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대 신학연구소 ‘종교개혁 500년, 그 빛과 어둠’ 국제학술대회
“분열 아닌 일치 안에서 교회 쇄신 노력 함께 펼쳐야”
가톨릭·개신교 신학자들 모여 일치 노력·다양성의 조화 통한 그리스도교 개혁 방향 모색
서강대학교 신학연구소 ‘종교개혁 500년, 그 빛과 어둠’ 국제학술대회에 참여한 신학자들이 9월 24일 종합 토론 시간을 갖고 있다. 이번 학술대회에는 국내외 가톨릭과 개신교 신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그리스도교의 참다운 개혁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1517년 루터가 독일 비텐베르크에서 95개조 논제를 제시하며 시작된 종교개혁은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어떤 화두를 던지고 있는가. 교회의 개혁은 과연 무엇이고, 그 개혁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일까. 개혁을 통해 하나의 교회이자 일치된 교회 건설은 가능한 것일까.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국내외 석학들이 한자리에 모여 과거 그리스도교 개혁의 의미를 다시 해석하고 현재를 성찰하면서 교회가 지향해야 할 미래 모습을 고민해보는 뜻깊은 자리가 있었다.
서강대학교 신학연구소(소장 이규성 신부)는 9월 23~24일 서강대학교 다산관에서 ‘종교개혁 500년, 그 빛과 어둠’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를 마련했다. 주교회의 교회일치위원회 위원장 김희중 대주교(광주대교구장, 주교회의 의장)를 비롯해서 총 14명의 가톨릭과 개신교 신학자들이 참석한 학술대회는 종교개혁에 대한 역사적 반성을 기초로 일치를 향한 현재의 노력, 또한 일치와 다양성이 조화를 이루는 미래의 참다운 개혁 방향을 모색하는 시간이었다.
‘I 쇄신을 향한 개혁’ ‘II 일치를 향한 개혁’ ‘III 개혁을 개혁하라’ 등 총 세 개 세션으로 진행된 대회에서 참석자들은 분열이 아닌 일치 안에서 개혁의 노력이 이뤄질 수 있는 방향을 살폈다. 또한 가톨릭과 개신교 간 신학적 및 실천적 대화 현황 등을 통해 그리스도교가 지향해야 할 쇄신 모습에 목소리를 모았다.
김희중 대주교가 9월 23일 ‘종교개혁 500년, 그 빛과 어둠’ 국제학술대회에서 ‘가톨릭교회 입장에서 본 루터 개혁운동의 배경과 500주년의 교회사적 의미’ 주제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사진 서상덕 기자
김희중 대주교는 ‘가톨릭교회 입장에서 본 루터 개혁운동의 배경과 500주년의 교회사적 의미’ 주제 기조강연에서 “이제는 한국의 천주교와 개신교가 무엇이 다른가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우선 신앙의 공통 유산이 무엇인지 공유하면서 복음 말씀을 함께 묵상하고 함께 기도하며 실천하는 일부터 구체적으로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종교개혁의 시대적, 지성적, 신학적 배경과 함께 당시 교회 내부의 상황 그리고 종교개혁 이후 가톨릭 교회의 쇄신운동을 살핀 김 대주교는 “양 교회는 이제까지 서로를 용서하며 받아들여 일치하려는 진솔한 노력을 기울이기보다는 서로를 단죄하고, 나와 다른 것은 다 틀린 것으로 폄하하는 비복음적인 모습에 더 익숙해져 있었다”면서 “서방 교회의 일치운동 결과만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양 교회에서 구체적인 일치운동을 벌여 세계교회에 자극을 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적극적인 일치 자세를 제안했다.
북미 유럽 아시아 각국에서 참석한 신학자들과 국내 가톨릭 개신교계 신학자들이 자리를 함께한 학술대회는 다채로운 참여 폭만큼 흥미로운 주제들을 쏟아냈다.
