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토리오 ‘피의 절벽’ 작곡을 맡은 이상철 신부.
서울의 ‘절두산’ 성지는 ‘병인양요’ 라는 역사적 사건과 긴밀히 연결돼 있다. 본래 죄인들의 처형지가 아니었던 이곳은 병인년 프랑스 함대와의 전투가 발생하는 와중에 신앙과 국가 안에서 균형을 잡아 보려했던 순교자들이 목숨을 잃은 장소다. 당시 조정은 “천주교인들 때문에 우리의 강물이 서양의 배로 더렵혀졌고 그들의 피로 더러움을 씻어내야 한다”는 지침으로 프랑스 함대가 정박했던 양화진을 천주교인들의 피로 물들였다. 이러한 특별한 순교 이야기가 오라토리오 ‘피의 절벽’으로 재탄생, 10월 15일 오후 4시 절두산순교성지에서 ‘병인순교 150주년 기념 절두산 순교자 하느님의 종 13위 시복 기원 음악회’를 통해 초연된다.
곡을 작곡한 이상철 신부(가톨릭대학교 교회음악대학원 교수)는 “순교자들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남아있지 않아 대본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컸다”고 뒷얘기를 들려줬다.
절두산에서 순교한 이들은 ‘선참후계’ 즉 먼저 참수시키고 후에 보고하는 형식으로 죽음을 맞았다. 순교자들에 대한 기록이 충분치 않은 이유다. 처형지에 대해서도 학계에서 보는 내용과 구전이 달랐다. 그 가운데 절두산성지에 봉헌된 이인평(아우구스티노) 시인의 헌시는 큰 도움이 됐다. 조선 전기 문관이며 시인이었던 어세겸(1430~1500)의 시 ‘양화도’도 일부 발췌, 가사로 삼았다.
“장소나 규모에 대한 논의와는 별개로 절두산에는 외국 성직자들을 마음의 어버이로 따르며 한편 나라를 바로 잡아 진리를 전파하려 했던 순교자들의 얼이 서려 있습니다. 이런 이유에서 전쟁 장면 등을 포함시켜 가급적 역동적인 드라마로 만들어 보고자 했습니다.”
‘피의 절벽’은 지난 2014년 ‘아! 서소문’에 이어 이 신부가 작곡한 두 번째 순교자 오라토리오다. 절두산에서 순교한 이들 중 13명이 증거자로 공경 받고 있는데, 그 중 이의송(프란치스코) 증거자 후손들이 절두산성지를 통해 이 신부에게 작곡을 의뢰한 것이 계기가 됐다.
오라토리오는 ‘서곡’ ‘양화도’ ‘대결’ ‘순교’ ‘피의 절벽’ ‘혈암’ 등 총 6개 곡으로 구성되는데, 크게는 ‘전쟁과 대립’ ‘순교’ ‘넋을 기림’ 등 세 부분으로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이 신부는 신디사이저와 대금을 사용하고 에픽(epic) 뮤직을 도입해서 ‘뮤지컬’적이고 영화음악적인 요소를 살렸다고 했다. 처연함보다는 박진감이 넘치며 서사적이면서 장쾌한 분위기가 느껴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특별히 4악장 ‘순교’ 부분에서는 절두산에서 순교한 이들의 어록과 행적을 악장가사로 했다. 마지막은 이의송(프란치스코)의 말을 배치, 오늘날 신앙 후손들에게 전하는 당부의 말로 삼았다.
“‘오랫동안 천주교를 힘써 공부했기 때문에 배교할 수 없다. 당부컨대 정신을 수습하여 실수하지 말라’는 말은 부인 아들에게 전하는 것이었지만, 우리 신앙인 모두가 깊이 새겨들어야 할 말씀 같아 마음에 많이 와닿았습니다.”
‘피의 절벽’ 초연은 지휘자 정승희가 이끄는 가톨릭 솔로이스츠와 기악 앙상블이 함께한다.
전석 초대. ※문의 02-3142-4434, 02-393-22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