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교구·수도회 시국미사 봉헌 잇따라
“신앙인은 예언자”… 더 나은 사회 위해 촛불 밝힌다
광주·제주·전주·대전·마산·수원 등 국정농단 관련자들 엄정 처벌 촉구
대전교구 사제·평신도 1200여 명 시내 중심부서 촛불 행진 참여
11월 11일 대전 대흥동주교좌성당에서 봉헌된 대전교구 시국미사 뒤 거리 행진을 하는 사제단과 신자들. 대전교구 홍보국 제공
‘최순실 게이트’라는 초유의 사태를 야기하며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국정을 농단한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는 한국교회의 외침이 들불처럼 번져가고 있다. 민주주의 회복을 염원하는 교회의 목소리에는 전국 교구와 수도회는 물론 신학생들까지 동참할 만큼 교회 구성원 대부분이 한마음을 이뤘다.
광주대교구와 제주교구는 11월 7일 각각 시국미사를 봉헌해 남쪽에서부터 박 대통령 하야 요구 열기로 한반도를 뜨겁게 달궜다.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는 11월 7일 오후 7시30분 광주 남동성당에서 ‘박근혜 정권 퇴진 요구’ 시국미사를 교구 총대리 옥현진 주교 주례로 봉헌했다. 옥 주교는 강론에서 “우리는 모두 참담한 심정으로 미사를 거행하고 있다”며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위태로운 현 상황을 걱정하고 나라를 위해 함께 기도하자”고 말했다. 미사가 끝난 뒤 신자 1000여 명은 남동성당에서 5·18민주광장까지 촛불을 들고 행진하며 박 대통령 하야를 외쳐 시민들의 호응을 얻었다. 제주교구 정의평화위원회도 같은 날 제주 광양성당에서 백남기 농민을 추모하는 자리를 겸한 시국미사를 봉헌하면서 국정을 파탄시킨 박근혜 정권을 비판했다.
같은 광주관구의 전주교구는 11월 9일 교구장 이병호 주교 주례로 전주 중앙주교좌성당에서 신자 1800여 명이 참례한 가운데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시국미사’를 봉헌했다. 이 주교는 미사 강론에서 ‘대구 시국 발언’으로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대구 송현여자고등학교 조성해양의 발언 전문을 낭독한 뒤 “공부만 해도 좋을 어린 학생들의 말만큼 감동을 주면서도 마음 아프고 기성세대를 부끄럽게 하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학생을 비롯해 우리 사회 각계 각층의 시국선언은 박근혜 대통령이 당장 국정에서 손을 떼라고 요구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라며 간접적으로 박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했다. 이 주교는 계속해 “이번 사태를 계기로 참다운 인간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이 우리를 진정으로 떳떳하고 당당하게 살게 하는지 자문하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면 비싼 대가를 치르기는 하지만 서로에게 감사하고 존경하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도 드러냈다.
11월 11일에는 대전교구와 마산교구가 시국미사 대열에 합류했다.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는 11월 11일 오후 7시30분 대전 대흥동주교좌성당에서 ‘헌정질서와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시국미사’를 봉헌했다. 교구 총대리 김종수 주교 주례로 봉헌된 시국미사 중 김용태 신부(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가 시국 선언문을 낭독했다.
대전교구는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리라’(요한 2,19)는 제목의 시국선언문에서 ▲대통령은 자신이 행한 모든 일을 국민 앞에 정직하게 고백하고 엄중히 책임지는 모습을 보일 것 ▲검찰은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민주주의를 유린한 모든 관련자에 대해 성역 없는 수사를 할 것 ▲검찰은 현 사태와 관련해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협력한 재벌 기업도 엄정한 수사를 할 것 ▲현 사태와 무관치 않은 세월호 참사와 백남기 형제 죽음의 진상 규명을 위한 특검을 실시할 것을 요구했다.
시국미사 뒤에는 대전교구 사제와 수녀, 평신도 등 1200여 명이 비선실세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규탄하고,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촛불 행진을 했다. 대흥동성당에서 목척교를 거쳐 우리들공원까지 대전시내 중심부 700여 미터를 행진하며 촛불 행진 참가자들은 ‘박근혜 퇴진, 새누리당 해체’ 등의 구호를 외쳤다.