신정훈 신부(가톨릭대학교 교의신학 교수)는 ‘가톨릭 관점에서 본 루터와 칼뱅의 직무이해’ 주제를 통해 가톨릭신학의 관점에서 루터와 칼뱅 두 개혁 신학자의 직무론을 소개하고 이를 제2차 바티칸공의회 교회 직무에 대한 이해와 비교했다. 아울러 이를 바탕으로 직무론과 관련된 교회 일치를 위한 대화의 공동 기반을 확인했다.
또한 송용민 신부(주교회의 사무국장, 인천가톨릭대 교수)는 ‘일치의 원리인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감각, 그 가능성과 한계’ 발표에서 ‘그리스도인의 신앙 감각’이 교회 일치 운동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또 교파 간 서로 다른 ‘신앙 감각의 표현들’이 한국교회 안에서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 살폈다.
‘예수회와 루터개혁’ 주제로 초기 예수회원들이 루터와 그의 지지자들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 설명한 미셀 페두(Michel FEDOU) 신부(예수회, 상트 세브르 파리 예수회 대학 교수)와 ‘루터와 이냐시오 로욜라의 영성적 접점’에 대해 다룬 폴 롤피 핀토(Paul Rolphy PINTO) 신부(예수회, 이탈리아 그레고리안 대학교 교수) 발표도 예수회와 종교개혁가들, 또한 이냐시오 로욜라와 루터의 영성적 교점을 찾아가는 면에서 주목을 끌었다.
학술적으로 교회 일치를 실현하는 프랑스의 동브그룹(Groupe des Dombes) 사례를 통해 ‘일치’ 문제에 접근한 카트린 쉬르크 루카스(프랑스 교회일치연구소)씨 발표는 보다 실제적인 신학적 일치 활동을 제시한 점에서 특별한 관심을 얻었다. 동브그룹은 거의 80년 동안 가톨릭과 루터교 개신교 학자들이 모여 지속적인 교리적 대화를 진행하며 교파적 회개를 제기하고 있다.
최형묵 교수(한신대학교)의 ‘그리스도교와 자본주의: 인간의 삶을 위한 교회의 선택’, 정경일 박사(새길기독사회문화원장)의 ‘모든 신자는 예언자다: 제3의 종교개혁을 위한 사회적 영성’ 발표는 민중 신학의 입장에서 교회 개혁과 쇄신의 문제를 바라본 신선한 시도로 평가됐다.
신학연구소장 이규성 신부는 “한국 사회 안에서 그리스도교 인구가 종교 인구의 50%를 넘고 있는데, 이는 그리스도교가 실제 한국 사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일치의 모범으로 세워진 그리스도 공동체가 과거 상처에만 매이거나 상호 몰이해로 인한 갈등과 분열 양상을 보인다면 양 교계는 물론 우리 사회의 화해와 일치에도 해가 될 것”이라고 말하고 “이번 학술대회가 교회 일치를 통해 가깝게는 모든 한국 사람들의 영적인 구원을 돕는 작은 불씨 같은 출발점이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 토마스 버클리 신부(미국 산타클라라대학 교수·예수회)
“함께 기도하며 일치·대화 촉진하길”
지난 8월 미국 가톨릭 주교회의와 루터교 지도자들은 ‘도상에서의 선언: 교회, 직무, 성찬례’(Declaration on the Way: Church, Ministry and Eucharist)라는 중요한 문서를 발표했다. 이 문헌은 교회일치를 추구하는 루터교와 가톨릭교회에 ‘감독(주교) 직무’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었다.
역사학자인 토마스 버클리(Thomas BUCKLEY) 신부(미국 산타클라라대학 교수ㆍ예수회)는 이번 학술대회에서 이 ‘감독(주교) 직무’ 문제를 종교개혁 시작에서부터 탐색, 눈길을 모았다. 교회사적인 흐름 안에서 종교개혁 시대 중요 이슈였던 ‘누가 교회를 대표하는가’의 문제를 제기하고 종교개혁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도왔다.
