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인년 순교 150주년 기념의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의 담화 발표를 시작으로, 한국교회는 올 한 해 특별히 병인박해 순교자들의 삶과 신앙을 기억하며 지내왔다. 병인년 순교 150주년을 되돌아보며, 150주년이 갖는 의미와 순교자의 후손으로서 우리가 지속적으로 가져야할 마음가짐을 되짚어 본다.
1866년 2월 23일 시작한 병인박해는 당시 한국교회를 초토화시켰다. 7년 동안 이어졌던 대박해로 2만3000여 신자 중 1만여 명이 순교했다. 하지만 이들의 순교는 ‘복음의 비옥한 씨앗’으로 돌아와 오늘날 한국교회를 이루는 토대가 됐다.
한국교회는 병인년 순교 150주년을 맞이해 특별히 순교자들의 삶, 순교자들이 선택했던 죽음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시발점은 1월 25일 발표된 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의 담화문이었다. ‘병인순교 150주년을 맞이하며’라는 제목의 담화문을 통해 김 대주교는 “순교자들의 영웅적 신앙 고백과 애덕 실천을 우리 모두가 본받고 쇄신해 복음을 ‘지금 여기에서’ 전하자”고 당부했다. 이어 주교회의는 춘계 주교회의를 마치고 ‘병인순교 150주년 기념 사목교서’를 발표했다. 사목교서는 신앙 선조의 순교정신이 우리의 삶 안에서 열매 맺을 수 있도록 ▲사랑의 증거 ▲가난한 이들을 위한 애덕 실천 ▲자비로운 공동체 형성을 실천사항으로 제안했다.
■ 학술적 증언과 현양
각 교구에서도 학술대회와 순교자현양대회 등 다양한 행사로 병인년 순교 150주년을 기념했다. 특히 서울대교구는 올해를 ‘병인년 순교 150주년 기념의 해’로 선포하고, 지난 2월 23일 명동성당과 절두산순교성지, 새남터순교성지, 중림동약현성당에서 일제히 개막미사를 거행했다. 폐막미사는 11월 13일 같은 장소에서 거행됐다.
대전교구와 청주교구, 수원교구, 원주교구는 공동으로 갈매못순교성지에서 ‘갈매못 다섯 성인의 삶과 영성’을 주제로 이들의 구체적인 삶과 그 삶을 통해 드러낸 영성을 밝히는 학술대회를 열기도 했다.
병인년 순교 150주년 기념의 열기는 순교자성월에 그 절정을 이루었다. 서울대교구는 9월 25일 절두산순교성지와 중림동 약현성당, 새남터순교성지, 당고개순교성지에서 동시에 병인순교 150주년 기념의 해 순교자현양대회를 열었다. 또한 9월 27일에는 ‘병인사옥, 병인양요, 병인박해’를 주제로 병인년 순교의 의미를 재조명하는 학술 심포지엄을 마련했다.
대전교구는 9월 24일 다블뤼 성인의 사목 근거지였던 신리성지에서 ‘병인순교 150주년 순교자의 밤’ 미사를 봉헌했고, 10월 15일에는 갈매못순교성지에서 순교자현양대회를 열었다. 청주교구도 9월 24일 배티순교성지에서 교구 순교자현양대회를 거행했으며, 원주교구와 춘천교구는 9월 18일 ‘병인순교 150주년 기념 원주·춘천교구 출신 순교자 연구’를 주제로 공동 학술심포지엄을 열기도 했다.
인천교구에서는 9월 1일 인천 화수동성당에서 봉헌한 병인순교 150주년 개막미사를 시작으로, 9월 10일 ‘병인박해와 삼천년기 한국교회’를 주제로 한 학술연구발표회, 9월 20일 병인순교 150주년 기념 교구 순교자현양대회가 이어졌다. 수원교구는 교구 내 성지들을 중심으로 병인 순교 150주년 행사를 진행했다. 교구는 죽산성지(11일), 요당리성지(25일), 남한산성순교성지(30일)에서 순교자현양대회를 열었고, 병인박해 순교지이기도 한 남양성모성지는 10월 8일 성지 봉헌 25주년을 맞아 감사미사를 봉헌했다. 이밖에도 올 한 해 동안 음악회와 기념전시회, 기념 순교극 등 병인순교 150주년을 기념하는 다채로운 문화행사들이 이어졌다.