11월 11일 오후 7시30분 창원 사파공동성당에서 마산교구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시국미사’를 주례한 교구장 배기현 주교는 미사 인사말에서 “국민의 처참한 마음을 하느님께서 들어주시길 간절히 기도하면서 마음 깊은 곳에 진리를 원하고 정의가 이 땅에서 실현되기를 기도하자”고 말했다. 이어 미사 강론을 맡은 박철현 신부(마산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신앙인은 예언자”라면서 “촛불을 든 손과 손을 이어 앞에서 다가오는 어둠을 헤쳐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원교구는 11월 9일 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이름으로 시국성명서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마태 16,23)를 발표하고 11월 14일 오후 7시에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서울대교구, 의정부교구 등 수도권 교구 사제단, 남녀수도회 수도자들과 ‘불의를 저지르는 자는 모두 주 너희 하느님께서 역겨워하신다’(신명기 25,16)를 주제로 시국미사를 봉헌했다. 수원교구는 시국성명서에서 ▲헌정유린, 국정농단 박근혜 대통령은 당장 물러나야 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철저한 진상규명과 부역세력을 청산해야 한다 ▲야당은 국민들과 함께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위해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11월 14일에는 춘천교구와 인천교구가 시국미사에 동참했다. 춘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는 ‘민주주의 회복과 박근혜 정권 국정농단 사건 진실규명 및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시국미사’를 11월 14일 오후 7시 춘천 죽림동주교좌성당에서 열었다. 미사 강론에서 최창덕 신부(춘천교구 사회사목국 정의평화위원회 담당)는 “국민들이 피땀 흘려 지켜온 민주주의 질서를 회복해 지금의 혼란을 극복하고, 이 땅에 하느님의 정의와 평화가 실현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심정으로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시국미사를 봉헌했다”는 뜻을 전했다. 미사 후에는 죽림동성당에서 강원도청 앞 광장까지 거리행진을 진행했다.
인천교구도 같은 날 오후 7시 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주관으로 인천 답동주교좌성당에서 시국미사를 봉헌하고 ‘민주주의 회복과 박근혜 정권 퇴진을 위한 인천교구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인천교구는 시국선언문에서 ▲헌법질서를 파괴하고 국기문란을 저지른 박근혜 대통령은 퇴진해야 한다 ▲대통령과 관련자 전원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처벌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가톨릭대학교도 대신학교 수석 자치회 주관으로 11월 13일부터 21일까지 ‘우리나라의 정의와 평화를 위한 9일기도’를 진행하며 현 시국을 향한 교회의 목소리에 힘을 보탰다.
박근혜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100만여 시민들은 11월 12일 서울광장과 광화문광장 일대 등 서울 중심부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대회에 함께해 ‘최순실 게이트’로 불리는 국정농단에 분노를 표출하며 교회 안팎의 목소리가 다를 수 없음을 보여줬다.
서울뿐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버스와 기차 편 등으로 상경한 시민들은 이날 오후 2시부터 각 단체별로 사전집회를 가진 뒤 오후 4시 민중대회 본 집회를 열었다. 참가 시민들은 국정파탄의 책임을 지고 박근혜 대통령이 하야할 것을 요구했으며 사드 배치 반대, 위안부 합의 전면 무효화, 세월호 선체 인양과 진실 규명, 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등을 외쳤다. 오후 5시10분 경 민중대회를 마친 시민들은 청와대 인근까지 촛불행진을 이어가며 대통령 하야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 수원, 의정부교구 사제단과 남녀수도자들이 11월 14일 오후 7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촛불 행진을 하고 있다. 사진 서상덕 기자
‘박근혜 퇴진 5대종단 운동본부’ 소속 성직자들이 11월 12일 광화문 일대를 행진하고 있다. 사진 서상덕 기자
11월 7일 광주 남동성당에서 열린 시국미사에서 사제단이 손팻말을 들고 입당하고 있다. 광주대교구 사무처 제공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