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9주년-교구 순교영성을 돌아보다]
외적 성장 걸맞는 ‘내적 성화’… 신앙 선조 통해 답 찾아야
병인박해 150주년, 순교영성 재조명 필요
교구 곳곳에 선조들 삶의 터전·순교터 있기에 삶과 영성 연구하고 본받자는 활동 이어져
시복시성추진위·수원교회사연구소 등 앞장
“순교영성 핵심은 주님 가르침 실천하는 것”
한국교회의 초석을 세운 신앙선조들이 살아간 터전이자, 순교자들이 목숨을 바친 땅에서 신앙을 이어가는 교구민들에게 ‘순교영성’은 더욱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에 교구는 끊임없이 순교영성을 강조하며 신자들을 순교영성의 길로 초대하고 있다. 하지만, 막상 신앙의 자유가 보장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순교영성은 어쩐지 우리 삶과는 동떨어진, 먼 세상의 이야기로 들리기도 한다.
순교영성, 오늘을 살아가는 교구민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병인순교 150주년을 지내는 이때, ‘가톨릭신문 수원교구’는 창간 9주년을 맞아 교구의 순교영성을 조명해본다.
현대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신자들은 새로운 박해에 직면하고 있다. 물질만능주의, 사회의 양극화 현상, 종교와 문화의 다원화와 상대주의, 생명경시풍조 등 한국사회의 전반적 상황 속에 신자들조차 신앙을 삶의 본질이 아닌 부차적인 것으로 여기기에 이르렀다. 이런 경향은 영세자 감소와 냉담자 증가, 주일미사 참례율의 저조, 사제·수도 성소자 감소 등의 구체적인 문제로 드러나고 있다.
또 교구는 급격한 교세 증가를 통해 외형적으로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교구로 성장했다. 반면 내적 성장이 동반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 바로 순교영성이다.
교구장 이용훈 주교는 교구설정 50주년을 맞는 2013년 사목교서 「교회와 신앙-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영적 쇄신을」을 통해 “그동안 우리 교구가 교회 활동의 외적인 부분에 관심과 노력을 쏟았다면, 이제는 교회 신앙선조들의 열정적인 신앙심을 본받아 신앙의 본질에 충실해야 할 때”라고 역설한 바 있다.
순교영성은 단순히 순교자들의 죽음만을 기리는 행위가 아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죽음이라는) 벌이 순교자가 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순교의 이유가 그를 순교자가 되게 한다”고 가르쳤다. 순교영성은 한국순교자들의 순교 이유, 즉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진리로 확신하고 그를 실천하는 삶이 그 주된 내용인 것이다.
수원교회사연구소장 정종득 신부는 “매 순간 자신이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자각하고 그 가르침을 실천하는 증거의 삶이 순교영성의 핵심”이라면서 “목숨을 바쳐서 신앙을 증거하는 시대가 아닌 현대에도 반드시 필요한 영성”이라고 말했다.
특별히 초기 한국교회의 못자리로서 수많은 순교자를 배출한 우리 교구는 ‘순교영성’을 교구 정체성의 골자이자 현재와 미래 사목방향의 길잡이로 삼고 있다.
교구장 이용훈 주교는 ‘3대 중점 사목 방향’에서 “내적으로는 투철한 순교성인의 삶을 본받고, 외적으로는 순교의 모습으로 이 시대에 복음적 삶을 증거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라고 ‘내적 복음화’의 목표를 명시했다.
「교구 미래 복음화를 위한 50주년 교서」에서도 ‘순교자의 모범’을 들어 교구 비전의 의미를 해석했다. 교서를 통해 “교회의 쇄신을 생각하면서 교구의 빛나는 유산인 순교자들의 삶을 재조명할 필요가 있음”을 상기시키고 “(순교자들이)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 믿어야 하는지를 보여줬다”고 강조했다. 교구 100년을 향한 비전인 ‘쇄신’의 바탕에 순교영성을 둠으로써, 순교영성 함양이 교구 미래의 사목방향과 목표에 핵심적 내용임을 밝힌 것이다.
교구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신자들이 겪는 신앙의 위기를 해결하는 데 더욱 힘이 될 수 있도록, 천진암강학을 중심으로 한 초기 신앙선조들의 순교영성 계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전문가들 또한 박해 후기로 갈수록 순교자들의 신앙이 내세를 강조하는 종말론적 신앙이 강한 반면, 초기 신앙선조들은 일상의 삶에서 신앙을 실천하는 육화론적 영성이 강해 현대사회의 정서 속에 순교영성을 뿌리내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이와 관련해 대표적인 노력이 교구 시복시성추진위원회가 마련하는 순교영성강학이다. 강학은 순교자의 죽음이 아닌 구체적인 삶과 영성을 다루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교회사적인 내용 외에도 천주실의, 칠극, 주교요지, 상재상서 등 순교자들이 신앙을 받아들이고 수련했던 서적들을 오늘날에 맞게 적용해 묵상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돕는 강좌도 개설한다.
또한 수원교회사연구소를 중심으로 흩어져있는 순교자들에 관한 원자료를 발굴해 자료집을 발간하는 작업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기존에 발굴한 자료들은 ‘죽은 사실’을 밝히는데 도움이 됐다면, 최근 교구가 발굴하고 있는 자료들은 순교자들의 삶과 신앙을 구체적으로 뒷받침하는 내용으로 교구 순교영성 계발의 근간이 된다.
무엇보다 이러한 노력들이 교구 차원에만 머물지 않고, 각 본당과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보다 폭넓게 확산되고 구체적인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교구 시복시성추진위원회 총무 김동원 신부는 “현대에는 신자들을 유혹하는 박해요소가 더 많아 이를 이겨내는 순교영성의 힘이 필요하다”면서 “본당들이 미사 전 시간을 활용해 한국순교성인과 복자들의 호칭기도를 독려하고 신자들이 성인·복자들과 관련된 신앙서적을 읽으며 순교영성을 체득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교구 시복시성추진위원회가 병인박해 150주년을 맞아 진행한 순교영성강학에서 신자들이 강의를 듣고 있다.
구성본당 신자들이 9월 순교자성월 미사 참례 후 103위의 신앙행적을 담은 한국성인호칭기도를 봉헌하고 있다.
성 김대건 신부 순교 170주년을 기념해 9월 24일 미리내성지에서 거행된 순교자현양대회.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