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세계사형폐지의 날 기념식·특별 토론회
“사형제 폐지로 인권 선진국 도약 발판 마련하자”
12월 10일 특별법안 발의하기로
생명의 문화 건설 노력에 가속도
반인권·비복음적 사형제도 폐지
대안으로 ‘절대적 종신형제’ 제안
제14회 세계사형폐지의 날을 맞아 10월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사형제도의 완전한 폐지와 그 이후’ 주제 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반인권적이고 비복음적인 사형제도를 폐지시킴으로써 생명 문화를 일궈나가기 위한 한국교회 발걸음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세계사형폐지의 날(World Day against the Death Penalty)을 맞아 10월 10일 국회에서 열린 기념식과 특별 토론회에는 한국교회가 주창하는 사형제도 폐지에 뜻을 함께하는 국회의원, 학자, 법조인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앞으로 제20대 국회에 발의될 사형폐지 특별법안이 통과돼 제도상으로나 실질적으로 사형제도가 이 땅에서 사라져야만 우리나라가 인권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0월 10일 오전 10시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제14회 세계사형폐지의 날 기념식이 열렸다. 유흥식 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이기수 신부(가톨릭신문사 사장), 추미애 의원(더불어민주당 당대표),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상민(피델리스) 더불어민주당 의원, 하태훈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참여연대 공동대표)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유흥식 주교는 인사말을 통해 “죽음의 문화를 살림과 치유, 그리고 생명의 문화로 바꾸는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며 “사형제 폐지를 위한 공동발의, 법안 통과와 집행을 통해 이러한 전환이 이뤄지기를 간절하게 희망한다”고 밝혔다. 이어 “가톨릭 교회는 자비의 특별희년을 선포하고 반성과 평화, 용서의 실천을 촉구하고 있다”며 “교회가 주장하는 용서의 출발점은 죄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부겸 의원은 “사형제 폐지에 관한 논의는 진전되는 듯 하다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잔인한 범죄가 발생하면 다시 멈춰서는 일이 계속돼 왔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이어 오는 12월 10일 세계인권 선언의 날을 맞아 ‘사형폐지에 관한 특별법안’을 대표발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사회적 약자 등에 대한 범죄는 처벌을 강화하고 범죄 피해자에 대해서는 보호와 지원을 확대하는 정책도 추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추미애 의원은 “우리나라도 세계적 흐름에 맞춰 인권 선진국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인권과 민생이 꽃피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나경원(아셀라) 새누리당 의원도 축사를 통해 “사형제도는 헌법이 명시하는 인간 기본권 중에서도 가장 우선인 생명권을 박탈하는 제도”라고 말했다.
기념식에 이어 ‘사형제도의 완전한 폐지와 그 이후’를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는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와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동으로 개최했다.
이날 열린 토론회는 제14회 세계사형폐지의 날을 기념하고 20대 국회에서 사형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각계 의견을 한데 모으는 자리였다. 김형태 변호사(사형폐지범종교인연합 집행위원장) 사회로 열린 토론회에는 학계, 법조인, 국제기구 관계자들이 사형제도 폐지 당위성을 설명하고 열띤 토론에 나섰다.
기조발제에 나선 한인섭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서울대학교 인권센터장)는 사형 폐지가 세계적인 추세이며 종신형과 무기형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 교수는 “사형을 폐지한다고 흉악범을 풀어주자는 것이 아니며 폐쇄교도소는 흉악범 재범 방지를 위한 안전장치로 충분한 기능을 발휘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흉악범죄에 대한 예방효과를 사형이라는 수단을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정의로운 처벌은 피해자(가족)의 치유 과정으로서 필수적이지만 그 정의가 반드시 사형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토론에 나선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유럽연합 회원국과 유럽평의회 회원국은 모두 사형 폐지국가”라며 “유럽에서 사형폐지는 상호승인과 상호협력을 위한 최소한의 전제가 되고 있다”고 밝혔다. 홍 교수는 “2011년 범죄인 인도에 관한 유럽협약이 우리 국회에서 비준동의됐으며, 결국 한국에서 사형집행은 사실상 어렵게 됐다는 것을 국회도 간접적으로 승인한 결과”라고 강조했다.
사형제도를 폐지하면 그 대안인 ‘절대적 종신형 제도’를 통해 국민의 법감정을 설득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유정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는 “무기징역과 달리 가석방이 인정되지 않는 ‘절대적 종신형’ 제도가 도입되면 사형제도를 폐지하더라도 흉악 범죄자를 격리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절대적 종신형 형벌 자체가 응보적인 성격을 갖고 있어 피해자들이 겪는 고통에 상응하는 엄중한 처벌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김희진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 사무처장은 세계 사형폐지와 사형집행 현황을 설명했다. 김 사무처장은 “지난해 세계적으로는 사형집행 건수가 급격히 증가해 25년만에 가장 많은 사형수가 처형됐다”고 밝혔다. 김 사무처장은 “하지만 사형존치국 수는 적으며 점차 고립된 소수집단이 되고 있다”며 “지난해에도 4개국이 야만적인 처벌을 법적으로 완전히 폐지하는 데 합류했다”고 설명했다. 법적 사형폐지국은 102개국으로 사상 처음으로 세계 과반을 차지하게 됐으며 현재 한국을 포함한 세계 140개국은 법적 또는 실질적 사형폐지국이다.
10월 10일 열린 제14회 세계사형폐지의 날 기념식에서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유흥식 주교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어진 종합토론에서는 사형제도에 대해 경제논리를 바탕으로 접근하는 현실에 대한 비판이 이뤄져 눈길을 끌었다.
사형수를 관리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이 결국 국민의 세금으로 이뤄지는데 이마저 아깝지 않느냐는 논리에 한인섭 교수는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사형수 1명에게 연간 들이는 돈이 약 160만 원 정도 추산된다”고 밝히고 “인간 생명을 비용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은 문명국가에게 할 수 있는 발상이 아니다”고 비판했다. 허일태 교수(동아대 법학과)는 “경제적 논리로만 보자면 오심으로 인해 국가가 사형 피해자나 유가족에게 배상해야 하는 금액이 훨씬 크다”고 지적하고 “경제적 관점에서 사형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을 넘어설 때 인권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형태 변호사는 “한국이 사형을 폐지하면 대만과 일본, 베트남, 태국, 중국 등 한국 동향을 예의 주시하고 있는 주변국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사형 폐지는 우리나라가 아시아에서 인권국가로서의 위상을 일신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종합했다.
방준식 기자 bjs@catimes.kr / 사진 서상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