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을 사는 길] (4·끝) 지적·자폐성장애인모임 ‘맑은 눈 친구들’ 봉사자 정회정·백인호씨
“장애인 친구들과 봉헌할 성탄미사가 기다려집니다”
연인관계인 두 사람 9년째 함께 봉사
매월 하루 ‘미사·체험활동’ 1:1 동행
정회정씨(왼쪽)의 권유로 봉사활동을 시작한 백인호씨는 봉사를 하면서 전공을 바꿔 학위를 취득하고 현재는 심리상담사로 일하고 있다.
예수 성탄 대축일을 영어로 일컫는 ‘크리스마스(Christmas)’는 ‘그리스도의 미사’라는 뜻을 담고 있다. 대림시기는 아기예수와 만나는 이 성탄대축일의 미사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시기이기도 하다. 장애인들과 함께하는 봉사를 통해 미사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게 된 정회정(스콜라스티카·33·용인대리구 동천성바오로본당)·백인호(33·예비신자)씨를 만났다.
“장애인 친구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면 정말 풍요로운 미사를 드렸구나하는 느낌이 들어요. 특히 성탄대축일 미사를 앞둔 대림시기에는 미사를 기다리는 두근거림으로 설레요.”
정회정씨 마음은 해마다 대림시기가 되면 더욱 두근거린다. 장애인사목위원회 산하 지적·자폐성장애인모임 ‘맑은 눈 친구들’과 봉헌하는 성탄대축일 미사가 기다려지기 때문이다.
사실 ‘맑은 눈 친구들’의 미사가 다른 미사들보다 더 장엄하거나, 화려하고 성대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신없다’는 말이 더 어울린다. 성당도 아닌 강당에서 미사를 봉헌할 뿐 아니라 미사 중에 이동하는 사람, 미사 주례 사제의 말끝마다 소리를 치는 사람, 갑자기 집에 가겠다면서 뛰쳐나가는 사람 등이 비일비재해 어수선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런데도 이 미사를 드릴 때면 ‘오늘은 정말 행복한 날이구나, 이렇게 행복한 미사가 또 있을까’하는 생각으로, 정 씨의 마음은 더욱 풍요로워졌다.
정 씨의 권유로 함께 봉사하고 있는 백인호씨도 “다른 미사도 참례해봤지만, ‘맑은 눈 친구들’과 함께한 미사가 더 친숙하고 기억에 남을 뿐 아니라 친구들과 즐겁게 놀고 있는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서로 연인관계인 두 사람이 함께 봉사를 이어온 지는 벌써 9년째다. 두 사람이 하고 있는 봉사는 매월 하루를 ‘맑은 눈 친구들’의 장애인들의 미사와 체험활동에 일대일로 동행하면서, 장애인들을 돌보는 일이다. 하지만 정 씨와 백 씨는 “봉사가 아니라 친구를 만나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오히려 자신들을 변화하게 해준 “‘친구들’이 고맙다”고 했다.
“‘맑은 눈 친구들’을 만나다보면 이 친구가 예수님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친구들과 소통이 안 되는 것 같지만, 그 말과 행동 속에서 나를 돌아보고 깨닫는 일이 많아요. 그래서 봉사를 다녀오면 예수님을 만난 것처럼 행복해져요.”
정씨에게 봉사는 마음을 치유하는 시간으로 다가왔다. 봉사를 시작하던 때는 정 씨가 심적으로 지치고 힘겨웠던 시기였다. 본당에서 여러 봉사를 해왔지만, 지쳐가는 마음을 다잡기 어려웠다. 하지만 ‘맑은 눈 친구들’을 만나면서 위로와 힘을 얻었다. 특히 지적장애가 있는 오빠와 함께 사는 정 씨는 장애인의 가족이기에 알게 모르게 쌓였던 상처가 치유되는 것을 느꼈다.
정씨는 “마음이 지쳐서가도 다녀오면 마음이 풍요로워 지고 힘이 난다”고 말했다. “다양한 유형의 장애를 지닌 친구들과 그 가족들을 만나면서 내 힘들었던 기억들이 사실 아무것도 아님을 알게 됐다”면서 “봉사를 하면서 오빠와도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됐다”고 했다.
백씨는 봉사로 삶의 방향이 변화했다. 공대생이었던 그는 봉사를 하면서 심리학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지적·자폐성 장애인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들의 친구가 되고 싶은 바람에서다. 그 바람은 진로로 이어져 백 씨는 특수교육대학원에서 심리치료 석사학위를 취득, 지금은 장애인시설에서 심리상담사로 일하고 있다.
백씨는 “봉사를 하면서 친구들의 마음을 알 수 없어 아무것도 해줄 수 없을 때 큰 안타까움을 느꼈다”면서 “친구들을 더 이해하고 싶었고, 친구들 부모님의 마음을 치유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친구로 대해온 장애인들은 두 사람에게 ‘기다림’의 의미를 가르쳐줬다. 봉사하는 두 사람에게 대림은 기쁨과 희망의 시간이다.
“지금은 대하기 힘든 친구더라도 사랑을 표현하다보면 분명히 더 좋은 방향으로 변화할 것이라고 믿어요. 그런 희망이 있기에 기쁜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죠. 예수님을 기다리는 것도 그런 마음이 아닐까 합니다.”
▲ ▼ 9년째 ‘맑은 눈 친구들’ 모임에서 봉사하고 있는 정회정·백인호씨 백인호씨 제공
백인호씨 제공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