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동산에 있었던 ‘두’ 중요한 나무가 있습니다. 하나는 ‘생명나무’이고, 하나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입니다. 그런데 성경공부를 많이 하신 분들도 의외로 생명나무의 존재를 모르곤 합니다. 생명나무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었을 때는 접근이 금지되었던 나무입니다.
“주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자, 사람이 선과 악을 알아 우리 가운데 하나처럼 되었으니, 이제 그가 손을 내밀어 생명나무 열매까지 따 먹고 영원히 살게 되어서는 안 되지.’”(창세 3,22)
여기서 ‘생명나무 열매’라고 번역이 됐지만, 실제로 ‘열매’라는 말은 성경 원문에는 없습니다. 생명나무는 열매를 먹는 것이 아니라 나무 자체를 먹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나무’는 ‘인성(人性)’을 뜻합니다. 인성은 신성과 대조되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벳사이다 소경의 눈을 뜨게 해주셨을 때 그는 사람을 나무처럼 보게 됩니다.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런데 걸어 다니는 나무처럼 보입니다.”(마르 8,24)
예수님의 기적을 통해 사람이 나무처럼 보이게 되었다면 이는 분명 좋은 일입니다. 예수님이 사람을 나무처럼 보게 만드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실 때 불붙은 떨기나무의 모양으로 나타나신 것도 이해될 수 있습니다(탈출 3,2 참조).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당신을 드러내 보이시기 위해서는 분명 인간의 본성을 입으셔야 합니다. 따라서 불붙은 떨기나무에서 ‘불’은 하느님의 본성인 ‘신성’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신성이 떨기나무라는 인성과 결합된 것입니다. 이를 하느님의 ‘자기계시’라고 말합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당신 신성을 인성 안에 감추시는 방법밖에는 없는데, 인성을 입으신 성자의 탄생이 바로 가장 완전한 하느님의 자기계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자기계시인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날, 습관적으로 어떤 나무를 장식합니다. 그 나무는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푸른 빛깔을 지니는데, 우리는 그 주위를 빛으로 장식합니다. 우리는 불붙은 떨기나무를 장식한다는 것을 짐작하지도 못한 채 그런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성탄트리는 빛이신 분께서 인성을 입으신 자기계시인 것입니다.
그리고 ‘푸르다’는 뜻은 ‘생명’을 지니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 나무를 먹으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 생명나무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예수님을 먹어야만 영원히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요한 6,51)
예수님은 당신이 곧 먹으면 영원히 살게 되는 생명나무임을 천명하셨습니다. 그래서 처음 성탄트리를 만들 때는 전구가 없어서 촛불로 둘레를 밝혔고 생명의 빵이신 그리스도의 상징임을 보여주기 위해 둥그런 구슬 대신 밀떡들을 붙였습니다. 죄로 인해 먹지 못하게 되어 영원한 생명을 잃었던 인간을, 당신 피로 죄를 씻어주시고 또 당신 살로 영원한 생명을 주시러 오신 생명나무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며 감사와 찬미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성탄트리’는 있지만 ‘생명나무’는 사라졌습니다. 이것과 함께 감사와 찬미도 사라지고 오직 내년에 내가 원하는 것이 잘 되기만을 기도하는 기복신앙만 남았습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이번 성탄부터는 트리를 장식하는 의미를 정확히 깨닫고, 그 생명나무 탄생의 감격으로, 오직 감사와 찬미만을 드리는 성탄의 의미를 되찾아야만 하겠습니다.
전삼용 신부 (교구 복음화국 부국장·교구 영성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