9월 25일 절두산순교성지에서 열린 서울대교구 병인순교 150주년 기념의 해 순교자현양대회.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 자비 실천했던 순교자 본받아야
올해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포한 ‘자비의 특별희년’이기도 했다. 순교자들은 하느님의 자비를 몸소 깨닫고 목숨으로 하느님의 자비를 선포했던 분들이다. 이런 면에서 한국교회가 자비의 희년에 병인년 순교 150주년을 기념하게 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하느님을 온전히 받아들였던 순교자들을 본받고 따르면서, 자비의 희년 의미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 원종현 신부는 “우리 순교자들은 하느님의 자비로 인간의 운명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알려주셨다”면서 “순교자들은 이 세상에서는 보잘것없는 작은 삶, 박해받는 삶이었지만, 하느님의 자비 안에서 행복한 삶을 사셨던 분들”이라고 강조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느님 자비의 얼굴’인 예수님에게서 하느님을 배우고, 그 분의 자비와 사랑, 용서를 실천하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 걸으면서 자신을 희생하고, 또 이웃을 사랑하고, 내 것을 나누며 자비를 실천하고, 나를 넘어서 이웃을 용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원 신부는 “병인년 순교 150주년을 통해 우리들은 죽기까지 예수님의 자비를 증거한 순교자들을 통해 우리의 신앙을 깨달을 수 있다”면서 “이들을 따라 자비와 사랑과 용서를 실천하는 참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자”고 당부했다.
■ 주교회의 시복시성특위 유흥식 주교
“순교신심의 구체적 실천, 가정 신앙교육에서부터 시작해볼까요”
“우리는 순교자들이 사셨던 확고한 믿음과 그들이 이웃에게 베풀었던 자비로운 사랑을 본받아야 합니다. 믿음과 삶이 일치하는 매일의 구체적인 생활을 통해, 세상의 빛과 소금과 누룩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지요.”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위원장 유흥식 주교는 자비의 희년과 병인년 순교 150주년을 마무리하며 신자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유 주교는 “우리는 순교자들을 우리의 삶과 믿음을 비추어보는 거울, 늘 본받아야하는 멘토, 모델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 주교는 올 한 해 펼쳐진 갖가지 행사 중에서 특별히 지난 10월 진행된 프랑스 주교회의 순례단 방문에 주목했다.
유 주교는 “프랑스 순례단의 한국교회 방문은 역사적 사건이었다”면서 “자신의 선조들이 한국에서 복음을 전파하다 목숨까지 바쳐 그리스도의 사랑을 증거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놀라는 순례단의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프랑스교회는 선교사를 파견해 한국교회를 돕는 입장이었는데, 이제는 우리가 프랑스교회의 형제교회로서 선교사를 보내고 있다”면서 “이는 한국교회의 성장을 드러내는 큰 상징”이라고 전했다. 프랑스 주교회의는 지난 10월 14~23일 66명의 순례단을 한국에 파견해 프랑스 선교사들의 발자취를 되돌아보고, 한국교회와의 우애를 확인했다.
특히 유 주교는 한국교회 신자들이 순교자들의 신심을 본받고 순교정신을 따르기 위해 실천해야 할 구체적인 방안에 관해서도 조언했다. 유 주교가 제시한 우선적인 실천방안은 가정 안에서의 신앙교육이다.
유 주교는 “순교자들은 할머니와 어머니에게 교리를 배웠고, 자식들에게 신앙을 전했다”면서 “오늘날 가정에서 신앙을 살고, 또 가르치는 일은 선조들로부터 배우고 계승해야 하는 매우 소중한 신앙의 유산”이라고 강조했다.
유 주교는 지난 주교회의 추계 정기총회에서 한국 순교자들의 시복시성을 관할하는 시복시성주교특위 위원장으로 선출됐다. 이와 관련해 유 주교는 “순교자들의 시복시성 운동이 우리 한국교회가 더 교회다워지는 은총의 기회가 되길 바란다”면서 “늘 하느님의 뜻에 열린 마음으로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아울러 유 주교는 “시복시성의 본래 의미는 신앙 쇄신과 영원한 생명의 증거”라면서 “신자들이 이러한 의미를 잘 이해하고 순교자 현양과 성지순례, 기도운동에 적극 참여해주길 간곡히 당부한다”고 전했다.
최용택 기자 johncho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