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발을 디딜 때에는 글을 쓰기로 한 것을 많이 후회했다. 어떤 글을 쓸 수 있을까? 도움이 될까? 어느덧 벌써 마지막 회다. 자유롭게 써도 된다는 신문사의 요청과, 이 글을 읽을 신부님들이 많지 않을 거라 생각하면서 나름대로 마음의 부담을 줄여 보았지만, 그래도 한 회 한 회 쓸 때마다 고민 속에서 글을 이어갔다. 잘 읽으셨다고 말씀해 주시는 주교님과 선배 신부님의 격려, 지인들의 말에 힘을 얻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관심을 갖고 격려해주신 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깊이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자 한다.
“고맙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선포하신 ‘자비의 해’가 시작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폐막일이 다가온다.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 자비를 드러내셨고, 성령을 통해 교회가 자비로운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라시는데 과연 교회는 그 바람대로 살고 있는 것일까?
교회가 이혼하고 재혼한 신자들의 성사 생활에 제약을 두고 있기에, 우리는 함께 안타까워하며 이들이 고해성사를 보고 성체를 영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교회는 지켜야 할 원칙은 지켜야한다. 혼인의 문제에서는 ‘혼인의 불가해소성’이 그 한계다. 한 번 제대로 혼인을 잘 했으면 원칙적으로 그 혼인은 인간의 힘으로는 풀 수 없다. 사실 교회는 이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 역사 속에서 무던히 노력했고, 때로는 한 나라를 포기해야만 했다. 그 결과 영국 성공회가 나오게 된 것이다. 이런 아픔을 감수하면서도 교회는 하느님께서 알려주신 원칙을 지키고자 노력했고, 그러면서도 예외적인 상황에서는 이들이 성사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길을 찾았지만, 그 길은 가시와 돌멩이가 많은 아픔의 길이었다. 이들은 때로는 교회로부터 배척을 받았다는 느낌 속에서 더 큰 고통을 견뎌내야만 했다.
이런 상황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2014년부터 혼인 무효 소송 개혁을 위한 특별 위원회를 설립하셨다. “복음화의 맥락에서 바라본 가정에 대한 사목적 도전들”을 주제로 열린 제3차 세계 주교대의원회의(주교시노드) 임시총회를 통해서 제안된 여러 요청에 따라서 2015년 8월에 자의 교서 ‘온유한 재판관이신 주 예수님’(Mitis Iudex Dominus Iesus)을 통해 혼인 무효 소송을 빨리 할 수 있도록 개혁하셨다. 제14차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정기총회의 제안에 대한 응답으로, 2016년 3월에는 세계주교대의원회의에 관한 교황의 답서인 사도적 권고 「사랑의 기쁨」(Amoris Laetitia)을 발표하셨다. 이혼 후 재혼자들의 영성체에 대해서 명확하게 말씀하시지는 않지만, 지역 교회가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으신 것으로 보이는데 이 부분은 앞으로 한국교회가 더 깊이 연구해야 할 것이다.
이 일련의 사건들을 읽을 수 있는 중심 단어는 바로 ‘자비’이다. 하느님으로부터 자비를 배우고, 우리 교회가 그 자비를 실천하라는 것이다. 우리 한국 교회는 자비로운가?
신자들의 냉담 원인 중에 하나가 사제나 수도자 때문이라고 한다. 자비롭지 못한 나의 모습을 느끼고 놀라며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닐지라도 내가 조금만 더 참고, 예수님의 자비로운 모습을 조금만 더 닮으면 좋을 텐데….
정상적이지 못하고 비정상적으로 움직이는 부분이 많은 우리 사회에 비정상의 정상화가 필요하다. 또한 우리 교회에도 ‘비정상의 정상화’가 필요한 부분이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상식적이고 정상적인 것이 정상으로 느껴지는 교회와 사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그동안 부족한 글을 읽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축복이 자비로운 교회의 모습으로 드러나기를 기도하며 마침표를 찍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