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교구 사제단과 신자들이 11월 25일 오후 원동주교좌성당에서 시국미사를 봉헌하고 성당 밖으로 거리 행진을 하고 있다. 원주교구 홍보국 제공
박근혜 대통령 퇴진과 국정농단 사태의 철저한 수사를 요구하는 촛불이 횃불로 커지고 있다.
11월 2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린 제5차 범국민대회에는 올 들어 첫 눈이 내리는 쌀쌀한 날씨에도 아랑곳없이 시민과 종교인 등 150만 명이 운집했다. 지방에 모인 인파까지 합치면 이날 하루에만 190만 명이 박 대통령 퇴진과 민주주의 회복을 외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이날 박 대통령 퇴진를 촉구하는 5대 종단 거리행진에 참석한 박문수(프란치스코·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 부원장) 박사는 “광화문에 모인 시민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민주주의 가치를 지키려는 분들”이라며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종교인 입장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은 물러나야 한다”고 말했다. 박 박사는 또 “종교는 평화적이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모든 이데올로기와 이념을 초월해 보편적 가치를 추구한다”며 “신앙인의 한 사람으로서 특정 정파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정당한 가치를 드러내기 위해 종교인들의 행진에 앞장섰다”고 밝혔다.
천주교와 개신교, 불교, 원불교, 천도교 성직자와 신자들이 주도한 5대 종단 거리행진에는 일반 참가자들도 동참해 청와대 200미터 앞까지 이동하며 박 대통령 퇴진을 외쳤다. 경찰과 사이에서 물리적 충돌은 전혀 없었다.
가족들과 함께 광화문에 나와 촛불집회 참가자들에게 준비해온 핫팩을 나눠준 김민(베드로ㆍ52)씨는 “불의에 침묵하는 것은 불의에 동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면서 “그리스도인이라면 어느 누구의 사적인 이익이 아니라 공동선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것이 당연한 의무”라고 말했다.
11월 26일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린 제5차 범국민대회 촛불집회에서 한 가족이 촛불을 들고 있다. 박지순 기자
한국교회는 이번 주에도 국내외에서 시국미사와 거리 행진을 이어갔다. 원주교구는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시국미사를 11월 25일 오후 7시30분 원주 원동주교좌성당에서 봉헌했다. 교구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조규정 신부, 이하 정평위) 주관으로 마련된 이날 미사에는 50여 명의 사제단과 600여 명의 신자들이 참례해 민주주의 회복을 호소하는 목소리를 드높였다.
정평위는 미사에서 ‘가톨릭 사회교리에 비추어 바라본 현 시국과 우리의 자세’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하고 “박근혜 대통령의 무조건적인 퇴진과 국정농단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과 비호세력인 현 정권의 해체를 요구한다”고 천명했다. 정평위는 “현 정권에서는 국민의 평등권, 공동선의 원리가 무참하게 짓밟히고 보조성의 원리마저도 처참하게 유린당했다”면서 “촛불로 표현되는 국민적 분노의 평화적 표출에 연대성을 가지고 함께한다”고 밝혔다. 미사 후 사제단과 교구민들은 원동성당에서 출발해 시내 중심가에 이르는 1.5㎞ 구간을 돌며 시가행진을 벌였다.
천주교정의구현부산교구사제단도 11월 28일 오후 7시30분 부산 중앙주교좌성당에서 ‘국기문란, 부정부패 척결!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제2차 시국미사’를 봉헌했다.
해외 한인 신자들과 교민 사회에서도 시국 선언 동참 소식이 속속 들려오고 있다. 11월 19일에는 이탈리아 로마에 거주하는 한국인 사제, 수도자, 교민 150여 명이 로마 베네치아 광장에 모여 ‘박근혜 퇴진하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과 손팻말을 들고 집회를 열었다. 바쁜 생업에 종사하는 로마 한인 교민들이 150명 이상 모인 것은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로마유학사제단협의회 회장 장재명 신부(부산교구)는 ‘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루카 12,2)이라는 성경 구절을 인용해 “성경 말씀처럼 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정의가 승리할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로마 교민들은 시국선언문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현 상황에 대해 사죄하고 대통령직에서 즉시 사임하라”고 요청했다. 로마에 유학 중인 한인 사제단은 11월 25일 오후 로마 성 안토니오성당에서 현지 한인 수도자, 평신도 100여 명과 함께 시국미사를 봉헌했다.
11월 19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암마인에서도 교민과 유학생 70여 명이 모여 박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은 11월 25일 “미국, 싱가포르, 영국, 일본, 중국 등에서 교수, 시간강사, 연구원 등으로 일하는 한국인과 외국인 1009명이 한국 민주주의 회복과 박근혜 대통령 사퇴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냈다”고 전했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
서상덕 기자 sang@catimes.kr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