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다녀온 대한민국 남자라면 점호에 대한 추억은 한두 가지씩 가지고 있을 겁니다.
1984년 2월, 소대장으로 보직을 받고 처음으로 당직근무를 서며 저녁점호를 주관했습니다. 분대장의 인원보고를 받고 막 개인 장구류를 점검하려던 찰나, 서있던 한 이등병의 얼굴이 하얗게 변하면서 통나무처럼 쓰러졌습니다.
저는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너무나 놀랐습니다. 마침 옆에 있던 동료가 잡지 않았다면 아마도 큰 부상을 당했을 겁니다. 이 이등병은 신임 소대장이 처음 취하는 날선 점호 분위기에 압도돼 과도하게 긴장했기 때문에 일어난 해프닝이었습니다.
군대에서의 점호는 인원의 이상 유무와 총기 및 장구류에 대한 손질, 생활관 청소상태와 정리정돈을 점검하기 위해 실시합니다.
결국 점호의 본래 목적은 언제든 전투에 임할 수 있는 준비가 돼 있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점호하면 저에게도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중위로 조종사 훈련을 받던 시절, 선배 기수가 점호를 주관했습니다. 하도 심하게 괴롭힘(?)을 당해서 ‘이번만은 지적을 받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만반의 준비를 했습니다. 심지어는 사물함 틈새의 낀 먼지까지도 면봉으로 깨끗하게 닦았습니다.
저는 내심 ‘오늘 만큼은 지적을 받지 않겠지’하고 의기양양 했습니다. 그러나 꼬투리를 잡으려는 선배의 심술은 피해갈 수는 없었습니다. “귀관! 구두약 뚜껑의 그림을 똑바로 정렬시켜야지. 그래서 비행기를 똑바로 조종할 수 있겠나!”라는 말도 안 되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그리곤 땀이 흠뻑 젖을 정도로 심한 얼차려를 받았습니다.
아마도 저의 정리 집착증은 이때의 트라우마 때문에 생긴 게 아닌가 합니다.
현관에 들어섰을 때 신발이 똑바로 정리돼 있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합니다. 사용한 물건을 꼭 제자리에 돌려놓지 않으면 신경이 쓰입니다. 거실의 화분이 삐뚤게 놓여 있으면 기어코 똑바로 놓아야만 마음이 편합니다. 일종의 ‘정리병’이 아닐까요.
그러나 정리에 대한 트라우마는 ‘좋은 트라우마’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청소력연구소 대표인 마쓰다 미쓰히로는 「청소력」에서 “더러운 것이나 더러운 상태를 방치해 두면 마이너스 자장이 생겨 나쁜 사태를 끌어 들이고, 더러움을 제거하고 깨끗하게 정리정돈하면 플러스 자장이 생겨 긍정적인 힘이 발생한다”고 말했습니다. 주변이 깨끗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 바로 이 플러스 자장이 생겨나기 때문일 것입니다.
군에서 체득한 정리정돈은 전역 후에도 알게 모르게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제대한 병사의 어떤 어머니는 “다 소용없어요. 딱 한 달만 지나면 옛날로 돌아갑디다”라고 부정적으로 말했지만, 저는 이렇게 얘기하고 싶습니다. “그거 다 사람 나름입니다”라고. 21개월 군 생활동안 알게 모르게 몸에 습관화 된 군인의 정리DNA는 우리들 몸속에 피와 살이 돼 일상생활에서 플러스 자장으로 작용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