로 유명을 달리한 스웨덴의 경제학자이자 정치가이며 문학가였던 닥 함마슐트(Dag Hammarskjold·1905~1961)의 삶과 그가 유고로 남긴 글을 모은 「길잡이」라는 책은 오늘날 영성의 길을 추구하는 모든 이들에게 숙고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세상 안에서의 일과 책임, 소명들이 얼마나 깊이 영성과 신비적 체험과 연관되어 있는지를 탁월하게 보여준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먼저 그의 삶과 영성에서 중요한 주제들에 관해, 그의 일기에서 발췌한 말들을 통하여 음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올리버 콜러(Oliver Kohler)가 쓴 독일어판 전기인 「닥 함마슐트- 가장 긴 여행은 내면으로의 여행: 일기에서 발췌한 그의 삶의 여정」(아데오 출판사, 2015)에서 인용합니다.
■ 소명
겸손을 통한 자기비움 안에서 다른 것들은 다 사라지겠지.
그러나 비로소 인생의 사명들이 그 진면목을 드러낸다.
그것의 엄중함을 육신처럼 삼는 것이 소명에 따른 삶의 태도이리라.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일과 시와 예술 앞에서 ‘나’를 헌신하는 사명이 단순하고 자유롭게 주어지며, 내적인 정체성의 힘 안에서 나의 사명이 드러난다. 칭찬과 비난, 성공과 실패의 엇갈림이라는 바람은 나의 삶에 덧없이 지나갈 뿐, 삶의 무게 중심을 결코 흔들어 놓지 못할지니.
이렇게 살도록, 주여, 저를 도우소서.(1959년 7월 29일)
다른 길은 빛나는 태양 아래서 쉽게 눈에 띄는 휴식처를 가지고 있을지 몰라.
하지만 이 길이야말로 너의 길이며, 지금 너에게 주어진 길이며, 지금 네가 거절해서는 안 되는 길이다.
울어라,
울어야 한다면,
울어라.
그러나 한탄하지는 말라.
바로 너를 이 길이 선택했으니
너는 감사해야 할 뿐.
(1961년 7월 6일)
■ 길
신앙 안에서 ‘순종하며’ 그분의 길을 발견하고, 환상이 아니라 하느님의 눈길 아래서 실재를 대하며 그 길을 거듭 다시 발견할 수 있는 감각을 지닐 일이다, 마치 장님놀이처럼: 보지 못할 때에는 모든 감각을 집중하여, 올바른 길을 발견하려 애쓰지 않는가, 손으로 친구의 얼굴을 더듬어가며, 그러면서 이미 내가 늘 거기 있어왔던 나의 길을 다시 찾는 것이 아닌가. 아, 만일 내가 길이 거기 있었음을 한시라도 잊지 않았다면, 지금 내 눈을 가린 안대는 없었을 터인데.
(1955년)
■ 책임
우리의 책임이란, 얼마나 가공할 만한 것인지.
만일 네가 그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면, 너의 배신으로 인해 인류에게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하게 되시는 분은 바로 하느님이다.
생각해보라, 너는 과연 하느님 앞에서 그 책임을 질 수 있는지, 너는 하느님을 위해서 그 책임을 질 수 있는지.(1957년 9월 3일)
■ 하느님
우리가 더 이상 인격적 신성을 믿지 않게 된 그날, 신이 죽은 것이 아니다. 아니, 우리가 그날 죽은 것이다. 그날부터 더 이상 우리의 삶은 기적의 광채로부터 선사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날부터 더 이상 우리의 삶은, 모든 이성을 초월하는 빛의 원천으로부터 비추어지지 않았다.(1950년)
■ 언제나
모든 것을 보고 있되, 모든 것을 너그러운 인내 속에서
봐주는 신적 사랑과 함께
눈을 마주 보며
더없이 옳으시되
판단하고 심판하지 않으시는
우리의 눈길이 겸손 속에서 그 사랑을 비출 수 있다면
■ 삶
삶이 보잘것없는가? 혹시 너의 손이 너무 작고, 너의 눈동자가 너무 흐릿한 것은 아닌가? 삶이 아니라, 바로 너이다. 자라나고 풍요해져야 하는 것은.(1950년)
최대환 신부 (의정부교구 안식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