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아파트 거실 양지쪽에는 천장에 닿을 만큼 잘 자란 관음죽이 한 그루 있습니다. 신혼 초 작고 초라했던 것이 27년이 지난 지금 우리 집을 대표하는 명품 화초가 됐습니다. 아내는 우리 부부와 27년간 희로애락을 함께해 온 이 관음죽을 특별히 사랑합니다. 햇볕을 잘 받도록 양지쪽으로 돌려주고 주기적으로 물과 거름을 주며, 잎의 먼지를 닦아주는 등 정성을 다합니다. 이에 관음죽은 집의 분위기를 아늑하게 해주고 산소를 뿜어 주는 것으로 화답합니다.
명품 화초로 자란 관음죽을 보면서 문득 저의 영적 성장을 되돌아보았습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성당에 다닌 10여 년은 한마디로 말하면 무지한 세월이었습니다. 교리도 일천할 뿐더러 고해성사가 무섭고(?) 아내의 눈치 때문에 주일미사에 가곤 했습니다. 영혼 없는 무덤덤한 신앙생활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이처럼 평범했던 저의 삶에 큰 시련이 닥쳤습니다. 아내는 몸이 아팠고 진급은 코앞에 닥쳤으며, 아들 또한 고3 수험생으로 대학입시를 앞두고 있었습니다. 진급 대상자에 해당되는 대부분의 장교들이 그렇듯 해야 할 일은 끊임없이 몰려왔습니다.
서울에 살던 아내는 아들 대입 대비와 치료 때문에 한 달에 한 번 정도 제가 근무하는 지방으로 왔습니다.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하루하루가 지옥과 같은 나날이었습니다.
어느 날 잠이 부족한 상태에서 몽롱한 정신으로 출근하고 있을 때, 성당의 십자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는 출근길을 멈추고 무작정 성당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성당 바닥에 무릎을 꿇고 “하느님! 마음의 평화를 주세요!”라고 간절하게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렇게 잠시 앉아 있었는데 무거웠던 머리가 체증 내려가듯 맑아지면서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그 이후 출퇴근길에 성당에 들러 성체조배를 드리는 습관을 들였습니다. 시련이 저의 신앙생활을 한 단계 성장시킨 계기가 됐습니다. 그해 저는 진급을 했고, 아들은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는 등 하느님의 넘치는 은총을 받았습니다.
식물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햇볕, 물, 거름과 사람의 정성이 필수적입니다. 식물 성장에 필수적인 요소가 있듯이 우리의 영적 성장에도 필수적인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도와 하느님 말씀 읽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시련 속에서 무늬만 신자라는 것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신자로서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열심히 성경말씀과 신심서적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일의 시작과 끝을 기도로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욥기에 나오는 “자네의 시작은 보잘 것 없었지만 자네의 앞날은 크게 번창할 것이네”(욥기 8,7)라는 말씀을 참으로 좋아합니다. 저의 신앙생활은 마흔이 돼서야 시작했지만, 성장을 위해 물과 거름을 주는 노력을 지속한다면 더욱 성장하리라 믿습니다. 성장은 시간이 지난다고 저절로 이뤄지지는 않겠지요. 우리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한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