버클리 신부는 이러한 시대적 전망 작업과 더불어 지금 이 시대 안에서 요청되는 새로운 일치 노력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일치는 복음에서부터 예수 그리스도가 직접 당부하신 부분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예수의 말씀을 따르고 증언하는 사람들이라면 마땅히 그 말씀처럼 ‘하나’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일치를 향한 노력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진단한 그는 “아주 단순하고 기초적인 것에서부터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는 있는 교황의 행보가 앞으로의 일치 여정에 있어 매우 좋은 ‘사인’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밝혔다.
“개신교회와 가톨릭교회가 아직 충분히 서로 합의하지 못한 사항들이 있지만, 한편 다방면으로 대화가 많이 시도되고 있어 희망적이고 긍정적”이라고 전한 버클리 신부. “그 과정에서 서로 성장하고 있는 부분도 눈여겨 봐야 할 내용” 이라고 했다. 그는 “개신교회에서 가톨릭의 전례 방식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나, 가톨릭에서 성경과 강론 등에 비중을 높이는 모습” 등을 그 사례로 소개했다.
“개신교 신학자들과 함께 ‘종교개혁’을 소재로 쇄신과 일치의 문제를 나누는 이번 학술대회 역시 학술적 대화를 통해 함께 나누는 노력으로 비춰진다”고 평한 버클리 신부는 “무엇보다 ‘기도’가 필요하다”는 당부를 전했다.
“‘모두 하나가 되라’고 하신 예수님 말씀을 실현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입니다. 함께 기도하며 일치와 대화를 보다 촉진시키는 좋은 시기가 되도록 마음을 모아야 할 것입니다.”
■ 이정배 목사(전 감리교 신학대학 교수)
“작은 교회 모습으로 복음화 노력을”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교회의 복음화가 먼저 되지 않으면 세상의 복음화는 없다고 하신 것처럼, 진정한 ‘복음화’를 위해 먼저 성찰하는 가톨릭교회 움직임에 개신교 입장에서 고마운 마음입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면서 어떻게 함께 교회의 개혁을 이룰 수 있을지 고민하는 자리가 매우 소중한 것 같습니다.”
이번 학술대회에서 종교개혁의 3개 ‘오직(sola)’ 교리(오직 믿음, 오직 은총, 오직 성서)를 비판하면서 이에 근거한 ‘작은 교회 운동’을 제시한 이정배 목사(전 감리교 신학대학 교수).
“초기 교회의 모습이 작은 교회였다”고 주장한 이 목사는 “다양성과 세상에 저항하는 모습을 통해 자신의 카리스마에 투철했던 것을 상기할 때 오늘날 자본주의에 잡혀 버린 듯한 대형교회 형태는 그 본질에 다가가기 어렵다”고 했다.
“3개 ‘오직’ 교리가 자본주의적인 욕망을 부추기고 안정화시키는 기복 신앙으로 사용되면서 잘못된 천민자본주의와 연결돼 성장만 추구하는 교회들이 되어버렸다”고 질타한 이 목사는 “그러한 물질주의의 유혹에 빠진 현실에 저항하는 모습을 ‘작은 교회 운동’으로 찾고자 한다”고 말했다. 종교개혁 500주년도 그러한 작은 교회, 초기 교회 본질로 돌아가는 자세로 준비하고 싶다고 했다.
“개신교계에서는 500년 전 루터가 개혁을 얘기했을 당시 가톨릭 모습을 여전히 고수하는 분위기가 강해서 참담할 때가 많다”는 이 목사는 “이번 기회에 가톨릭이 종교개혁 이후 쇄신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많이 알리고 공부하면서 좀 더 서로를 알아가는 기회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30년간 교단에서 목회자를 양성했던 이 목사는 무엇보다 개신교와 가톨릭교회의 신학교 과정에서부터 양 교회를 배우고 이해하는 교과 과정이 늘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사목자들의 의식 전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종교개혁 500주년은 우리도 개혁의 대상이 될 수 있고 또 개혁 대상이 되어야 할 시점이라는 것을 일깨워 준다”고 밝힌 이 목사는 “이런 상황을 철저히 인식하면서 어떤 이벤트로서가 아니라 그때의 개혁 정신을 되살리고 현 주소를 살펴보는 자성의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종교개혁 500주년 의미를 밝혔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