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가톨릭군종후원회 소식지 「등불」 발송되던 날
‘접고 넣고 붙이고’ 100명 넘는 봉사자 손발 척척
2만4000부 발송 작업 분주
군종교구 각종 소식 총망라
서울대교구 가톨릭군종후원회 회원과 봉사자들이 11월 9일 서울 용산 군종교구청에서 「등불」 발송작업을 하고 있다.
때 이른 한파주의보가 내린 11월 9일 오전 서울 용산 군종교구청 1층 강당이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서울대교구 가톨릭군종후원회(회장 김진택, 담당 이성운 신부) 소식지 「등불」 발송작업을 돕기 위해 군종후원회원이 중심이 된 봉사자 100여 명이 군종교구청 강당을 빈자리 없이 가득 메웠다.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려는 봉사자들이 몰려들어 국군중앙성당에도 「등불」 발송 테이블을 임시로 만들었다.
이성운 신부는 발송작업이 시작되자 마이크를 잡고 “이렇게 많은 분들이 와 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며 “여러분들이 있어서 군종후원회가 어디 가든 대접받는다”고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서울대교구 군종후원회원들에게 발송되는 올해 하반기 「등불」 제156호는 모두 2만4000부. 한 권씩 봉투에 넣고 주소를 적은 스티커를 붙이고 봉투 입구를 풀로 붙이는 과정을 거친다. 봉투 작업이 끝나면 봉투 30개를 모아 고무줄로 묶어 20묶음씩 종이 상자에 담는다. 한 상자에 「등불」 600권씩 들어가는 셈이다.
40상자를 포장하면 봉사자들이 해야 할 일은 끝나지만 군종후원회 직원들이 무거운 박스를 용산우체국에 날라 회원들에게 발송하고 다시 군종교구청 강당으로 돌아와 자리 정리까지 해야 모든 일이 마무리된다. 이날은 오전 10시부터 발송작업을 시작해 오후 4시까지 작업이 이어졌다.
발송작업 봉사자들은 80대 어르신부터 30대 청년까지 골고루 섞여 「등불」을 봉투 크기에 맞게 반으로 접는 조, 주소 스티커를 봉투에 붙이는 조, 봉투 입구를 풀로 붙이는 조, 완성된 봉투를 묶음으로 만들어 박스에 담는 조별로 손발을 척척 맞춘다. 20년 넘게 매해 봉사활동을 하는 회원이 있는가 하면 다른 회원의 권유를 받고 올해 처음으로 봉사에 참여한 신자도 있다 보니 작업 진행이 매끄럽지 않을 때도 잠깐 잠깐 있지만 이내 호흡을 맞춰 나간다.
서울대교구 가톨릭군종후원회 직원으로 「등불」 편집과 디자인을 맡고 있는 김정태(대건 안드레아·30)씨는 “1년에 상반기와 하반기 두 차례 「등불」을 발송하는데 항상 많은 군종후원회원과 봉사자들이 도움을 주셔서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발송작업 며칠 전까지 고생하며 편집한 「등불」이 회원들에게 발송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으면 뿌듯하고 보람을 느낀다”며 “내년부터는 새로운 편집과 보다 충실한 내용으로 더 좋은 「등불」을 만들 계획”이라고도 밝혔다.
「등불」 제156호에는 군종교구장 유수일 주교의 인사말부터 군종신부들의 생생한 사목 체험기, 전후방 각 부대를 방문한 군종회원들의 활동상, 신임 군종장교들이 임관하기까지 받는 훈련과정과 임관식, 군인신학생 피정, 군본당 봉헌식 등 사실상 군종교구의 모든 소식이 담겨 있다. 창간호 이후 현재까지 나온 「등불」만 봐도 군종후원회와 군종교구의 모든 역사를 알 수 있다고 말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등불」은 교회와 군대, 군종신부와 군종후원회원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라 할 만하다.
■ 「등불」은…
서울대교구 가톨릭군종후원회 소식지인 「등불」은 1970년 2월 군종사제단 참사위원과 군종후원회 회장단 연석회의에서 창간이 논의됐다. 수적으로 부족한 군종신부를 대신해 장병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군종사제단의 활동을 널리 알려 군종후원회 가입을 홍보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소식지 역할은 중요했다.
1970년 9월 15일 「PAX」(팍스)를 제호로 창간호 6000부를 발행했고 1972년 2월 29일 「등불」로 제호를 바꿨다. 현재는 매년 6월 1일과 12월 1일을 발행일로 두 차례씩 2만4000부를 군종후원회원들에게 발송하고 있다.
■ ‘20년 넘게 발송작업 봉사’ 김정숙씨
여든 바라보는 나이에도 ‘군인 사랑’으로 봉사
김정숙(베로니카·79·서울 노원본당)씨는 20년 넘게 서울대교구 가톨릭군종후원회 소식지 「등불」 발송작업 봉사를 하는 ‘큰언니’ 같은 존재다. 그는 여든을 바라보는 고령에도 매번 빠지지 않고 「등불」 발송작업에 나오는 이유를 묻자 “한 사람이라도 더 나와야 일이 일찍 끝날 수 있어서”라고 답했다.
김 할머니는 “오래 전에는 지금보다 더 많은 봉사자들이 모여 발송작업을 했지만 작업 과정이 체계적이지 못해 오후 늦게 끝날 때가 많았고 하루에 다 못 끝내면 다음날까지 봉사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군종신부님들은 미사를 드리고 싶어 하는 군장병 2~3명을 위해서도 최전방 공소까지 찾아가는 고생을 하는데 「등불」에 군종신부님들 소식이 실려 있어 발송 봉사에 보람을 느낀다”고 밝혔다.
또한 “「등불」 발송에는 군종후원회원뿐만 아니라 본당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도 봉사자로 참여해 군종후원회 활동을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되고 있다”며 “발송작업에서 만나는 봉사자들은 오랫동안 알아왔든, 처음 만났든 모두가 반갑기만 하다”고 말했다.
「등불」에 바라는 점에 대해서는 “「등불」을 보신 분들이 군종후원회 회원으로 많이들 가입해 군종후원회가 지금보다 활성화 됐으면 좋겠다”면서 “그런 바람으로 20년 이상 안 빠지고 「등불」 발송 봉사를 해오고 있다”고 전했다.
“옛날에는 누렇고 거친 종이로 나오던 「등불」이 요즘은 깨끗하고 매끄러운 재질로 만들어져서 보기가 좋아요.”
「등불」지를 매만지는 큰언니에게서 군인 사랑이 풍겨져왔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