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전쟁에도 나갈 필요가 없이 예루살렘에서 편안히 지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나탄이라는 예언자가 찾아옵니다. 그리고는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양과 소를 많이 가진 부자가 있었는데, 손님이 찾아오자 자신 것이 아닌 이웃 가난한 사람의 암양을 빼앗아 대접했다는 것입니다. 암양은 그 가난한 사람에게는 생명과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이에 다윗은 분개합니다. 그런 사람은 반드시 죽임을 당해야 한다고 펄펄 뜁니다. 나탄은 말합니다.
“임금님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2사무 12,7)
다윗 왕은 지금까지 베풀어주신 하느님의 사랑을 배신하고 자신을 위해 싸우는 장수의 아내인 밧세바와 정을 통했을 뿐 아니라 그녀의 남편인 우리야를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을 온전히 믿어온 사람이고, 주님께서 그런 죄는 용서해 주실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행동이 주님께 합당하지 않다는 사실은, 그가 누군가를 심판하는 모습을 통해 드러났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판단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믿는다고 하더라도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이미 하느님의 심판자 자리에 올라앉아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강의를 하다가 “‘혹시 나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미워하고 싶어도 미워지지가 않아서 미워하는 게 너무 힘들다’는 분 손 들어보세요.”라고 묻곤 합니다. 그러면 거의 대부분이 손을 들지 않습니다. 물론 창피해서 손을 들지 않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미운 사람이 한두 명씩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미운 마음을 가지면 아직 ‘회개’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신앙인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신앙인’은 ‘믿는 사람’이란 뜻인데, 예수님은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고 말씀하십니다. 복음을 믿는 것은 회개 다음입니다.
회개는 미움에서 사랑으로의 전환입니다. 판단에서 용서로의 변화입니다.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고 영원한 생명을 주는 ‘생명나무’를 먹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영원히 살게 하는 ‘예수님의 거룩한 살과 피가’ 바로 ‘생명나무’입니다.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고 인간은 스스로 자신을 심판하여 나무 뒤에 자신을 숨기고, 또 그 탓을 하와에게 돌렸습니다. 사람을 심판할 수 있는 권한은 하느님밖에 없는데,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고 나니 이제 자신이 하느님처럼 되어서 자신도 심판하고 이웃도 심판하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미워하는 마음으로는 절대 성체를 영해서는 안 됩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란 바로 자신이 누구도 심판할 수 없는 아담과 하와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기 이전으로 돌아감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마태 5,23-24)
이전에 남을 심판하거나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당연히 성체를 모실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미운 마음 가지고도 성체를 영합니다. 우리는 먼저 회개해 누구도 심판할 수 없는 죄인임을 인정하고 성체를 영해야 합니다.
전삼용 신부 (교구 복음화국 부국장·교구 영성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