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의 기다림은 단순히 가만히 앉아 기다리는, 그런 기다림이 아니다. 아기 예수님을 만나고자 하는 그 열망 하나로, 자신의 나라를 두고 별을 좇아 멀고 먼 서쪽의 나라를 향해 여행한 동방박사들의 대림. 우리의 대림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지구 반대편, 남아메리카 페루의 선교지에서 현지인들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며, 살아있는 아기 예수님을 만난 은천성(샤를르·59)씨를 만났다.
“아픔으로 울던 사람들,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하소연하는 그 사람들의 눈물에서 ‘내가 제대로 찾아왔구나’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문을 열자마자 눈물을 왈칵 쏟았다. 은천성씨를 본 페루인은 어디가 아프다고 채 말하기도 전에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지 못했다. 이제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과 기쁨 때문이었다. 난생 처음 체험하는 동방의 의술이었지만, 두려움보다도 희망이 앞섰다. 그만큼 고통 속에 살아왔던 것이다.
은 씨가 교구 선교사제가 파견된 페루 시쿠아니대목구 선교지에서 무료 침구(針灸) 봉사를 할 때의 일이었다.
은 씨는 국제침구사자격증과 중국침구사기술자격증을 가진 침구사다. 침구(針灸)는 침(針)과 뜸(灸)으로 몸의 각종 질병을 다스리는 동양 고유의 의술을 말한다. 국내에서는 의료법상 한의사가 아닌 이들이 침구 치료행위를 하는 것은 불법이기에 ‘침구사’라는 이름이 낯설지만, 중국·일본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는 많은 침구사들이 활동하고 있다.
은 씨가 지금의 침구사 자격을 얻기 위해 들인 시간은 6여 년. 그 시간을 들여 국내에서는 사용할 수도 없는 침구기술을 익힌 것은, 다름 아닌 외국의 가난한 병자들을 돕고자 하는 마음에서였다.
은 씨는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서 예수님이 하셨듯이 병자를 돕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면서 “쉰이 다 된 나이에 의대를 다시 갈 수는 없고, 외국에서 현지인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침구를 접하게 됐다”고 말했다.
“약이나 의료기기를 사용하면 치료에 많은 비용이 드는데, 침구는 침이랑 뜸만 있으면 할 수 있습니다. 침과 뜸으로 모든 병이 완치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통증을 완화시키고 자연치유력을 높일 수는 있으니까요.”
실제로 은 씨가 지난 5~11월 페루선교지에서 660여 명의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사용한 침과 뜸은 각각 한 상자가 채 안 됐다. 하지만 효과는 컸다. 두통을 호소하는 이에서부터 관절이 아픈 사람, 척추를 다친 사람, 대상포진 등으로 엄청난 통증을 겪는 사람 등 많은 이들이 은 씨의 침과 뜸으로 치유되고 통증에서 벗어났다. 특히 가난으로 아파도 병원을 찾을 수 없는 사람들이 은씨의 도움을 받았다.
은 씨는 “페루에는 병원이 있지만, 의료보험도 없고 약도 비싸다”면서 “특히 해발 3500m 이상 고산지대에 있는 교구의 선교지에는 아무리 아파도 병원을 찾을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은 씨가 처음 선교지에서 침구 봉사를 할 때는 찾아오는 이가 많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찾는 사람이 늘어났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거동이 불편해 일할 수 없던 사람이 은 씨의 침구 봉사로 농사일을 할 수 있게 된 모습이 선교지의 농촌사회에서 큰 반향을 불러왔던 것이다. 은 씨는 선교지에서 활동하는 주현하 신부를 따라 공소를 찾아가 침구 봉사를 하기도 했다. 시쿠아니대목구장 주교와 총대리 신부도 은 씨의 침구 봉사 혜택을 받았다.
화장실도 한 번 제대로 못 가고 하루 50여 명의 환자를 돌보던 중 결국 탈이났다. 일주일을 앓아누웠고, 뒤늦게 고산병에 걸려 고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은 씨는 봉사를 중단하지 않았다. 아픈 몸을 이끌고 새벽 같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환자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 은 씨는 하루에 받는 환자를 20명으로 줄이는 대신 진료일을 늘려 봉사를 이어나갔다.
6개월간의 페루 선교지 봉사활동은 끝났지만, 은 씨의 봉사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번 봉사로 떨어진 체력과 건강을 회복하고 나면, 다시 봉사를 시작할 계획이다. 이번에는 단순히 침구 봉사에 그치지 않고, 은 씨가 귀국한 후에도 환자들이 꾸준히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현지인들에게 침구 기술을 전수할 계획이다.
“질병을 겪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항상 조심해야 하지요. 하느님 나라에 가는 순간까지 늘 조심하면서 저를 잘 돌보고, 또 이웃을 도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