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매일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판아킴(진료소)에 오는 환자들, 식량을 필요로 하는 가난한 과부들, 아기가 태어났다고 알리는 교리교사, 학비가 필요하다는 학생, 누군가의 잘못을 고자질하는 사람, 심지어는 사제관 컴파운드 안에 있는 라임을 따먹기를 원하는 동네 꼬마 녀석들. 이런 방문객 중 특별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은 편지를 써옵니다.
편지는 항상 본당 신부에 대한 엄청난 존경의 표시로 시작됩니다. 편지를 읽다보면 군대에서 어머니께 한번쯤은 써보았을 내용과 구성의 편지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제가 아강그리알로 부임하면서 편지의 시작이 ‘미카엘 신부님께’로 바뀌었습니다. 제가 공소와 교리교사들을 맡게 되면서 모든 공소에 제 이름이 퍼져나간 것입니다.
미사 참례 중인 아강그리알 주민들.
저에게 맨 처음 편지를 들고 온 손님은 룸벡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제이콥이라는 학생이었습니다. 말로우 욜 이라는 아강그리알에서 가장 가까운 공소에 사는 학생이었습니다. 편지를 들고 와서 도움을 청하기에 만나서 사정을 들어보니, 아버지가 지난주에 돌아가셔서 이제 더 이상 학업을 이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무언가 일이 생기면 일단 저희들에게 옵니다. 본인들이나 친척들이 해결할 수 있는 것도 한 번 찔러보자는 마음으로 오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름의 원칙을 정해서 이들을 지원하고 도와주고 있습니다. 아강그리알에 있는 콤보니 초등학교 학생을 주로 지원하면서, 거기서 품행이 단정하고 성적이 좋은 아이들을 고등학교 학업까지 지원하곤 합니다. 하지만 저를 찾아온 이 아이에 대해서는 어떠한 정보도 알지 못했습니다. 사실 고백하자면 속아서 이용당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결국에는 도와줄 수 없다고 돌려보냈습니다.
그런데 학생을 돌려보내고 나서 마음이 계속 무거웠습니다. 이런 아이들을 돕기 위해 온 것인데, 시작부터 ‘NO’라고 말하는 자신이 밉기까지 했습니다. 이틀을 고민하다가 마음을 정했습니다. 그래 선교사의 삶을 ‘NO’로 시작할 수는 없다. 순전히 제 자신을 위한 결정이었습니다. ‘YES’로 시작하고, 가능하면 ‘YES’의 삶을 살자. 때론 가끔 속아주기도 하라는 어른 신부님의 말씀도 기억이 났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찍 말로우 욜 공소를 찾아가서 교리교사를 만났습니다. 교리교사를 통해 제이콥에 대한 자세한 상황을 알아보고, 그 학생에게 다시 사제관으로 찾아오라는 말을 전하게 하고 돌아왔습니다.
다음 날 오후, 제이콥이 찾아왔습니다. 이번 학기를 마치면 일을 구해 가족을 돌보겠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린 동생이 있는 상황에서 학업을 유지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Yes’라고 말하고 한 번 속아주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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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권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