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8일 열린 편집자문위원회 제5차 회의에서 가톨릭신문 주간 이영탁 신부, 노길명 위원장, 김지영 위원, 전원 신부, 강신우 위원, 남승한 위원, 장병일 가톨릭신문 편집국장(왼쪽부터)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사진 서상덕 기자
‘최순실 게이트’가 불러온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요구로 교회 안팎이 들끓고 있다. 제3차 민중총궐기대회가 열린 11월 12일, 서울광장과 광화문 일대에는 서울과 지방에서 올라온 시민 100만여 명이 운집해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외쳤다.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에 대한 국민적 분노는 정중동 속에 식을 줄 모르며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활화산 같은 상태로 잠복해 있는 모습이다.
11월 18일 오전 서울 세종호텔에서 열린 가톨릭신문 편집자문위원회(위원장 노길명 교수) 제5차 회의에서도 최근 시국 상황을 다룬 가톨릭신문 기사에 대해 집중적인 논의가 이뤄졌다. “가톨릭신문이 예전에 비해 시국 관련 기사를 활발히 다루고 있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반응과 “변화된 편집 방향이 보이긴 하지만 아직 부족하다”는 질책도 나왔다. 이날 회의에서는 2017년 가톨릭신문 신년 기획에 대한 의견도 나눴다.
■ 최근 시국 상황에 대한 기사 등 지면 평가
-노길명 위원장(이하 노 위원장): 요즘 가톨릭신문이 달라진 것이 보인다. 시국 관련 기사가 이전과는 달리 자주 등장한다. 현 시국 문제에 대해 박 대통령에게 비판적 입장을 가진 분들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도도 높아졌을 것이라 생각한다.
성염 전 주교황청 한국대사와 가진 특별대담(가톨릭신문 11월 20일자)이 시의적절하게 잘 실렸다. 가톨릭학술상은 분야별로 적절한 수상자가 결정돼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11월 20일자 신문 1면에 인천교구 사제단 시국선언 사진이 실린 것도 가톨릭신문의 변화된 면모다. 시국상황을 다루는 적극적인 자세로 보인다. 현재 시국상황에서는 대통령이 물러나야 한다. 지금 물러나는 것이 명예를 지키는 일이다. 과거 대통령 재임시에도 친인척 비리가 있었지만 박 대통령은 국정 전 분야에 비선실세를 개입시켰다는 점에서 심각성의 차원이 다르다.
이번 사태를 접하며 우리 교회가 세상 문제를 어떤 관점에서 봐야 하는지와 관련된 사회교리적 시각이 강해져야 한다. 박 대통령이 물러나는지 여부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교회의 사회교리적 시각과 복음적 관점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신우 위원(이하 강 위원): 박근혜 대통령은 물러나는 것이 맞다고 본다.
-김지영 위원(이하 김 위원): 현재 시국에 대해 국민들은 대통령에게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데 대통령이 국민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다. 교회도 제 역할을 해야 함에도 교회와 사회 모두 올바른 목소리를 안 내려고 한다. 강성분자, 종북 좌파로 몰릴까 걱정해서는 안 된다. 낙원은 편하게 이뤄지지 않는다. 이런 때일수록 가톨릭 언론인들이 자기 직업윤리를 분명히 해야 한다. 행하기 쉽다면 올바른 일이 아니다.
-노 위원장: 오늘 한국사회 현실을 교회가 복음적 시각에서 어떻게 바라볼지 입장이 뚜렷해져야 앞으로 가톨릭신문 편집방향도 뚜렷해진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성명서, 각 교구 시국선언이 잇따라 나왔다. 가톨릭신문이 어떤 관점에서 이 부분을 다룰지 논의하자.
-김 위원: 가톨릭신문이 정면으로 ‘최순실 게이트’ 문제를 기사화 할지 생각 못했다. 발전적인 모습이다. 미국 워싱턴 포스트가 오늘자 기사에서 말하길 최순실 게이트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하야를 불러온 ‘워터 게이트’보다 더 심각하다고 진단했다. 워싱턴 포스트 지적대로 한국사회는 후진적 악습과 부패, 비리가 각 분야 주류 계층에 뿌리 깊다.
복음적 시각에서 보면 한국은 천벌을 받고 소돔과 고모라가 될 처지다. 성경의 경고를 받아들여야 한다. 힘을 가진 이들은 자기 잘못을 시인 안 하고 살아남을 생각만 한다. 민중총궐기에 100만 명이 집결해 세계가 놀랐다. 지금 상태가 계속되면 한국에는 불행이 올 수밖에 없다.
-노 위원장: 국민 100만 명이 거리에 나왔다는 것은 불의에 저항하는 국민의 의지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교회는 세상을 복음화시킬 사명을 갖고 있다. 복음에 어긋나는 것은 바로 잡아야 한다는 예언적 사명도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회는 야전병원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진흙탕을 뒤집어써도 현장에 가라”는 말씀도 하셨다.
1987년 6월 항쟁 때 명동성당은 민주화의 성지였다. 교회는 지금도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추는 등대가 돼야 한다. 이 통로가 가톨릭 언론이다. 가톨릭신문은 박 대통령 퇴진 요구 차원을 넘어 복음적 시각에서 무엇이 잘못됐고 교회의 대응은 어떠해야 하는지 교회 어른들, 신학자들을 통해 사회에 전달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최근 가톨릭신문은 주교회의 정평위 성명서를 즉각 보도했고 관련된 시국 기사를 비중있게 보도하고 있다. 바람직한 모습이다.
