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성지에서 여러 가지 업무로 인해 무척 바쁘게 지낼 때 일입니다. 그날 따라 하루 종일 정신없이 지냈는데, 설상가상으로 성지에서 봉사해주시는 분의 어머님의 선종 소식까지 들었습니다. 그래서 짬을 내어 어머니를 잃은 슬픔에 힘들어하는 봉사자 분께 위로의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그분은 오히려 바쁜 나를 먼저 걱정해주시며, 장례식장이 멀다고 성지에서 기도해주신다면 너무 기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자매님께서 지금까지 봉사해주신 그 수고로움이 얼마나 큰 데, 당연히 제가 가야죠!”라고 당당하게 말은 했지만, 그 다음 날 일정을 조율하느라 진땀을 뺐습니다. 그렇게 그날을 마무리를 하다 보니, 밤이 되었습니다. 몸도 지치고 힘들어 방 안에서 넋을 놓고 있는데, 갑자기 지방에서 소임을 맡고 있는 후배 신부님이 서울에 왔다가 잠깐 들렀다면서 내 방을 찾아왔습니다. 우리는 잠시 수다를 떠는 데, 그 신부님이 내게 말했습니다.
“강 신부님, 내일은 강 신부님만을 위한 해가 뜰 거예요. 힘내세요.”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그래,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뜨기는 하는데, 내일 그 해가 뜨자마자 부지런히 지방에 내려가서 장례 미사를 해야 하거든. 요즘 왜 이리 시간 없이 바쁘게 지내는지!”
“그래요? 거기가 어딘데요?”
“응, 장호원 쪽에 있는 장례식장인데 서울에서 좀 멀어.”
“거기 알아요. 그곳은 내가 있는 숙소에서 약 15분 정도 떨어진 곳인데. 내일 장례식장에서 같이 미사를 봉헌 할까요? ”
“정말? 아, 좋다. 힘이 되네.”
그렇게 우리는 다음 날 장례식장에서 만나기로 했고, 그 신부님은 터미널로 가서 막차를 타고 내려갔습니다. 그날 밤, 나는 돌아가신 그분의 어머니에 대해서 어떤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아서, 평범한 장례 미사 강론을 쓴 다음, 잠을 청했습니다.
다음 날 봉사자분들과 장례식장에 가면서 빈소의 분위기를 전해들을 수 있었습니다. 유가족의 아버님은 살아계신데 천주교식 장례를 원하지 않고, 아들들 역시 신자가 아니라서 장례식장 분위기는 우리를 반기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을 해주었습니다. 차는 장례식장에 도착했고, 후배 신부님은 이미 와 있었습니다. 우리는 조문을 한 후, 미사 준비를 하고 유가족들과 신자들이 모여 앉아서 기도하고, 연미사를 봉헌했습니다. 그렇게 미사를 봉헌하는 중에, 강론 때가 되자 나도 모르게, “오늘의 강론은 후배 신부님이 해주시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순간 후배 신부님 얼굴이 붉어졌지만, 이내 다시 호흡을 한 후, 차분하게 강론을 해주었습니다. 후배 신부님은 인간의 마음을 다 아시는 성모님, 인간의 모든 좌절과 절망을 당신 치마폭으로 감싸 안으시는 성모님의 마음에 대해서 감동 어린 강론을 했습니다. 그런데 유가족 분들 한 분, 한 분씩 손수건으로 눈시울을 적시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미리 준비해 간 내 강론을 책상 아래에 내려놓았습니다. 서서히 펼쳐지는 놀라운 기적을 보면서 말입니다.(다음 호에 계속)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