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보병사단 연승연대 ‘병영생활전문상담관’ 김영혜씨
“지나가는 군인만 봐도 ‘고민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범죄 심리사로 일하다 군대 관심 가져
지난 1년여 간 700여 명의 병사와 상담
이등병 캠프·자살 예방 교육 등도 맡아
“사회보다 군대서 상담 더 필요해” 강조
김영혜 제7보병사단 연승연대 ‘병영생활전문상담관’은 상담을 받은 용사들이 변화되는 모습에 사명과 보람을 느끼고 있다.
“저 복학해서 학교 잘 다니고 있습니다. 이게 다 상담관님 덕분이에요. 감사합니다.” 군생활 부적응으로 자살 우려까지 보였던 용사(병사)가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전역한 뒤 강원도 화천 육군 제7보병사단 연승(連勝)연대 김영혜(로사·34·수원 조원동주교좌본당) ‘병영생활전문상담관’에게 감사 전화를 걸어왔다.
여성 민간인이 현역 병사가 운전하는 군용 지프를 타고 최전방 부대를 찾아다니는 장면은 무척 생소하게 여겨진다. 김영혜 상담관은 고충과 고민을 안고 있는 연승연대 용사가 있는 곳이라면 장소를 가리지 않고 군용 지프에 몸을 싣고 달려간다.
김 상담관은 국방부에서 채용하는 병영생활전문상담관에 지원해 지난해 9월 1일부터 7사단 연승연대 용사들과 간부들의 고충과 고민을 듣고 지휘관에게 해결책을 제시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1년이 약간 넘는 기간 동안 그가 만난 인원은 600~700명에 이른다. 개인 상담뿐만 아니라 2~3주에 한 번씩 열리는 ‘이등병 캠프’(비전설계 교육), 집단 상담, 자살 예방 교육 등도 맡고 있다.
김 상담관은 캐나다 시민권자라는 특이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한국말도 잘하지만 영어를 더 잘할 정도로 외국 생활을 오래 했다. 외국 시민권자가 국내에서 그것도 강원도 오지 군부대에서 일하게 된 사연이 궁금하다.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초등학교 1학년 때 인도네시아에 가족들이 이주해서 5년 동안 살았고 중학교 1학년 때 미국으로 건너가 중3때 캐나다에서 살기 시작해 시민권자가 됐습니다. 캐나다에서 심리학 학부과정을 마치고 한국 이민자들을 상대로 상담을 하고 싶어 석사 과정을 준비하다 오랜 기간 한국문화를 접할 기회를 갖지 못한 저는 석사만큼은 한국에서 하려고 무작정 혼자 한국에 왔습니다.”
그는 2009년 귀국해 국내에서 상담 관련 석사학위와 자격증을 받았다. ‘범죄 심리사’ 자격증도 가지고 있던 김 상담관은 경찰서에서 범죄 심리사로 일하게 되면서 한국 군대에 관심을 키우기 시작했다. “경찰서 근무를 통해 군대에서도 상담사가 활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한국에서는 군대가 중요한 기관이면서 성인 초기에 접어드는 20대 남성들에게는 인생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어 병영생활전문상담관에 지원했습니다.”
캐나다에 있는 그의 어머니는 홀로 한국에서 생활하는 딸을 그리워하며 매일 새벽과 저녁마다 묵주기도를 바친다. 군대에 보낸 자식을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이 곧 그의 어머니 마음이다. 김 상담관도 바쁜 일과 중에도 묵주기도를 바치고 때때로 성당을 찾아 기도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긴다.
김 상담관이 고민을 안고 있는 용사와 상담을 하는 모습.
7사단 연승연대 용사들은 주로 부대 화장실에 적혀 있는 김 상담관의 휴대전화 연락처를 보고 전화를 걸거나 이메일을 보내 상담을 요청한다. 당장 공중전화를 걸 돈이 없는 용사는 ‘콜렉트 콜’(수신자 부담 전화)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자발적으로 상담을 요청하는 사례와 달리 부대 지휘관이나 간부가 병영생활을 힘들어 하는 용사를 김 상담관에게 보내 상담을 요청하기도 한다.
“제가 부대에서 상담관으로 일하면서 가장 힘들 때가 비자발적으로 저에게 보내진 용사들을 만날 때입니다. ‘나는 아무 문제 없는데 왜 나를 문제 용사 취급하나’라는 인식을 가진 용사는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며 상담관의 말을 불신하거나 아주 거부하기도 합니다. 상담을 받았다는 이유로 관심 용사로 낙인찍혀 소외 받지 않도록 상담에 대한 인식 개선 교육이 충분히 이뤄졌으면 합니다.”
군대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충분한 시간 여유를 갖기 힘들어 장기 상담에 한계가 있는 것도 상담관으로서 고충이다. “사회에서는 1년 이상 장기 상담이나 평균 10~12회기의 단기 상담을 주로 진행했지만 군 특성상 긴급 상담으로 의뢰가 오면 단회기로 끝나고 길어도 5~6회기 상담이 대부분입니다.” 김 상담관이 ‘즉시성’을 상담의 최우선 요소로 중요시하는 이유도 이와 같은 시간적 한계 때문이다. 용사의 현재 욕구(Want)가 무엇인지 ‘지금, 여기’에서 검토하고 용사가 안고 있는 심리적 고민이 현재 발현될 수밖에 없는 원인을 탐색하는 작업에 힘을 기울인다. 상담 과정에서 용사들의 취약점과 동시에 장점도 찾아내 장점이 최대치로 기능하도록 끌어올리는 것도 그의 역할이다. “용사들의 개인 상담이 끝나고 부대 차원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용사들이 동의한 내용에 한해 상황별로 중대장, 대대장, 연대장 등에게 ‘지휘 조언’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요즘 군대가 과거 군대와 달라진 점으로 ‘활발해진 소통’을 꼽았다. 아버지 세대에는 계급에 대한 개념이 너무나 확고해 간부나 상급자를 대하기가 어려웠지만 요즘 군대는 ‘동기 생활관’이 설치되는 등 과거에 비해 완화된 분위기에서 병영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폭언이나 폭행 같은 병영 내 ‘부조리’에 대해 더 이상 쉬쉬하지 않고 징계가 엄하게 내려지는 데다 용사 개개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
“소통이 자유롭고 활발해진 군대에서는 한 용사의 심리적인 부분이 다른 용사에게도 영향을 크게 미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상담의 필요성은 사회에서보다 군대가 더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7사단 연승연대 병영생활전문상담관으로 1년을 일한 그는 자신이 하는 일에 뚜렷한 사명과 보람을 느끼고 있다. “군대생활에 적응을 못해 지속적으로 상담을 받은 용사가 잘 적응해 마지막 상담을 마치고 전역을 앞둔 모습을 보면 정말 기쁩니다.”
그로 인해 부대도 많이 변했고 자신도 많이 변했다. “길을 걷노라면 예전에는 안 보이던 군인들이 참 많이 보입니다. 군인 한 사람 한 사람마다, 이등병, 일병, 상병, 병장마다 무슨 고민을 할까 저도 같이 고민하게 되네요.”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