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본당의 역사를 따라] 안산대리구 철산본당
신자들 벽돌 나르며 성당 지어… 지역사회 문화·복지 거점
1982년 광명본당서 신자 집 빌려 분가
주일미사에선 청각장애인 위한 수화통역
30주년엔 해외선교기금 1억원 교구에 전달
안산대리구 철산본당(주임 강정근 신부)은 광명시에 두 번째로 설립된 본당으로, 열성적으로 전교할 뿐 아니라 지역의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 등을 배려하고 함께해 왔다.
철산본당은 1970년대 광명 지역에 인구 유입이 가속화됨에 따라, 설립이 추진됐다. 이미 1974년 광명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될 당시부터, 철산 지역에서는 본당 설립이 구상돼왔다. 1972년 광명공소를 지도하던 장덕호 신부는 앞으로 철산리에도 성당이 필요할 것임을 내다보고, 공소 사목위원들에게 적당한 부지를 미리 마련하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본당 설립이 본격적으로 추진된 것은 1980년에 들어서다. 당시 광명본당은 철산지역에 분당을 염두에 두고 성당부지를 구입했다. 마침 1981년 시흥시에 속해 있던 광명리와 철산리 일대가 광명시로 승격되면서, 도시화가 진행되고 서울에서 많은 인구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분당이 시급해졌다.
1982년 3월 4일 철산본당이 광명본당에서 분가해 설립됐다. 성당을 마련할 준비가 채 되지 않았지만, 날로 불어나는 광명본당의 신자들을 사목하는 데 한계가 컸기 때문에 더 이상 분당을 미룰 수 없었다.
성당 없이 시작한 본당은 마치 공소시절처럼, 거실이 넓은 본당 신자의 집을 빌려 미사를 봉헌하면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신자들은 주일미사를 드리기 위해 집안 곳곳에 쭈그려 앉아 강론도 제대로 듣지 못한 채 미사를 드렸다. 8개월간을 가정집에서 미사를 드리고 간신히 지하실을 얻어 미사를 드릴 수 있었다.
2011년 철산본당은 성경골든벨 큰잔치를 열어 신자들이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신자 대부분이 사글세 신세였지만, 신자들이 한뜻으로 정성을 모아 성당을 지었다. 신축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저녁잠도 설쳐가면서 미숫가루, 참기름을 만들어 팔았다. 어떤 신자들은 오래 간직한 금반지를 내놨고, 어떤 신자는 파출부로 일해 번 돈을 모두 성당건축기금으로 봉헌했다. 건축에 필요한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성당에 사용된 32만장의 벽돌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본당 신자들이 직접 나르기도 했다. 마침내 본당은 1989년 새 성당을 봉헌할 수 있었다. 본당의 새 성당은 12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당시 교구에서도 규모가 가장 큰 성당이었다. 본당의 여건상 큰 규모의 성당건축이 어려운 일이었기에 비난도 많았지만 본당은 앞으로 교세가 크게 증가할 것을 예측했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교황 방문 등의 사회적 분위기와 본당의 열심한 전교로 신자가 빠르게 증가, 1991년 한 해에 신자가 4000여 명 증가했고, 1993년까지 해마다 1000명 이상의 영세자가 나왔다. 이에 1995년에는 본당 신자가 1만5000여 명에 달하기도 했다. 본당은 교구 내에서도 대형 본당으로 분류됐고, 1989년 소하동본당을 시작으로 하안·광북본당 등을 분당했다. 현재도 본당 신자 수가 7839명에 달한다.
장애를 지닌 신자들을 위한 전교도 활발하다. 본당은 성당 설계 당시부터 경사로를 설치해 휠체어가 이동하기 쉽도록 배려했다. 또 매 주일 미사에 청각장애인들도 미사에 참례할 수 있도록, 미사 시 수화 통역봉사자가 활동하도록 배려한 본당이기도 하다.
본당은 전교에 박차를 가함과 동시에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일도 잊지 않았다. 본당은 비신자들도 함께할 수 있는 송년음악회를 열고, 성당 휴게실을 대통령선거 투표장소로 제공하는 등 성당에 지역주민을 초대했다. 또 2007년부터 어린이집을 운영해 지역 어린이들을 보살피고, 김치나눔운동으로 지역 독거노인과 소년소녀가장 등에게 김치를 전달해왔다. 바자 등으로 성금을 모아 지역의 가난한 이들을 돕기도 하고, 본당설립 30주년을 맞아 교구 해외선교기금으로 1억 원을 전달하기도 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