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10월 26일 이탈리아 5대 오페라 극장 중 하나인 베르디 극장에서 오페라 리골레토의 여주인공 ‘질다’ 역으로 국제무대에 데뷔한 조수미(소화데레사)씨.
당시 오페라 본고장 이탈리아에서 동양인이 프리마돈나를 맡기는 처음이었다. 전 세계적인 관심이 쏠린 것은 물론이다. 이후 1988년 ‘20세기 지휘 황제’ 고(故)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1908~1989)과의 만남으로 오페라 인생의 전환을 맞았던 그는 동양인 최초 6개 콩쿠르 석권, 동양인 최초 황금기러기상 수상 등 숱한 기록을 남기며 콜로라투라의 대가로 세계 성악계에 자리매김하고 있다.
최근 이 같은 데뷔 30주년의 음악 인생을 담은 컴필레이션 앨범 ‘라 프리마돈나(La Prima Donna)’가 발매됐고 전국에서 같은 제목의 기념 공연도 열렸다.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그는 “데뷔 이후 앞만 보고 달려오는 과정이었다”면서 “30년간 한국의 팬들로부터 받은 특별한 사랑에 감사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 여정에서 “신앙의 힘이 에너지였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가 다뤄온 음악의 폭은 다양하다. 가곡, 오페라를 비롯해서 크로스오버 등 여러 장르를 오간다. 또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연주할 소프라노가 흔치 않아 소개될 기회가 적었던 작품을 연주, ‘음악의 혁명가’ 라는 칭호를 받기도 했다. 그는 “틀과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롭고 아름다운 도전”으로 평했다.
장르를 넘어서는 음악 작업에 대해 “노래는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에 어떤 장르의 노래가 더 좋고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 그는 “크로스오버는 대중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작업의 일환”이라고 들려줬다.
2014년 교황 방한 때의 공연 기억을 떠올린 그는 “교황님을 항상 존경해 왔었는데, 그것도 한국에서 노래를 불러 드릴 수 있어 큰 영광이자 기쁨이었다”고 말했다. “적합한 곡을 찾느라 많이 고민했었다”고 뒷얘기도 밝혔다.
30년의 세월 속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로는 오디션에 초청했던 ‘카라얀’을 꼽았다. 카라얀은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목소리’라고 그에게 극찬을 보낸 바 있다. “하나의 계시같은 경험이었습니다. 그 후 갑자기 돌아가시는 드라마틱한 일이 벌어졌는데, 그 일은 제게 너무도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어 인생을 한꺼번에 살아버린 느낌이었습니다.”
평소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나눔 음악회에도 자주 보이는 그다. 최근에도 빈곤국가 어린이 교육을 위해서 콘서트를 열었다. “저처럼 특별한 능력을 받은 사람들은 사명처럼 소외된 분들을 위해 일을 해야한다고 믿습니다. 그런 면에서 활동의 일부분을 ‘나눔’에 할애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추구하며 열심히 삶을 살았던 음악인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한 그는 특히 “조수미 노래를 들으며 삶의 의미를 가질 수 있었다”고 말해줄 수 있는 관객이 있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더 이상 노래를 부를 수 없을 때까지 열심히 노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이후의 남은 인생은 봉사하면서 살고자 합니다.”
“음성이 허락하는 한, 귀한 능력을 주신 하느님을 위해 음반을 만들고 싶다”는 그. “현대에 작곡된 성가곡들은 접할 기회가 많이 없었는데, 기회가 된다면 한 번 도전해서 불러 보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