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일 광화문광장 촛불집회에 참가한 정용선-류상희씨 부부와 아들 선재씨. 시국에 분노를 느끼며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의를 외치고 있다.
“커져만 가는 촛불, 그 속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느낌입니다.”
매 주말이면 서울 광화문광장을 물들이는 촛불의 행렬, 그 가운데 정용선(다니엘·44·서울 신정3동본당)-류상희(베로니카·45)씨 부부와 아들 선재(스테파노·20)씨, 딸 서연(글라라·중2)양도 어김없이 자리를 함께하고 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다. 자연스럽게 한마음이 됐다.
“첫 눈빛을 주고받은 후, 서로 말 안 해도 당장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알았던 거죠.”
정씨 부부는 이른바 ‘CC’(Campus Couple)다. 대학생시절 학교 가톨릭 동아리에서 만나 사랑을 키웠다. 그 때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민주화를 외치는 집회 현장을 함께 찾곤 했다.
“시국이나 국가에 대한 어떤 특별한 의식이나 생각이 있어서 그랬던 건 아니었습니다. 그 때는 그것이 청년 그리스도인의 당연한 몫이라고 생각됐습니다.”
20여 년 전 정씨 부부가 함께 찾던 집회 현장은 늘 떨림과 두려움을 함께 안겨주는 장이기도 했다. 최루탄과 돌멩이에 간간이 화염병도 난무하던 시절, 집회를 다녀오면 늘 누군가가 다치거나 잡혀갔다는 소리가 빠지지 않았다.
“아픔이 없지 않았지만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길, 주님이 보여주신 길이라는 생각엔 조금도 의심이 없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원하던 대기업과 대학병원 간호사로 취업하고 나서도 부부는 한동안 집회 현장을 찾곤 했다.
“무엇이 바르고 무엇이 그른지 눈에 보이는데, 가만히 있는다는 건 주님께 죄를 짓는 일이라는 생각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삶의 무게가 쌓이면서 정씨 부부도 조금씩 집회 현장에서 멀어져갔다. 간간이 학교를 찾아 집회를 마치고 돌아온 후배들을 도닥이는 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 이들을 다시 광장으로 불러낸 ‘사건’이 터졌다. 세월호 참사였다.
“‘가만히 있으라’는 어른들 말을 듣다 무참하게 숨져간 아이들의 모습이 가슴을 옥죄어 왔습니다. 세상 속으로 아픔이 번져가고 있는데도 가만히 있기만 했던 어른으로서 죄책감이 밀려왔습니다.”
그렇게 부부가 다시 아픔의 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던 사이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가 터졌다. ‘가만히 있으라’고 윽박지르던 이들의 가면이 하나둘 벗겨지면서 분노를 넘어 슬픔이 커져갔다.
처음 광화문광장을 찾았을 때가 잊히지 않는다.
“가슴 한 구석에 두려운 마음이 없지 않았습니다. 누가 다치거나 험한 일이라도 생기면….”
기우였다. 과거 집회 모습이 아니었다. 매캐한 최루가스가 가득하던 광장은 따스한 촛불로 채워졌다. 부서진 돌멩이와 최루탄 파편이 어지럽던 거리는 종이쪽 하나 없이 깨끗하게 치워졌다.
“촛불집회에 참여하면 할수록 가슴 한 켠이 뜨거워져 옴을 느낍니다.”
자녀 또래 청소년들이 수많은 군중 앞에서 당당하게 민주주의를 외치는 모습을 보며 울컥했던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광장에 와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이 어디 계신지….”
늘 부부 곁을 지키는 아들 선재씨의 모습이 그 어느 때보다 대견스럽게 다가온다.
그렇게 정씨 가족은 광장 속에서 또 다른 CC(Carbon Copy:꼭 닮은 사람)가 되어가고 있었다.
“저희는 광장 촛불 속으로 주님을 만나러 갑니다.”
서상덕 기자 sa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