-김 위원: 현 사태는 구체적인 삶에 대한 것이다. 가톨릭신문이 이전보다 발전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가톨릭신문이 언론으로서 자기 관점과 의견이 없는 것은 아닌지 아쉬움도 있다. 잘못된 것에 대해 정치적 문제라는 이유로 언급 안 하는 것이 정치적 태도다.
-노 위원장: 정치 참여는 국민과 교회의 책무다. 「사목헌장」도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교회의 책무라 밝히고 있다. 현실정권을 지지하는 것은 찬성하면서 반대는 안 된다고 하는 자세는 교회가 취할 입장이 아니다.
-강 위원: 1970, 80년대 언론은 정권 눈치를 많이 봤다. 쓰고 싶어도 못 쓰는 시대였다. 지금은 가톨릭신문이 달라졌다. 백남기 농민 기사가 꾸준히 나온 것도 달라진 면이다. 최순실 사태에 대해 가톨릭신문이 선제적으로 치고 나가지 못한 점은 아쉽다.
-김 위원: 현 사태가 진정이 됐을 때 가톨릭신문이 제대로 된 보도를 하지 않았다면 후회할 것이다. 언론과 정치권, 학계는 불의에 안이하게 대응하면 안 된다.
-노 위원장: 교회가 내향적으로만 가지 말고 외향적으로도 가야 한다. 교회는 우리 사회가 지닌 문제점을 지적하고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지시하는 등대와 방향타 역할을 해야 한다.
-김 위원: 교계 신문에서 교구장 임명 소식은 중요하지만 인천교구 사제단 시국선언도 중요하다. 톱기사도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는데 교구장 임명은 항상 톱이어야 하는지 고민이 필요하다.
-노 위원장: 인천교구장 임명과 인천교구 사제단 시국선언을 1면에 배치한 것은 지혜로운 편집이라고 본다. 시국 관련 상보가 2~3면에 배치됐다면 더 좋았겠다.
-남승한 위원(이하 남 위원): 상지종 신부의 시국 관련 글이 눈에 띄었지만 11월 13일자 신문에 시국 기사가 부족해 좀 답답했다.
■ 새해 신문 편집 방향, 기획기사 논의
-노 위원장: 내년 상반기 편집방향도 얘기하자. 자문회의에서 논의한 내용들이 신문에 조금씩은 반영되고 있다.
-장병일 편집국장(이하 장 국장): 가톨릭신문이 내년 새 기획으로 오랜 논의를 거쳐 여러 기사들을 준비했다.
-노 위원장: 2017년은 대선이 있는 해여서 정치적 이슈가 크게 부각될 것이다. 교회가 정치적 입장을 내야 하고 가톨릭신문은 대선과 관련된 기획기사를 내야 한다.
-김 위원: 새해에 최순실 사태와 관련해 기사를 준비해야 한다. 교회의 사회교리 원칙을 강조하고 적어도 공명선거와 투표에 임하는 국민, 신자들의 자세를 알려야 한다.
-강 위원: 지난번 총선을 앞두고 가톨릭신문이 기획기사를 냈는데 내년 대선에도 필요하다고 본다.
-김 위원: 광고 얘기도 하겠다. 가톨릭신문 광고 중에 만병통치약으로 선전하는 광고는 곤란하다. 신문윤리강령 위반이다. 광고도 지면이다. 아는 사람이 보면 가톨릭신문을 무지한 신문으로 본다. 이런 광고는 빼야 한다.
천주교에서 운영을 위탁받은 대구시립희망원 사태 파장이 컸다. 우리 잘못을 확대할 필요는 없지만 가톨릭신문 기자가 뛰어들어서 썼어야 하는데 사실을 축소하고 홍보지로 머물렀다.
-장 국장: 새해에 아시아교회 탐방, 환경생태생명, 펀펀 사회교리, 청소년사목을 말한다, 세계 교회박물관 기행, 그리스도인의 자녀교육법, 현대의 영성가들 등의 기획을 준비하고 있다.
-전원 신부(이하 전 신부): 복음적 가치를 사람들에게 어떻게 설득력 있게 전달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일반 사람들 눈높이에서 기사 제목에서부터 내용까지, 저변에서 설득해 내느냐가 관건이다. 주장만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본당 신자들은 정치 얘기만 나오면 싫어한다. 그 간극을 메워가는 것이 신문의 역할이다.
-남 위원: 요즘 가톨릭e신문 접속이 잘 되지 않는다.
-강 위원: 신년기획은 1년 동안 끌고 가는 것인가? 게재 기간이 지겹지 않게 적절히 안배해야 한다.
-전 신부: 쉬우면서도 공감 얻는 기사를 내달라. 왜 교회가 정치문제에 개입해야 하는지 알려 달라. 탐욕의 시대에 신자들이 알아듣기 쉽게 쓰는 형식이 필요하다.
-김 위원: 쉽게 쓰는 게 어렵다. 내공이 있는 사람이 쉽게 쓸 수 있다. 사회교리가 본래 쉽게 쓰기 어려운 분야다.
정리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